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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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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Oct 04. 2023

불혹 18. 깡패

<부동산소재소설 1부>

              


         “술 한잔 받으시죠?” 

         화천 시장이 자살하고, 보름 정도 지났다. 자기로서는 선택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쉽게 한다. 참인지 거짓인지를 생각 안 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곳에 신경을 쓸 시간도 아까워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존중하는 것이거나, 모든 것을 무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한번 싸워 보시겠습니까?”

         “네, 기회가 주어진다면 잡아보고 싶은데, 윤희로 의원님과 이야기가 되었다고 하니, 정 대표 믿고 남은 인생을 걸어보겠습니다.” 

         태현이가 소주병을 들고 오진명을 지긋이 쳐다본다. 술을 마시라는 신호이다. 오진명이 뜻을 알고 술잔을 비운다. 빈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술잔에도 술을 따른다. 그리고 말을 한다.

         “죽을 각오로 하시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피부로 못 느끼셨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선택보다 상상할 수 없는 강한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의 끝은 하나입니다. 지면 죽는 것이고, 이기면 사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이기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잘 지도해주시면 따라가겠습니다.”

         “그리고 좀 있다 한 친구가 올 것입니다. 전직 조폭 출신입니다. 사귀어 두면 좋은 친구입니다. 지금은 그쪽 세계와는 인연을 끊고 저와 같이 일합니다. 정치를 하시게 되면 어두운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정치깡패라는 것이 왜 있겠습니까? 옛날처럼 힘으로 사람들을 협박하고 위협하는 세상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지, 그런 일을 물밑에서 움직이는 은밀한 조직은 지금도 있습니다. 정치와 깡패는 동전의 앞 뒷면입니다.”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상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 눈앞에 다가왔다. 밤새 지게를 지고 집에 온 아침, 동네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잠을 청하는 운명이었다. 캄캄한 절망뿐인 그 시절에 유일한 사치는 슈퍼맨이 되어 큰소리 빵빵 치는 상상을 누워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상상 속의 일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댈 언덕이 전혀 없는 자기 같은 사람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은 일에 대한 능력이 탁월하던지, 아니면 비위를 잘 맞추어 윗사람 눈에 잘 띄던지, 둘 중의 하나였고, 후자를 선택한 인생이었다. 40살을 넘기면서 불안한 마음에, 인맥을 만들고자 남들보다 더 많은 술을 먹고 다니면서 형님 아우하고 다녔다.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머리 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이 술값만 나간 것이다. 공기업이라서 정년퇴직까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무미건조한 직장생활이 되었다. 생활은 편안하고 사는 게 지루하게 되어 재미가 없었지만, 가족들 뒷바라지하는 그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한마디 하였다.

         “가족은 서로 희생하면서 사는 거야,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희생하고, 부모를 위해서 자식이 참고, 배우자를 위해서 포기하고, 형제를 위해 내가 양보하는 것, 그런 것이 가족이지”

         “아버지, 저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을 사세요, 제 인생 간섭하지 말고···”

         “여보,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 없었어? 더 늙어서 후회하지 말고 있으면 해, 당신 인생을 살아, 나중에 나나 애들 탓하지 말고.” 

         지게꾼 아버지와 자기를 생각하였고, 자기와 아들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뭔가 놓친 것이 있는 듯했다. ‘잘못 살아 온 건가?’ 내가 살고 싶은 것을 포기하였어도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았는데 그게 틀렸다면···, 그런 생각에 몰입되었을 때, 박사과정에 왔다. 처음 만날 때부터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홍길동처럼 보였다. 나하고 달랐다. 박사과정 후배이고, 나이도 어리지만 접근하기 어려웠다. 저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다. 저렇게 한번 살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생기었다. 살면서 중요한 뭔가를 접한 적이 없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버킷 리스트를 왜 만드는지 이해가 되었다. 변화 없는 모습에서 사회적 일탈을 꿈꾸는 남자의 본능이 뚫고 나온 것이다.

         설사 화천 시장에 공천을 받지 못해도 윤희로 의원하고 줄이 닿았다면 다른 길도 있을 것이다. 수백 번 생각해도 정치라고 하는 길이 운명처럼 가야만 하는 길로 보였다. 원래 이게 내가 가야 하는 길이었다는 건방이 며칠 동안 있었다. 잠시 뒤, 형기가 들어오는 것을 본다. 검은 와이셔츠 위로 검정 슈트이다. 머리는 단정하였다. 옷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검은색으로 넥타이는 착용하지 않았다. 형기가 태현이 옆에 앉는다. 형기가 술병을 들고 한잔 따른다.

         “오 박사님, 아까 이야기 했던 친구입니다.”

         “일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기억이 없는데···”

         “전에 대표님하고, 박호영 검사님하고, 라운딩하신 적이 있지요? 그때, 제가 박 검사님 운전을 해 드렸습니다. 차에서 대기하면서 그때 먼발치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형기입니다.”

         조폭 출신이라서 덩치가 큰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근육질의 몸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자기와 나란히 옆에 서면 키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검은 슈트가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윤희로 의원은 내일 아침 8시에 조찬 모임에서 뵙기로 하였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여의도에 다시 와야 합니다. 실례지만 먼저 가봐야 합니다. 오늘 술자리는 이 친구하고 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이 친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냥 국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네, 편하게 하세요, 뭐 호칭이 중요한가요?”

         “그럼 나가시죠? 제가 좋은 곳에서 술 한잔 모시겠습니다. 아마도 오늘 정태현 대표님이 여의도에 일이 있어서, 여기로 약속 잡은 것 같습니다. 고깃집이라 아무래도 산만합니다. 그리고 큰일 할 분이니 잘 모시라는 지시를 받기도 하였고, 앞으로 자주 뵈어야 하고, 여기서 나가지요?”

         “여기도 좋은데, 정 그러시다면 나가시죠”

         형기가 어딘가에 전화하고, 잠시 뒤에 형기가 입은 것과 같은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 두 명이 들어온다. 혼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 명의 남자가 검은색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기운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형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 사람에게 말한다.

         “준비해 놓았지?”

         “네, 형님” 

         두 사람이 정중하게 허리 숙인다. 오진명이 놀란다. 보통 영화에서는 뚱뚱한 사람들이 건들거리면서 깡패라고 나오는데 이 두 남자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발을 저는 친구는 형기와 비슷한 체격이고, 손가락 하나 없는 친구는 근육질의 남자이다.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오니 검정 리무진이 3대가 있다. 검은 셔츠에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들이 차량 앞에 일렬로 서 있다가 형기와 오진명이 가까이 오자 허리를 45도로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이들은 덩치로 주변을 압도하였다. 딱 봐도 운동한 사람들이다. 순간적으로 기세에 눌려 오싹한 긴장감이 생기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준다. 열린 문으로 형기와 오진명이 타고, 차가 움직인다. 

         “오늘은 제가 국장님에게 인사드리는 첫날이라서 이벤트 준비하였습니다. 거북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서툴러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차는 밤하늘의 여의도를 달려 올림픽대로를 탄다. 오진명은 놀랍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엄청난 스릴감도 느낀다. 앞뒤로 차가 호위하고 있다. 취기가 왔다 사라진다. 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도취였다. 몸의 신경이 갑자기 팽팽해진다. 가끔은 자신에게 인정하기 힘든 그런 현실이 우연처럼 다가온다. 억눌려 있던 그 무엇이 번득이며 진동을 일으킨다. 달리는 차에서 보는 도심의 야경은 자기를 스스로 예찬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다. 

         영동대교가 보이는 빌딩의 22층에 있는 술집이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자들과 종업원들이 홀에 정렬해 있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홀에는 피아노와 무대 시설, 실내 연못이 있고, 청색과 붉은색의 조명을 받은 스모그가 물결처럼 바닥에 잔잔히 깔려있다. 구름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밀실에서 한강의 야경을 보면서 술을 먹는다. 이런 술집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상석에 오진명이 앉았다. 그리고 우측에 형기가 앉는다. 

         “동생들 인사 받으시기 바랍니다.”

         역시나 검은색 슈트를 입은 20여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4명씩 들어와서 인사하고 나간다. 인사는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움직인다. 건들거림도 없다. 발걸음도 정중하다. 그렇게 5번의 인사가 끝나자, 식당에서 보았던 두 명이 들어와서 형기 맞은편에 앉는다. 

         “여기 앞에 두 친구가 동생들 대표입니다. 믿을 만한 동생들입니다. 국장님이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많은 손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때 어떤 지시를 내리든 국장님 마음을 헤아릴 것입니다.”

         양주와 얼음통이 테이블에 깔린다. 과일 안주와 곶감이 각각 한 접시씩 있고, 국자가 얼음통 옆에 있다. 

         “제 방식대로 술 한잔 드리겠습니다.”하고는 얼음통 하나에 양주 한 병씩을 쏟아붓는다. 국자로 술을 떠서 언더락 잔에 술을 붓는다. 오진명이 신기하듯 본다. 술잔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김형기가 일어나자 다른 두 명이 같이 일어난다. 

         “자 한잔하시죠,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형기입니다.” 

         “김홍진입니다.”

         “김용복입니다.”

         언더락 잔을 단숨에 비운다. 다른 두 명도 비운다. 오진명도 그들의 술 먹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는다.

         “김홍진입니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면서 또 국자를 들어서 술잔을 채운다. 

         “곶감 하나 드시지요, 이렇게 먹는 날에는 곶감이 최고입니다.”하면서 곶감을 하나 집어 오진명에게 건넨다. 다시 김홍진이 일어나더니 술잔을 나누어 주고, 한 번에 마신다. 형기도 마시고, 김용복도 마신다. 오진명도 마신다. 

         “김용복입니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고는 국자를 들어서 빈 잔을 가지고 가서 술잔을 채운다. 그렇게 또 한잔을 마신다. 생수를 마시고 곶감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는다. 

         “20명 다 인사받으면, 인사받다가 죽겠는데요?” 

         “그래서 두 친구만 불렀습니다. 그래도 국장님이 수족처럼 부릴 사람인데, 인사는 받으셔야, 좀 불편하시었죠?”

         “네,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렇게 3배 연달아 마시는 것은 저희 같은 사람들이 서로 호형호제하기로 결의할 때 하는 의식입니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셋이서 도원결의하는 것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유비가 한잔 씩 따라서 다 같이 먹고, 다음으로 관우가 따라서 또 마시고 마지막 장비가 따라서 다 같이 먹는 것이죠, 일제 강점기 때 김두한이 만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유지광이 만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시작은 모릅니다만 아무튼 우리만의 전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을 서초동 검사들이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합니다. 검사들이 즐겨 먹는 폭탄주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검사들은 쟁반에 술잔을 올려놓고 한 바퀴를 돌립니다. 돌아온 쟁반은 그 옆 사람이 폭탄주를 제조해서 또 한 바퀴 돌리고, 쟁반이 돌면서 한 사람씩 폭탄주 제조가 끝나면, 다들 술에 취합니다. 검사나 우리나 명령에 죽고 복종에 사는 조직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몰랐네요. 그러면 검은색 슈트 입으신 것은?”

         “아!, 이거요, 별 의미 없습니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군인들이 입는 군복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면 피가 묻어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혹시 ‘삼족오’라고 아시나요?”

         “고구려 신화 속에 나오는 새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 새가 까마귀입니다. 새까만 까마귀, 제가 까마귀를 좋아합니다. 한때 제 별명이 붉은 까마귀였습니다. 동생들은 저를 따르는 작은 까마귀들입니다.”

         “아~, 네, 근데 왜 붉은 까마귀, 검은 까마귀가 아니고요?”

         “싸움이 붙으면 반드시 상대의 피를 본다고 동생들이 붙인 것입니다.”

         “아~ 네”

         “형제 의식을 마쳤으니, 이제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제가 형님에게 일이 진행되는 것에 따라 수시로 연락하겠습니다만, 제가 연락되지 않으면, 여기 홍진이와 용복에게 연락하면 됩니다. 이 두 사람 연락처는 가지고 계시기 바랍니다.”

         어제까지 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약간의 우쭐거림 그런 감정이 요 며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만 아는 속마음이었다. 형기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속마음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영웅호걸이 된 듯했다. 속물근성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깔볼 수 있다는 권위적인 그런 감정이었다. 권력에 대한 행동 의지였다. 

 “형님, 선거 운동은 벌써 시작한 것입니다. 20명의 동생이 한 사람당 98명씩 관리할 것입니다. 지금 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완성되면 약 2,000명에 육박하는 비공식적인 팀이 완성됩니다. 이것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까마귀조직입니다. 부동산 영업조직을 응용해서 만든 것입니다. 본부장, 팀장, 그리고 분양 영업사원으로 수직화된 조직을 그대로 선거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 두 동생이 본부장급, 나머지 동생들이 팀장급입니다. 팀장들이 다시 본부장 역할을 하고 그 밑으로 팀장과 팀원 조직이 또 생깁니다. 형님은 선거법이 인정하는 공개된 범위에서 움직이는 조직을 관리하시고, 제가 양쪽을 오고 가면서 지원할 것입니다. 2,000명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은 250억입니다. 철저하게 선거 3개월 전부터 팀원을 모을 것이고, 사전 교육하고, 교육받은 내용대로 선거일 앞두고 한 달 동안 각 선거구에서 움직일 것입니다. 5명에 조장 1명 6명을 묶고, 8조가 한 개 본부로 하여 2개 본부를 만들어 각 본부장이 관리합니다. 그리고 동생들이 하나씩 맡으면 한 팀당 99명이 됩니다. 20개 팀은 할당된 선거구에 사무실을 둘 것입니다. 여기 두 동생이 각각 10개 지역씩 관리하는 것입니다. 연락은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갑니다. 옆으로 가지 않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하는 조장, 본부장 선에서 정리될 것입니다. 법적인 책임은 각 팀장이 상한선입니다. 자발적인 펜클럽 모임으로 성격이 규정될 것입니다.”

         “네~, 그런데 제가 돈이 없는데”

         “그것은 걱정 안 하시어도 됩니다. 형님이 선거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화천 시장 선거에 뛰어들면 필요한 자금은 정당을 통해서 내려가거나, 정태현 사장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후원회 조직이 조만간에 만들어질 것입니다.”

         “근데 자민당에서 화천 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을 받은 게 아닌데, 너무 성급한 것처럼 보입니다.”

         “공천 확정되고 움직이면 이미 늦습니다. 그리고 오늘 낮에 정태현 대표님이 국회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고, 저에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낮에 이야기가 신통하지 않았다면 그냥 두 분이 식사하고 끝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불렀고, 저에게 동생들 인사시키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아서 이미 다 결정된 것입니다. 내일 조찬 모임이 있다고 하신 것 기억하시죠? 아마도 정태현 대표님이 고맙다고 선물 가지고 가는 자리일 것입니다.”     


         3     


         40살 전후의 여자들로 사전에 섭외하였다. 젊었을 때는 강남 룸에서 상위 1%의 수준에 있던 여자들이었다. 외국어는 최소 하나 정도는 능숙해야 하고, 다들 대졸 이상이었다. 야한 섹시보다는 정숙한 요염을 갖춘 여자들이다. 사전에 앉을 자리는 정해 놓았다. 오진명 옆에 앉은 여자는 김희선이라고 자기를 소개하였다. 계란형 얼굴에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를 하였다. 큰 눈에 반짝이는 눈동자는 이슬이 맺힌 듯 보였다. 웃으면 양쪽에 보조개가 살짝 보인다. 영어와 일어를 능숙하게 하며 전직 대기업 비서실에 근무하던 경력이 있다. 결혼을 한번 하였었고, 이혼하여 10살 된 딸이 있다. 술잔이 돌고, 일상적인 대화들이 오고 갔다. 오진명은 형기와 두 명이 어떻게 노는지 보고자 하였다. 이들은 술 시중을 받으면서 야한 농담이 오고 가지만 여자들하고의 스킨쉽이 거의 없었다. 가끔 손 한번 잡고 술 먹는 수준이었다. 형기는 손도 잡지 않는다. 그냥 친구들하고 술을 먹듯이 먹는다. 술 따라주고, 안주 건네주는 정도의 시중만 드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오진명은 술김에 여자에게 지게꾼 하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였다. 대부분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하면 ‘고생했다’ ‘불쌍하다’ ‘그 시절에는 다 그렇게 살았다.’ 뭐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한다. 희선이는 정확히 18살 지게를 지고 다니던 그 시절의 마음을 읽었다.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었을까?”

         심장이 멈추었다. 조용히 술잔을 들고 마시었다. 새벽에 지게를 지고 도로의 아스팔트가 흔들리는 새벽을 매일 맞이하였다. 불확실성에 지배당한 청춘은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살았었다. 스스로 도로에 뛰어들어 달려오는 차에 몸을 던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는다. 20년을 넘게 살아온 마누라도 자기의 어릴 적 상처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처음 본 이 여자는 첫 만남에 자기 맘을 안 것이다. 

 ‘당신 인생을 살아’ ‘아버지 인생을 사세요’라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모욕감을 준 마누라와 아들에게 화가 났다. 술을 단숨에 마신다. 분노가 차올랐다. 지금까지 눈치 보면서 어떻게든 잘살아보겠다고 바짝 엎드려 산 것이 억울했다. 헛살았다 싶은 감정이다.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신다. 주먹이 쥐어진다. 술병을 희선이가 가지고 간다. 빈 술잔에는 바로 술이 채워진다. 다시 마셔 버린다. 술을 채워주면서 ‘천천히 저하고 같이 드세요’라고 말한다. 살아온 인생이 위로를 받는 듯하였다. 다음 날 늦은 오후 잠실 롯데호텔 21층으로 올라갔다. 김희선이 문을 열어준다. 여자의 몸에서 땀이 흐르고, 그 땀이 남자의 손과 입술에 닿는다. 땀 냄새와 섞인 여자의 살냄새는 극도로 황홀함을 주었다. 육체가 주는 즐거움이 귀하게 다가왔다. 땀이 나서 샤워하겠다는 여자의 손을 잡는다.

         “땀 냄새가 좋다.”

         남자는 처음으로 궁합이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육체적 남녀의 결합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영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었다. 영혼으로 지배당한 육체가 상대의 육체와 결합하여 교감이 일어난 것이다. 배설에 집중된 육체적 쾌락과 다른 것이었다.      


         4   

  

         국회를 이른 새벽에 왔다. 8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30여 분 남았다. 윤희로 의원이 문준식 의원하고 아침을 먹기로 하였고, 그 식사 자리에 참석하라고 한 것이다.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의원실로 올라오라고 한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우리 당을 위해서 후원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라고 감사합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정태현입니다.”

         “지금 새로 정권을 잡은 한국당, 그리고 박 대통령하고 우리의 밀월 기간은 끝났죠, 윤 선배한테 부동산 전문가로 이야기 들었습니다. 지금 여당의 부동산정책은 어떻습니까?”

         “지금 박 대통령 밑에서 경제부총리가 최경훈입니다. 현 정부에서 저금리 정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점을 이용하여 여론전으로 나가시면 될 것입니다.”

         “저금리와 부동산, 지금 우리나라만 저금리 정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낮고, 일본 같은 경우는 마이너스 금리입니다. 금리는 점점 낮아지는 추세인데, 무슨 말씀인지”

         “네, 세계적으로 저금리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아파트 가격 폭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지금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이명박부터 시작하여 완만하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정된 그래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격이 비싼 것으로 정의하고, 금리가 낮아지면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나오면 됩니다. 음···, 지금 말씀드리면서 생각 난 것인데 ‘빚내서 집 사라는 것인가?’ ‘국민을 빚쟁이 만드는 정책’ ‘국민을 투기꾼으로 만드는 것인가?’ 뭐 이런 종류의 Slogan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 여론을 유리하게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특히 집 없는 서민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자민당이 Targeting 하는 정책은 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지수중에 ‘Price Income Rate (PIR)’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택가격을 가구당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이야기합니다. 이 지수를 이용해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 세대들은 15년 동안 돈 한 푼 안 쓰고 모아야만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박 대통령의 인기는 추락할 것입니다.”

         “정박사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정박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인가요? 잘못된 논리면 역으로 당하는 것인데”

         “네 사실입니다. 저금리가 되면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고,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다면 부동산 시장에서 매수자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실수요자가 아닌 가수요자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실수요자만 움직이는 부동산 시장은 냉각기이고, 가격은 하향 또는 안정 추세를 보입니다. 하지만 가수요가 붙으면 가격은 상승 추세를 보입니다. 부동산이 자산으로 가지는 특성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두 분은 법을 공부하신 분이라 다소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여의도에 경제학을 전공하고 통계를 잘 다루는 의원님이 있을 것입니다. 문 의원님을 따르는 의원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시면 잘 만들어 올 거입니다.”

         “문 의원님 곁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는 김미현 의원이 아마도 거기에 적합할 것입니다.”

         “김미현 의원이 통계를 잘 알지요, 경제학박사이고, 지시하면 말뜻을 잘 알아듣고 일도 잘합니다.”

         “지금 가격이 안정된 가격이지만, 통계자료를 이용해서 일반인들이 착각하게 흔들어야 합니다. 2015년 평균 근로자 소득은 3,245만 원입니다. 이를 상위 50%로 바꾸면 2,299만 원입니다. 2015년에 아파트 중위가격은 처음으로 5억 원을 넘었습니다. 우상향하는 그래프로 완만한 상승 중입니다만 처음으로 5억 원을 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 됩니다. 상징적인 숫자가 되어 머리에 각인될 것입니다. 그리고 PIR로 계산하면 5억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평균 소득으로는 15년 4개월, 상위 50%로 계산을 하면 21년 7개월입니다. PIR 기준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숫자는 다른 게 나올 수 있지만, 청년을 기준으로 하면 거짓말이 아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언론과 방송으로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21년 7개월을 모아야만 집을 살 수 있는 불쌍한 청년세대’라고 한다면 여론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런데 저금리 정책이라니···, ‘빚내서 집을 사라는 것인가?’라는 구호가 딱 맞는 것입니다. 서민들은 폭등하는 집값에 허리가 휘고, 빚을 내서 집을 사야 하는 정책은 잘못된 정책으로 밀어붙이면 됩니다. 집 있는 사람들만 좋은 그런 정책을 만들지 말고,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서 가격을 하락시키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논리적으로 틀린 주장은 아닙니다. 여기다가 다주택자들을 양념으로 곁들이면 더 좋을 것입니다.”

         “윤 선배님, 우리 당에 자문위원으로 자리 하나 만들어 드려야 되는 것 아닌가요? 부동산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였더니, 정치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그럴까요? 정 박사님, 자리 하나 만들어 드릴까요?”

         “아닙니다.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정치하고는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그냥 이렇게 시간 되실 때, 부동산 관련해서 제 의견 들어주시면 그것으로도 충분하고 넘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조용하게 일어나서 문의원을 향해서 그리고 윤의원을 향해서 90도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큰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윤 선배님, 이런 귀한 분을 옆에 두시고”

         “오늘 즐거웠다니 영광입니다.”

         “윤 선배님, 화천 시장은 윤 선배님 의견대로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식사 대접 잘 받았습니다.”

         식사가 마치고 문준식 의원은 자기 의원실로 돌아갔고, 윤의원하고 둘이 남았다.

         “정 박사, 문준식 의원이 삵쾡이 같은 사람이다. 목표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산 놈이든 죽은 놈이든 상관없이 물어뜯는 사람인데, 나처럼 연설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야, 답변 잘하였네, 역시 정박사 답네”

         “아닙니다. 어제 가르침 주신대로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지침을 주어서, 그런데 앞으로 박 대통령 대척점에 자민당에서 문준식 의원이 있으면, 윤 의원님의 당내 입지가 곤란한 것 아닌가요?”

         “그것은 모르지, 단지 부동산정책만 가지고는 박 대통령을 공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문준식 의원도 그것을 알고 있고, 다른 기회를 찾을 것이다.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무언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지. 일단 문준식 의원이 앞에 가라고 해, 대신 화천 시장을 우리가 손에 쥐었으니 괜찮아. 기회가 올 것이다. 화천 시장에 그 친구가 떨어지면 헛수고 한 것이겠지만···, 당 차원에서 움직일 것이니, 이제 정 박사도 공식적으로는 뒤로 빠져, 얼굴도 보이지 마라. 문의원이 사람 붙일 수도 있으니 늘 조심해”

         “오진명이 화천 시장이 될 것이고, 의원님의 ‘말’이 되도록 만들어 놓겠습니다.”     


<1부 끝>


<2부 조만간에 준비해서 올리겟습니다.>


<1부 주요 인물 및 명칭 소개 – 향후 스토리 전개에 따라 바뀔 수 있음>     

정태현 – 부동산 사업자

박은옥 – 정태현 아내

김미희 - 동창, 태현과 연인 관계, 비즈니스동반자

박호영 – 현직 검사, 태현이 동창

김형기 – 전직 조폭 행동대장, 태현이 동창

정 팀장 – 태현이 분양 영업을 할 때 팀장으로 인연 맺음, 태현이 수족이 됨

강혜영 – 김미희 대학 동기, 2부에서 오진명에게 성폭행 당함

오진명 – 태현의 박사 선배, 화천시 시장으로 당선

장혁남 – ㈜동인건설 대표이사, 강혜영 연인, 금강 신도시 아파트 개발사업 참여, 백혈병으로 2부에서 사망 

윤희로 – 박호영 법대 선배, 운동권 정치인, 2부에서 대통령 당선(문준식대통령 후임)

문준식 - 윤희로 라이벌, 2부에서 박대통령 다음으로 대통령 당선

노재호 – 박호영 후배, LH근무, 2부에서 국토부 차관으로 문준식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기획  

㈜선우 – 태현이 만든 법인

㈜원스톱 – 2부에서 태현이 만든 플랫폼 회사 

㈜대유산업 – 2부에서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SPC(금강 신도시 소장동 아파트 사업 참여)

㈜천하산업 – 2부에서 금강 신도시 소장동 아파트 개발 참여하는 투자법인     

화천시 – 서울 외곽 신도시, 인구 90만 명

금강 신도시 – 화천시 소장동에 위치한 아파트 개발 사업하는 택지개발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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