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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13. 2024

부미남 03. 양야치 안되게 내 옆에 있어 줘

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소파에 누워 책을 읽던 여자는 핸드폰 진동이 울리자, 문자를 확인하고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허겁지겁 일어난다. 거울을 보고 다시 문자를 열어 확인한다.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살짝 웃는 미소가 보인다. 도톰한 입술이 벌어지면서 하얀 치아가 보일락 말락 한다. 거울 속의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화장하기 시작한다. 마무리되었다는 듯이 일어났다가 다시 앉는다. 립스틱을 지웠다가 다시 바른다. 옷장을 열어보고 빠르게 손으로 옷걸이를 앞으로 치고 나갔다가 뒤로 간다. 연한 감청색 롱 원피스에서 손이 멈춘다. 서랍을 열어 가지런히 정리된 속옷을 본다. 세트로 놓여있는 하얀 속옷을 꺼내어 갈아입는다. 새로 입는 옷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다. 반짝이는 눈이 눈웃음을 친다. 하얀 얼굴에 작고 도톰한 분홍빛 입술을 새침하게 내미는 여자가 거울 속에 있다.           


  남자는 술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부부가 되어 삶의 극히 일부만 공유하고 있다면, 공유하지 않는 다른 삶은 모순으로 가득한 공유이다. 개별적인 모습을 서로가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서로가 다른 삶을 사는 것이고, 평생 살아도 낯섦으로 각인되어가는 것이다. 상호 간의 존중은 겉으로 나타난 모습이고, 실제는 무관심한 계약관계이다.           



  여자는 소주 한잔 마시며 남자를 기다린다. 소주의 쓴맛이 코끝을 스치고,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가슴을 싸하게 한다. 물 한잔을 마신다.     


      

  1년 전에 남자와 여자는 이 집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시었다. 젊은 남녀들이 써 놓았을 벽의 낙서는 1년 사이에 빼곡하게 더 많아졌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것은 여름 다 보내고 찬 바람이 불던 계절이었다. 이수역 7번 출구 앞에서 ‘상가 분양’이라는 홍보용 띠를 두르고, 분양전단지 나누어 주면서 호객행위 하는 남자를 보았다. 멋쩍게 웃는 모습이 짠했다. 저녁에 태평백화점 뒷골목에 있는 순댓국집에서 소주잔을 들었다.     


     

  “이건 너하고 안 어울려, 이것 말고 다른 일 찾아서 해라. 네 마누라한테 이야기해, 바보같이 가만히 있지 말고, 너 망했다고 말해. 그리고 너 엄마도 돈 많잖아, 좀 도와 달라고 해, 네가 남편이고 아들이잖아.” 

  여자는 눈을 부라리고 노려보면서 말을 거침없이 내 뿜는다. 단호함이 소리에 담겨있다. 

  “이쪽은 너하고 안 어울려, 지금 네 모습을 봐, 일비 만 원 받자고 전철역에서 온종일 뭐 하는 짓이야.” 

  인상을 쓰면서 겁주듯이 말하지만, 남자 눈에는 그런 여자가 귀엽게 보인다.

  “계약 웃기고 있네, 너 같은 순진한 애들은 계약 못써, 지금 너희 분양하는 사람 중에서 몇 명이 계약을 쓸 것 같아. 지나가던 사람이 ‘어이구, 감사합니다’ 계약한다고?” 

  여자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친다. 

  “번갯불 맞는 확률이야, 말이 좋아 분양이지, 반은 사기야, 너 알만한 놈이 왜 그래, MBA인가 뭔가 대학원까지 공부하였다면서, 여기는 너하고 안 어울려.”

  남자는 웃으면서 자기 술잔을 건네고 술 따라준다. 술잔을 받은 여자는 단숨에 마신다. 마신 술잔을 돌려주고 남자에게 술을 따라준다. 

  “부동산이 이런 건지 몰랐어. 사람들이 부동산을 사면서 수십억 원을 주고받는데, 주먹구구식이야.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짓거리들 하고 있어. 차를 하나 사도 별의별 검토 다 하고, 이리보고 조리보고, 따지면서 사는데, 부동산은 그렇게 안 해,’ 

  그냥 돈 된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막 사, 그게 말이 돼, 웃기지 않니?”

  남자는 지금까지 이것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짓고 술을 한잔 마시면서 말한다.

  “얼렁뚱땅 돈을 주고받아, 그러면서 좋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이런 게 부동산 사업이라면, 부동산에 내 인생 모두 걸어 볼까 해”          



  여자 앞에 있으니, 갑갑하게 자기 인생을 가로막고 있던 장막을 찢어내는 느낌이다. 남자는 허세인지 우쭐함인지 모를 환상에 젖는다. 

  여자는 자기를 쳐다보면서 웃는 남자를 보고는, ‘왜 웃지’ 하는 생각이다. 겁이 난다. 자기로 인해 부동산 분양 판에 뛰어들었고, 인생의 험한 꼴을 볼까, 걱정되었다.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베인 노숙자 얼굴이 남자에게 겹쳐져 보였다. 소주병을 한 손에 들고 술에 취해 거리를 싸돌아다니며 행패 부리는 모습이 보인다. 호흡이 버거웠다. 가슴이 아리면서 눈에 살짝 이슬이 맺힌다.           



  “사업이 망하면서 돈 없이 한량처럼 산 게, 4년 가까이 되었어. 그 누구도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를 안 해, 말 안 해 그런 것일 뿐, 다들 편하게 살아, 나만 힘든 거야.”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니?” 

  여자의 목소리는 단호함에서 부드럽고 따뜻함으로 바뀌었다. 여자 목소리에서 남자는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이다. 

  너무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라서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는데, 두 사람의 눈은 서로를 바라보며 잔잔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암튼 어쩌다가 평일에 내가 집에 있으면 다들 좋아해. 그리고 돈도 못 벌면서 왜 나가냐고, 그냥 집에 있으라고, 잔인하게 한마디 던지지.” 

  길게 한숨을 쉬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웃기지 않니? 그래서 늘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가. 집에서 맨정신으로 있기 힘들거든, 나라는 존재는 우리 집에서 없어진 지 오래야. 가족들에게서 존재감이 사라진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돈이 곧 권력이 되는 건가 싶어서 싫어”

  혹시, 열등감에 빠진 남자인가 싶어 말한다. 

  “그런 감정에 빠지지 말고, 능력 되는 마누라가 돈 벌면 어때서, 넌 그냥 살아. 부모 도움받고 사는 놈들도 많아”

  “나라는 놈이 뭐 하는 놈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참기 어려워.”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뀌어 가는 여자의 눈길을 남자가 바라본다. 자기를 걱정해주는 여자에게 고마운 감정이 솟는다. 남자는 자기 결심을 여자에게 말한다.

  “부동산 할 만한 사업이야, 깃발 꽂으면 내 땅이 되는 거야”

  남자는 기회가 한 번쯤 올 거라고···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일이 부동산일지는 몰랐다. 남자의 말은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여자는 남자의 눈이 자기가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았다. 

  “지금 밑그림 그리는 중이다. 그림이 그려지면 너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하마”

  남자는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호랑이 그리다가 잘 못 그리면 죽는 것이다. 처음부터 고양이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남은 인생에 미련을 남길 필요가 없다. 태어났고, 그래서 살아야 한다면 호랑이로 살아가는 것이다.           



  입구를 바라보면서 남자가 나타날 때를 기다린다. 문이 열리면 반사적으로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걸어들어오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실망감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수역에서 술 먹던 그 날, 무거운 마음으로 헤어지고, 늘 술에 취해 사는 남자가 이해되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인 것 같아 슬펐다. 분양 일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이 걱정되었고 이유도 모르게 미안했다. 남자 생각이 많아질수록 남자의 아픔과 슬픔이 여자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몇 번 연락해보고 싶은 것을 참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의 하루하루는 그리움이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목마름으로 다가왔다.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남자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고, 남자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흔든다. 여자의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는 웃음이 나타나고, 남자의 손에 화답하듯이 자기 손을 들어 흔든다.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내가 술 한 잔 살게, 내가 너보다 돈 많이 버는 것 같은데, 내가 사마” 

  남자가 여자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씩 웃는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오늘 내가 술 먹고 싶거든.” 

  웃는 얼굴에 익살스러운 장난기가 있다. 1년 전쯤, 여자가 남자에게 했던 말이다. 

  여자 술잔에 술 따라주고, 남자는 자기 술잔을 들고 바로 마신다. 여자에게 술 따라달라며 빈 소주잔을 내민다. 여자는 남자가 낯설게 보였다. 술 따라주는 자기 손을 넘어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쟤 누구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는데, 낯선 얼굴로 다가온다. 남자가 슈트 안주머니에서 휜 봉투를 꺼낸다.

  “너한테 고맙다. 이거 너한테 주는 내 마음이다. 내가 빚지고는 못 사는 놈이거든. 돈 없을 때 너한테 술도 많이 얻어먹고, 너한테만 주는 것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마라.” 

  남자는 여자를 보면서 계속 웃고 있다. 여자는 봉투를 들고 열어보았다. 100만 원 수표 10장이다. 당황한 여자의 얼굴색이 변한다.

  “이 돈은 너 스카웃 비용이야, 인터넷 검색하면 내가 쓴 글이 여기저기 검색되는 것을 볼 수 있어. 내가 그린 그림, 그 끝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돈이 내 눈에 보여”

  남자는 골뱅이를 하나 집어 들고 껍데기를 툭툭 까서 속살을 발라낸다. 

  “같이 일하자 어때?”

  벌거벗은 골뱅이를 여자 앞에 있는 접시에 올려놓는다. 자기를 챙기는 듯한 남자 손에 여자의 시선이 멈춘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신다. 남자는 그동안 있었던 일, 여자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업 계획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남자가 똑똑한 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정말 똑똑한 놈처럼 보였다. 

  순간 여자의 눈이 빛났다. 여자의 눈에 보이는 남자의 눈빛이, 남자의 콧등이,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생각 속에서 여자만의 육감으로 변하였다. 낯설게 다가오는 저 얼굴, 저놈 말려야 한다. 

  “내 말 잘 들어” 

  여자는 자신의 눈빛을 바꾸고 비장하게 말한다. 

  “내가 너 같은 놈들, 이 바닥에서 진짜 많이 봤다. 분양해서 돈 좀 벌면 대행사 차린다고 깝죽거리고, 시행한다고 사기치고 다니지, 특히 너같이 배운 놈들이 그래, 좀 안다고 이 바닥을 아주 우습게 봐. 돈 좀 벌면 환장하지, 나는 너처럼 배우지 못했어도 양아치는 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내가 양아치 안 되게 네가 내 옆에 있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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