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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12. 2024

부미남 02. 수수료 인생

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 소설, 돈





   분양사무실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J는, 남자가 분양 현장을 떠돌아다니면서 일비 받아먹고 노는 양아치인 줄 알았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갑작스러운 가을비가 내린 어느 날이었다. 비 맞은 떠돌이 개가 어슬렁어슬렁 비 피할 처마 찾아 웅크리고 들어오듯, 분양사무실 문을 열고는 ‘일 좀 합시다’ 하면서 느릿느릿 들어왔다. 구저분하게 차가운 빗물을 얼굴에 흘리고 있었다. 부동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똥개처럼 나타난 남자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진돗개로 바뀌었다. 반듯한 슈트를 입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곱슬머리, 부처의 얼굴처럼 턱 아래 부드러운 얼굴선, 살짝 보이는 보조개는 누가 봐도 첫인상이 선하다, 생각할 것이다. 라디오 DJ 같은 묵직한 목소리를 가졌다. 이 남자와 말 섞으면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있다. 자신의 눈과 귀로 만들어진 남자의 이미지에 마음이 동하였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형님으로 부르겠다면서 남자가 하는 것들을 지켜보았다.     


      

  “형님이 처음 일 좀 해보겠다고 오셨을 때 놀랬습니다. 저도 이 일을 한 지는 4년 정도입니다만, 대부분 직장 구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오는 거지, ‘일 좀 하자’고 형님처럼 자기 발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맥주 한잔 들이키면서 J가 말한다.

  “팀장님은 제가 부동산으로 인연 맺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지금 네이버에 부동산 투자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상가 114, 상가뉴스레이다, 조인스랜드와 부동산 114, 스피드뱅크 등등에 부동산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SNS에 글 올릴 곳은 차고 넘칩니다. 부동산 책을 출판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합니다. 팀장님이 도와줘야 합니다.” 

  “지금 형님이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형님 칼럼 보고 오는 사람들인 거죠?”

  “맞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각종 글을 읽고 상담 신청한 사람들이죠. 그들을 만나고 가짜로 만든 명함을 보여 줍니다.”

  “진짜요? 속이는 거네요”

  “네, 아직 사업자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가짜 명함이지만 그들은 저를 모르죠. 저는 그들을 알고···, 한번 만나고 두 번 만나면서 그들은 저를 신뢰합니다. 제가 쓴 글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라서 제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 별 볼 일 있는 사람으로 판단합니다. 저에 대한 호칭이 선생님입니다. 그들의 생각에 저에 대한 믿음이 융단 길처럼 깔려있는 겁니다.”

  “그게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겁니다. 투자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사결정을 본인들이 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하는 겁니다.”

  J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생각났다. 삶과 죽음의 결정이 의사의 손에 있는 것이고, 당사자는 물론 보호자인 아들도 그 행위에 일체 관여할 수 없었다. 하얀 가운에서 나온 말 한마디에 기가 죽었다. 의사는 전문용어를 섞어가면서 쉽게 설명해 주지만, 하나도 모른다, 알아들은 척할 뿐이다. 청구서에 찍힌 돈의 액수는 당연히 의미 없는 숫자였고, 입금해야만 할 돈이라는 것에 의심하지 않았다. 

  “팀장님, 사기와 속임수가 다른 건가요?”

  “네? 뭐라고요?”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말, 거짓말이죠. 원가가 100원이라고 하여도 어떤 사람에게는 300원에 팔고, 어떤 사람에게는 130원에 파는 거죠, 사기 아닙니다. 속이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100만 원 받고도 일하지만, 1,000만 원 받아야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고요, 정상가격이라는 말은 원래 의미가 없는 겁니다. 수요와 공급···, 학교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동산에 정상가격이 있나요?”

  이 남자는 조만간에 분양업계의 전설이 될 것 같다. 첫 계약이 나온 지 두 달 만에 5건을 계약했다. ‘수수료가 대체 얼마냐? 2억 5천만 원 정도 되겠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이 남자가 하는 말을 듣는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또 실패했습니다. 정말 끝없이 추락하였고, ‘밑바닥 인생이다’생각할 때 부동산하고 인연 맺은 겁니다. 생각 없이 이수역을 나왔는데, 비가 오더군요, 분양 현수막이 눈에 뜨인 겁니다. 비를 피하고자 발걸음이 분양사무실로 향했습니다.”

  꺼리는 것 하나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이 남자에게 J는 자석에 끌려 들어가듯이 끌려간다.           



  창경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종로 원서동에 있는 빌라, 3층에 집이 있다. 현대빌딩을 끼고 북촌 방향으로 걷다가 오른쪽 비탈길을 정상까지 기어 올라가야 하는 초라한 집이지만, 풍광은 서울에서 최고의 명당자리이다. 창경궁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거실에서 내려 본다. 햇살이 거실로 비쳐 들어오는 아침, 손에 커피 한잔 들고 창경궁을 보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밥벌이 능력이 없어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아왔다. 여유 있는 척하지만, 궁상떠는 찌질 인생이다. 아름다운 인생도 있고, 잔인한 인생도 있는 것이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J는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사실이라는 현실, 현실이라는 고달픔, 고달픔은 돈이었다.          



  이 남자와는 인연인 것 같다. 인연은 우연으로 우리 앞에 불현듯 다가온다. 누구는 그 인연을 잡고, 누구는 그 인연을 스치듯 보낸다. 어떤 인연이었는지는 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희미한 빛이 자기 인생에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을 J는 하고 있다. 

  “팀장님, 분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파는 거죠.”

  “팔아야 돈 벌죠”

  “부동산 전문가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전문가로 가장해서는 물건 파는 사람입니다. 다들 파는 사람, 즉 매도자들을 위해서 일합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저는 물건을 사는 사람 쪽에 승부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찾아오게끔, 제 이름이 브랜드가 돼야 하고, 포지션이 돼야 합니다. 마케팅의 하나죠. 부동산을 파는 사람은 누군지 확실하고, 부동산을 사는 사람은 누군지 모르고, 그럼 돈 지나는 길목이 어디에 있나요?”          



  대화 나눌수록 ‘뭐 이런 사람이 있나’ 놀라움이 계속 치고 들어왔다. J는 여기저기 현장 옮겨 다니면서 분양 영업하였다. 수원, 파주, 인천, 남양주 등 서울과 경기권을 돌아다니면서 일했다. 분양 상담하고, 분양전단지 돌리고, 태엽을 감아놓은 목각인형처럼 떠들었다. 어떤 날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가식적 미소는 J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물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임대료 300만 원 나오는 상가 투자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양수리에 땅이 좋은 게 나왔는데,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

  운 좋으면 계약하고, 운 나쁘면 굶는 것이 분양 영업이었다. 피라미드 앵벌이 조직이다. 전율이 몸에 싸하게 흘렀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자랑할 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남들처럼 평범한 그런 삶이었는데, 본인의 밥벌이 능력이 왜 남들보다 떨어지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형님, 형님 계획이 무엇인가요?”

  “저요, 일단 분양대행사를 차리는 겁니다. 그리고 10년 안에 제 이름으로 서울에 빌딩 하나 올려보는 겁니다.”          



  부드럽지만 속삭이듯 다가오는 자기감정이 무엇인지, J는 생각에 잠긴다. 이 남자의 삶에 공범자가 돼야 한다는 느낌이 왔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벤처 사업하다가 망하고 부동산에 뛰어들었다는 남자를 바라본다. 막연하지만 ‘뭔가’가 이 남자에게 있다. 이 남자의 말은 믿을 수 없지만, 이 남자가 수수료로 돈 번 것은 자기 눈으로 보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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