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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11. 2024

부미남 01. 부동산 해볼까?

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1부

2005년-2009년     





  누구도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내 인생을 살고 있다. 손가락질하는 하루살이로 살 것인지, 손가락질당하는 하루살이로 살 것인지, 그것은 오늘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신사역을 출발한 전철은 한강을 건너기 위해 어둠 속에서 눈 부신 햇살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다. 물이 보이자, 고래가 생각났다.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밖으로 나오고, 햇살에 바닷물을 뿜어낸다. 고래는 나지막한 소리 한번 지르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은빛 반짝이는 한강 물결이 창밖으로 보이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열심히 사는 것과 돈 버는 것은 관련 없다. 아침에 반짝이는 이슬은 따사한 햇살에 소리 없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Amor Fati라는 노래에 춤을 춘다. Amor Fati는 절규이지, 노래가 아니다. 춤추며 환호하는 사람을 보면 죽어가는 자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옥수역에 도착하자 심심한 얼굴의 사람들이 몸을 부대끼면서 내리고 탄다. 남자 앞뒤로 사람들이 밀려오고, 남자의 몸을 툭툭 건드린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권태로움이 몸에서 몸으로 전염된다. 전철은 꿀렁꿀렁하면서 옥수역을 출발해 땅속으로 들어간다. 도시의 밑바닥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개미가 생각났다. 태어나고 죽어가는 시간이 땅속에서 이루어진다. 헛헛한 인생들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습관적으로 태어났고, 습관적으로 죽었을 뿐이다.      



  결혼 생활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녀가 만나 에로스에 대한 욕망으로 결혼하였지만, 에로스는 결혼과 동시에 사라지고 없다. 상대의 선택에 옳고 그름으로 남아 싸운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다. 인생은 점점 거짓이라는 잔인함으로 끝나가는 노을이 되고 있다. 외로움이 쌓여 고독이 익숙하게 되었다. 살아야만 알 수 있는 모순덩어리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나이가 되었다.     


  돈암역에서 내리고 술집을 찾아간다. 흔들리는 미닫이문을 열자, 중간쯤에 여자가 웃는 얼굴로 바라본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에 흘린 땀이 차갑게 느껴진다. 술 취한 손님들이 술김에 쓴 낙서들이 벽에 가득하다. ‘소정아, 영원히 사랑한다.’ ‘26살 내 청춘, 열심히 살자’ ‘나와 너, 그래서 우리’ ‘나의 사랑 미애 forever’ ‘오늘 이 순간, 술자리 기억하며’ 등의 의미 없는 낙서지만, 남의 인생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낙서 쓴 사람은 낙서에 의미를 부여하였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소주잔을 부딪친다. 목젖 뒤로 소주의 쌉쌀함을 넘긴다.

  “술 먹기 전에 한마디 하자.”

  여자는 남자 눈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기분 나빠 하지 말고, 너 한 달에 얼마 버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너보다는 돈 많이 버는 것 같은데, 내가 술 한 잔 살게.”     남자 얼굴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나쁘기는 나야 고맙지, 넌 무슨 돈을 그렇게 잘 벌어, 더군다나 여자가 쉽지 않을 터인데”

  여자는 동창 모임에 처음 갔었다.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어렴풋이 아는 얼굴도 있다. 다들 동창이라고 반갑게 맞아준다. 곱슬머리에 안경 쓰고 있는 한 남자의 따뜻한 음성이 끌림으로 귀에 다가왔다. 자꾸 눈길이 갔다.

  오늘 여자는 술 먹고 싶었다. 술 먹을 친구 찾다가, 동창 모임에서 보았던 그 남자가···, 목소리 좋았던 그 친구가 생각났다.

  한 시간이 지난 지금, 소주잔 마주 놓고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오래전에 알던 친구처럼 편안하다. 특별한 하루이다.

  “너 무슨 일하는 거야, 부동산 쪽인 것 같은데, 중개업자야”

  “아니, 분양하는 일을 해, 들어보았니?”

  “아니, 처음 들어봐, 분양이 뭐야?”

  “분양이라고”

  여자가 웃는다. 남자는 여자가 왜 웃는지 모른다. 잠시 생각한다. ‘분양이라는 것을 한다. ‘분양’이라는 단어에서 추리를 시작한다.

  “야! 모르니깐 물어보지 뭘 웃냐?”

  “아니, 너같이 배운 놈이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잖아”

  “영업 같은 거지?

  “음, 비슷하지, 영업이라 할 수 있지”

  “그럼 어디서 하는 건데?”

  “지금은 용인 동백지구에서 일해, 쥬네브라고 들어봤어?”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용인에서 일한다고, 여기서 용인까지 출근하는 거야? 쥬네브는 또 뭐야?”

  “요즘 부동산으로 가장 뜨거운 지역이야. 신문에 분양 광고 무지하게 내고 있는데, 너도나도 다들 돈 된다고 해서, 나도 여기에서 일해. 분양 좀 한다는 사람들, 다 여기 모여있다고 보면 돼.”

  “음, 뭔 말인지 모르겠네.”

  “신문 좀 봐라.”

  “신문이야 보지, 그런데 신문 봐도, 그런 광고에는 관심이 없으니, 난···, 집 보러 다닌 적도 없어. 이사했으면 했나보다 하는 거지”

  “집이 누구 명의데? 네 명의 아냐?”

  “아냐, 엄마 명의지, 등기권리증이 집문서라면서? 그것도 최근에 알았어. 근데 나도 너 하는 것 해볼까? 뭐 어려운 일이야?”

  “쉽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근데 너는 하지 마라. 너 같이 배운 놈은 이런 것 하면 안 돼, 먹물 들어간 놈이 할 일이 아니야.”

  소주병이 테이블에 쌓였다. 늘 그렇듯이 남자는 이미 주량을 넘었다. 하지만 여자가 보는 남자는 멀쩡해 보였다. 말투가 공손하고, 말이 꼬이지 않았다. 생각이 ‘왔다 갔다’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함이 있는 친구처럼 보였다.      



  여자는 병든 어머니 수발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었다. 돈벌이가 급했던 여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동대문 종합시장 2층 원단 도매상에서 직원으로 일했었다. IMF라는 경제적 위기가 끝나갈 무렵에, 동대문 ‘밀레오레’가 개발되고 있었다. ‘쇼핑몰 분양’이란 노란 어깨끈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멘 사람들이 분양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갔다. 늦게 출근한 여사장이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그것을 읽어보더니 전화하였다. 여사장은 밀레오레 1층에 있는 점포 4개를 계약하였다. 분양하는 사람들이 여자의 1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수수료로 벌었다는 것을 알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쳐도 모를 그런 경험이, 운명처럼 여자 앞에 나타난 것이다.      



  술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여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소주잔을 입술로 가져간다. 여자 입술 사이로 술이 사라진다. 하얀 손등에 핏줄이 보이는 여자의 손이 술잔을 잡았다가 놓고, 놓았다가 잡는다. 여자는 술잔에 담겨있는 외로움을 마신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아니다. 돈이 없는 허약함, 돈이 없어 조마조마한 시간에 떼밀려 살아가는 외로움이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이 참 곱다고 생각한다. 하얀 얼굴에 단발머리, 빨간 입술이 유난히 도드라지게 보인다. 맑은 눈에 반짝이는 눈빛은 이슬을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백수다. 아침에 갈 곳이 없다. 출판업을 하는 친구 사무실에 간다. 점심 얻어먹고 책을 끄적이면서 시간 보낸다. 수원에서 자바라 제조업 하는 친구가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면 부산까지 따라가서 물건 까대기하고 용돈을 번다. 저녁에는 시장 좌판에 앉아 돼지 허파와 막걸리 먹고 술에 취해 들어간다. IT 사업하다가 망했다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여자는 아직 뿌리 내릴 곳을 찾지 못한 남자의 고독을 보았다. 제대로 밥벌이 하는 놈이 아니었다. 열심히 산 것처럼 보이는데,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나마 마누라 잘 얻어서 그 덕에 사는 놈처럼 보였다. 실패만 계속한 남자였다. 동창들 속에서 혼자 실패자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낙오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야, 힘내”

  “응, 고맙다. 너도 힘내고”

  “자, 마셔”

  “그래 마시자. 인생 그냥 사는 거야, 신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이렇게 살아야지, 사람은 다 제 팔자대로 사는 거야, 그러니깐 넌 그렇게 사는 거고, 난 이렇게 사는 거고”

  “뭐라고? 너 술 취했냐?”

  “너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지? 하나님은 말이야, 사랑의 하나님이··· 아냐, 방관자 하나님, 그리고 침묵의 하나님이지, 사랑의 하나님은 말장난이다. 성경책 보면 사랑은 무슨···, 신이 선할 거라는 것은 편견이야, 악일 수 있는 거지···. 내가 30년 교회 다녔는데, 한 번도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어.”

  남자가 갑자기 하나님 타령하자, 술에 취해서 저러나, 그런 생각 하면서 남자 얼굴을 쳐다본다.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란 말은 들어보았지?“

  "당연히 들어보았지,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이 인간 사랑한다고 하잖아.”

  “그래, 교회는 사랑이잖아”

  “아니야, 하나님은 자기 말 듣는 사람만 사랑하는 거거든···, 그래서 목사 말 잘 듣고, 헌금 많이 하고, 그러면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는 거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교회에 돈을 갖다줘야지”

  여자는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가만히 듣는다.

  “일요일에 툭하면 빠지고, 헌금도 안 하고, 목사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는 내가 아무리 ‘하나님 사랑합니다.’ 해도 사람들이 인정 안 해, 신은 나에게 복종을 요구하는데, 난 그 복종이 싫거든···.’

   목사들이 그러잖아, 말씀에 순종해야만 된다고, 세상에 속한 것은 다 무의미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잖아. 생각할수록 모순덩어리야.’

  나라는 존재가 내 이름으로 내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난 그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교회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안 해, 신의 뜻은 자기들만 아는 거거든,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 죽었어도 부활···, 아니 모르겠고···,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거를 믿기 전에, 죽는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거 아냐? 왜 죽지 않을 거처럼 사냐고···, 천국에 눈이 멀어, 지금 밥 먹고 사는 게 헛짓거리라는 거잖아”

  남자는 안주로 나온 볶음 꼼장어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더니 ‘꼼장어 너는 누구냐’ 속으로 생각하면서 혼자 힐쭉 웃고는 입에 넣는다.

  여자는 남자가 떠드는 말이 뭔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지만, 10년 전쯤에 교회에 가본 적이 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주일헌금, 생일헌금, 일반 감사헌금, 건축헌금, 월정헌금, 십일조 헌금, 추수 감사헌금, 부활절 헌금, 성서주일 헌금, 수요헌금, 헌신예배 헌금, 선교헌금 등등 헌금 종류가 여러 가지라는 것을 알았다. 헌금하지 않고, 가만히 예배보고 있으면 눈치 보였다. 교회에 가는 것이 불편하였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돈이 아까웠다.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음···, 신을 믿는다면 빨리 죽는 것이 축복이고, 죽음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맞는 거거든, 하루라도 더 먼저 천국 가야지,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일찍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 본 적이 없어. 돈 많이 벌게 해달라 하고, 성공하게 해 달라하고,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야,”

  “당연한 거 아냐?”

  “그런가? 아냐···, 십일조 왜 하는지 알아? 십일조 하면 하나님이 돈을 더 많이 준다고 약속했다는 거야. 웃기지?”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이 절로 나오는 듯 크게 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숙여 술잔을 본다.

  “하나님을 빙자해서··· 의심하지 말고 자기 말대로 하라는 거잖아, 그런 개소리가 어디 있어? 신학대학 나오면 신의 뜻을 아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신의 뜻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너, 교회 다니는 사람 맞지"

  앞에 앉아 자기 쳐다보며 말하는 여자를 남자가 바라본다. 시선이 서로를 톡 건드리자, 둘이 풋 웃는다. 남자는 술 한 잔을 마시고 빈 술잔에 술 따라달라고 손을 내민다. 술잔에 술이 쪼르륵 소리 내며 찰랑찰랑 담긴다.

  “교회 다니면서 이웃사랑 외치는데 정작 자기 가족들에게는 무관심하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전혀 몰라.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거든. 웃기는 것 같아.’

  말 나온 김에, 남자와 여자들의 사랑도 마찬가지야, 사랑한다고 말해, 그런데 사랑이 뭐야, 사랑의 감정이 있으면 만나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만지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뭐 그런 게 사랑이란 감정이잖아. 음··· 그냥 감정의 유희야.”

  남자는 손을 턱에 고이고 자기 앞에 놓인 술잔에 투명하게 담긴 소주를 그윽하게 쳐다본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잔을 잡는가 했더니 검지를 술잔에 살짝 찍었다가 꺼낸다. 그리고 맛을 본다.

  황당해하는 여자의 눈과 싱겁게 웃는 남자의 눈이 서로를 본다. 이번에는 피식 둘이 웃는다.

  “난 그런 것 없는 것 같은데,”

  눈과 눈썹이 길게 이어지고, 물방울처럼 빛나는 여자 눈이 이쁘다고 생각하면서 남자가 느릿하게 말한다.

  소주잔을 들어 술을 마신다. 잠시 뒤, 소주병을 잡고 여자 얼굴 보았다가 별 반응이 없자, 씩 웃는다. 그리고 빈 술잔에 술 따르면서 여자 한번 흘끗 보고, 말을 계속한다.

  “신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사람은 천성이 이기적이 동물이거든. 사랑한다는 그 감정 때문에 탐욕이 더 많이 생기고, 악랄해지는 것이 아닐까?”

  “야 뭐가 그리 복잡해, 사랑이면 사랑이고, 사랑 아니면 아닌 거지”

  “음, 그런가? 영원한 사랑 뭐 어쩌고저쩌고···, 그런 게 있나?”

  “그런 거 아냐?”

  “어쨌든 결국 다 말장난이란 것이지, 자기 말 잘 들으면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잖아, 그러니깐 사랑이 뭐냐고? 난 모르겠다고···”      



  여자의 첫사랑은 유부남이었다. 섹스할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였기에, 여자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였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부남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지만 이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가족들을 버릴 수 없다고 한다. 반복되는 유치함이 두 사람 사이에 놓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한 유부남의 구차한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사랑을 동냥질하는 듯한 모멸감에 무너진 여자는 일그러진 마음으로 이별을 받아들였다.

  ‘사랑이 뭐냐’는 술 취한 남자 질문에 여자는 당황했다. 여자는 유부남을 만났을 때, 결과야 어찌 되었든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부동산이나 해볼까?”

  “그래 해봐라”

  테이블에 빈 소주병이 늘어날수록 두 사람 모두 생각하는 것이 점점 맑아졌다. 내일 아침 눈 뜨면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지만, 술 취한 지금은 정신이 또렷하다.

  “많이 먹었다. 집에 가자.”

  “잠깐, 계산하고 오마”

  밖을 나오니 휘황찬란하다. 울긋불긋 밤거리는 화려하다. 술 취한 청춘남녀들이 이쪽저쪽에서 걸어온다. 남자는 20대 젊음이 좋다고 생각한다. 담뱃갑을 열어 담배 꺼내 입에 문다. 도로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꼬리를 물고 왔다 사라지는 것을 본다. 칙칙한 낮보다 좋다. 술에 취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계산을 마친 여자가 웃으면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가게 문 앞에 서서 여자에게 손을 흔든다.

  문밖에서 뭐가 좋은지 손 흔들고 있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생각한다. 자기는 아슬아슬하게 사는 것 같은데, 저놈은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사업이 망해서 밑바닥까지 추락한 놈치고는 생각에 절박함이 없어 보인다.     



  “가자. 너 취했니?”

  “아니, 이정도야 뭐, 괜찮지, 술값 많이 나왔지? 다음에 내가 살게”

  “야 됐고, 노래방 갈까? 괜찮아?”

  “나야, 뭐 좋지”

  술집을 나와 밤거리를 걷는다. 여자가 옆에서 남자 팔에 팔짱을 낀다. 남자는 팔에 와 닿는 여자의 가슴이 느껴진다. 남자는 노래방이 어디 있나 고개 들어 찾는다. 네온사인의 불빛이 가득한 밤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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