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밖으로 나왔다. 밤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사이로 담배 연기를 뿜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슬아슬한 인생을 사는 놈처럼 보인다. ‘저 새끼 어떡하지’ 남자의 뒷모습에서 여자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디 갈까? 한잔 더할 수 있어?”
알록달록 네온 불빛이 출렁거리는 밤거리를 걷는다. 여자가 남자 팔에 팔짱을 낀다. 서너 걸음을 걷는다. 남자는 무심한 듯 앞을 보면서 팔짱을 푼다. 난처해진 여자의 손을 잡는다. 여자의 손을 감싸고 있는 남자의 손이 따뜻하다.
2층에 있는 BAR다. 은은한 향기가 난다. 한쪽 벽에 술이 진열되어 있고, 천정에서 화려한 조명이 진열대에 있는 양주병을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젊은 여자 두 명이 진열대를 등지고 서 있다. 맞은편에는 분리 벽과 커튼이 내려지는 테이블이 4개 보인다. 양주 한 병과 치즈가 테이블에 깔렸다. 아가씨가 커튼을 내려주고 간다. 테이블 위에 여자의 손이 있다. 테이블의 조명에 가지런히 보이는 여자의 손가락과 손등이 벌거벗은 유혹으로 다가온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기억 속의 설렘이 남자의 가슴에 있다. 우습게도 본능적 욕구가 이성을 이기고 있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다. 여자의 손등을 위에서 아래로 남자의 손가락이 지나간다. 보드라웠다. 여자는 현실이 몽롱함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조명은 남자를 실루엣으로 만든다. 테이블 위에 술이 반쯤 담겨있는 술잔이 보인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가볍게 잡는다. 여자는 자기의 손이 남자의 손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다. 남자의 손등이 투명하게 보인다. 지금껏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초조함이 있다.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함이 있다. 고개 들어 조명 뒤, 어두운 그림자에 숨어 있는 남자를 찾는다. 남자가 일어나더니 몸을 앞으로 내밀어 여자의 입술을 훔친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고 생각하였고, 순간적으로 여자의 눈으로 파고드는 남자의 모습에 눈을 감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몸은 그대로였다. 멍했다. 남자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코끝으로 술 향이 오르는데, 몽롱했다. 아랫입술이 본능적 감각으로 벌어진다. 부드럽게 스치고 간 차가움이 입술에 남아있다. 남자 입술의 흔적이다. 아쉬움이 길게 나온다. 잠깐의 시간, 정적이 두 사람을 감싼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부끄러운 호기심이 여자에게 생긴다. 여자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남자가 일어나 여자 옆자리로 옮긴다. 여자가 기대어 온다. 여자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설렘을 어둠 속에서 기다린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고개를 돌려 미끄러지듯 눈길을 마주친다. 여자의 날숨은 남자의 들숨이 된다. 여자의 입술이 흥분으로 벌어지는 찰나, 남자와 여자의 입술이 포개진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끝이 파고든다. 두 사람의 시간만이 따로 존재한다.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면서 감았던 눈이 떠진다. 눈빛이 달라졌음을 서로가 본다. 남자의 눈에 욕정이 가득히 보였다가 사라지고, 여자의 눈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왔다.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또 다른 이유가 생기고 있다. 삶의 침묵 속에 억눌려 있던 여자의 마음에 사랑이 솟아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늦은 사랑이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니 뜨겁다. 술 때문이 아니다. 부끄러움이다. 눈을 감는다. 잔인함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어둠 속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어둠 밖에서 불안하게 걷는다. 술을 한잔 마신다. 술을 따른다.
“우리, 불륜이다.”
사람은 자기들 사랑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의 집착을 만들고, 자기만의 희생을 하고, 자기만의 분노를 쏟아낸다. 여자는 자신만의 사랑을 가볍게 생각하겠다, 한다. 남자는 그 사랑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랑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른다. 대부분 죽음으로 끝나고, 위선으로 끝난다. 에로스가 있을 때 사랑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