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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16. 2024

부미남 05. 부동산 강의는 미끼

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남자의 강의 화법에 스며든 사람들의 긴장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강의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지고, 사람들의 눈에는 남자에 대한 신뢰가 가득하다. 

  저녁은 소주를 곁들인 식사가 진행된다. 책을 가지고 온 사람이 주섬주섬 가방에서 ‘상가투자에 돈 있다’라는 책을 꺼내 사인해 달라고 내민다. ‘惠存(혜존), 人得於成無信物心之失(인득어성무신물심지실)’ 라고 쓴다. 사람을 얻으면 성공하고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는 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남자가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적는다. 

  사람들이 거침없이 질문하면, 남자는 주저함 없이 답변한다. 모든 시선이 남자의 입술에 집중된다. 남자가 술잔을 들면 다 같이 술잔을 든다. 대구에서 왔다는 수강생이 조용히 있다가 고개를 갸웃해 보이고 남자에게 묻는다. 

  “오늘 강의, 그 어떤 곳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살아있는 강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상가투자 성공 Know-how’, 한마디로 말하면 뭡니까?”

  까칠하게 염탐하는 듯한 질문 속에 미끼가 숨어 있다. 잘못 답하면, 혓바닥이 얼얼하도록 종일 떠들면서 쌓아온 신뢰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을 마주 본다. 대담하면서도 예리하게 대답한다. 

  “되팔 수 없는 물건은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말을 안 한다. 남자의 기세에 압도당한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을 다시 보면서 말한다.

  “되팔 수 없는 물건을 왜 삽니까? 되팔 수 있다는 거는 투자자가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거고, 다른 말로 Cash Flow가 좋다는 겁니다. 그런 부동산···, 그 부동산에 투자하면 돈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팔까요? 아니면, 죽을 때까지 갖고 있을까요?”

  상대가 던진 미끼는 끊어버리고, 욕심으로 가득 찬 그들 마음 깊은 곳에 낚시를 던진다. 남자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마음에 생긴다. 사람들 눈앞에 미끼가 아른거리는 거다. 한 명이 낚싯바늘을 순간적으로 문다. 

  “선생님에게 투자의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자는 손에 팽팽하게 쥔 줄을 사정없이 낚아챈다.           



  강의 듣고 싶은 사람은 돈을 내야 한다. 남자하고 상담하고 싶으면 돈을 내야 한다. 계약이 이루어지면 또 돈을 내야 한다. 부동산은 무료 상담, 무료 강의가 기본이다. 공짜가 당연한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남자는 보여 주었다. 부동산업계에서 처음 시도하였다. 여자가 투자 컨설팅 용역계약서에 대한 서류를 나누어준다. 컨설팅의 정의와 용역 기간, 계약 내용, 컨설팅 수수료, 업무 및 책임 범위, 그리고 의사결정 방식 등이 정리되어 있다. 새로운 부동산 Business Model이다.

  남자의 지시를 받아 J가 현장을 수배하고, 그중에 투자해도 될 만한 것을 여자가 임장 다닌다. 그리고 세 사람이 모여서 후보 물건 5개를 결정한다. 미끼를 입에 문 사람들하고 5곳에 임장활동을 한다. 움직이는 차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체크 할지를 알려준다. 그렇게 하루 내내 현장을 다닌다. 사람들은 임장하는 물건들이 투자할 만하다고 자기들끼리 의견 교환한다. 

  임장활동이 끝나면 미리 만들어 놓은 컨설팅 보고서를 나누어 준다. 컨설팅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사람들은 서로 의아한 눈빛을 교환한다. 예상 못 한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기술되어 있다. 사람들은 투자 상담하고 물건 자료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 건물 개요, 사진하고 등기부 등본, 그리고 임대차 정보 포함하여 A4지 2~3장이다. 하지만, 지금 보고서는 40여 페이지가 넘는다. 컨설팅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는 투자 적격 또는 투자부적격으로 구분되어있다. 오늘 임장한 물건에서 2곳만 투자적격이고, 나머지는 투자부적격이다. 사람들 생각에 혼란이 온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남자가 설명한다. 

  설명을 듣던 한 사람이 마음을 졸이며 낚싯바늘을 꿀꺽 뱃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물건 제가 계약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죠?” 

  이어서 활활 타오르는 욕심에 부채질 당한, 또 다른 사람이 서둘러 말한다. 

  “그럼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한발 늦었다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남자에게 신신당부한다. 자기에게 먼저 연락을 달라는 것이다. 임장활동 안 해도 된다면서, 미리 연락해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계약금 입금하겠다고 한다. 돈에 대한 욕심이 남자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진 것이다. 믿음을 통해 남자는 돈을 버는 것이다. 



  세 사람이 팀을 이루어,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남자가 그린 그림에 자기들 역할을 한 것이다. 일식 전문점에서 자축하는 모임을 했다. 분양 현장을 떠나, J는 남자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면서 알았다. 인생을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분양 현장 따라 떠돌아다니는 역마살 인생이었다. 길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지금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저 사람 인생에 스며 들어가야 한다. 운명은 바뀔 수 있지만, 숙명은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여성잡지, 스포츠 신문, 일간지 등 언론사에 기획 기사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2~3회씩 보도자료를 뿌렸다. 케이블 방송인 부동산 TV에서 고정 출연 요청이 왔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왔다. 남자의 이름은 브랜드가 되었다. 투자 컨설팅 용역계약서가 사무실에 쌓여간다. 투자자들을 손에 쥐고 판을 흔들겠다는 남자의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돈을 벌기 어려운 것은, 돈이 조각으로 쪼개져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손에서 조각난 퍼즐이 부동산 투자라는 이름으로 맞추어지고 있다. 아파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토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경매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 같이 일하자는 것이다. 팀을 짜서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낚시에 미끼를 문 사람들을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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