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부동산
몇몇 부동산 사업자들이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을 분기 단위로 계약하여 방송을 산다. 사업자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직원들이 출연하여 시나리오 만든다. 어처구니없지만 방송으로 부동산을 파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팔고 싶은 빌라, 토지, 상가 등의 별거 아닌 부동산을 투자가치가 뛰어난 상품으로 포장한다. 무료 강의, 무료 세미나, 무료 상담 안내와 전화번호가 방송 중에 자막으로 송출된다. 미끼는 점점 더 교묘하게 연출되어 일반인들에게 던져진다. 최근에는 부동산 사업자들끼리 방송 입찰 경쟁이 붙어서 프로그램 가격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방송국에서는 최소한의 인력과 기술지원만 하고도 수익을 챙길 수 있어 일부 시간대를 통으로 넘겨 버린다. 방송국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세 사람은 사무실 근처인 을지병원 사거리 뒷골목 평양면옥에서 점심을 하였다. 국제 예술대학교 쪽으로 가다 보면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개조한 카페가 있다. 없어진 대문을 걸어 들어가면 잔디가 깔린 마당 왼쪽에는 원래부터 있었을 것 같은 감나무가 보인다. 그 옆에 항아리가 두 개 놓여있고, 담장 따라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디딤돌로 만들어 놓은 화산석을 밟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통유리로 마당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한다.
남자가 경제 전문 채널의 부동산 토론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다. 방송을 보고 금천구에 있는 중개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빌라 8채를 신축한 중개업소 사장이었다. 분양가 2억1천만 원이고, 1억8천만 원에 전세를 맞추었다는 것이다. 팔아주면 채당 1천만 원 수수료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물건 작업을 방송에서 하면, 스스로 양아치가 되는 거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하고 다른 거야,”
치맛자락을 살짝 여미면서, 여자가 정색하며 말한다.
“이런 것은 동네에서 중개업소 사장들이 집 장사하는 거야. 단순 매매지. 컨설팅이 아니고 중개거든, 이런 일에 손대는 것은···,”
“형님, 저도 누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형님이 중개와 컨설팅은 다른 거라고 말씀했잖아요?”
“다들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전 국토가 폭탄 맞아서 제대로 된 건물이 없는 그런 나라였잖아.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밥은 먹고 사는 나라’가 돼야 한다면서 국토개발계획을 만들어’
그 첫 번째가 경부고속도로야, 당시에 거의 모든 정치인이 반대했지. 국민도 대부분 반대했고, 지금처럼 여론 조사하면 90% 이상이 반대했을 거야, 그런 정책을 이 양반이 밀어붙여. 그런 식으로 강남개발이 이루어지지”
남자는 국민학교 시절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어린이 대공원을 지나 한강을 건너면서부터 비포장도로였던 것이 생각났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한다.
“우리 어릴 적 생각해봐, 어머니가 미아리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350만 원 주고 시장 골목에 가게 딸린 집을 샀거든. 내가 12살이었으니, 어머니는 44살이었지’
그때 압구정동 일대의 땅을 매입하였으면, 당시 좋은 땅이 평당 4, 5천 원 정도였으니, 약 1,000평의 땅을 살 수 있었을 거야. 지금 그 일대는 평당 1억 원이다. 어머니가 산 그 집은 상가로 개발되었고, 지금 8억 원쯤 될 거야. 350만 원이 8억 원이 된 거지, 그런데 압구정동 땅을 샀으면 1천억 원이지”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J와 눈을 마주친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정기적으로 피부관리를 받는 J의 얼굴은 예전보다 동안의 얼굴로 변하고 있다. 여자는 J를 보면서 ‘돈이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거야. 부모님은 당신들 선택으로 그렇게 살았고, 이제 우리도 불혹이 되었으니,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거지’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지금 노무현까지, 부동산 가격 그래프를 보면 단 한 번도 하락하지 않았다는 것 알아? 아파트, 건물, 토지 그 어떤 것이든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어”
“아닌데요, IMF 때 가격하락 했는데요.”
“맞아”
미심쩍어하는 J 쪽으로 남자가 고개 돌리면서 말한다.
창밖의 햇살이 남자의 얼굴을 비추면서 J는 남자의 얼굴에 음영이 생기는 것을 본다. 정말 부드러운 얼굴선인데 왜 마주할 때마다 겁이 날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단기 곡선 그래프를 이야기하는 거야, 단기로 보면 그래프가 하락하는 시기가 있지, 하지만 나는 장기 곡선 그래프를 이야기하는 거고.”
“장기 곡선 그래프, 처음 들어보는데요.”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거면 단기 그래프이고, 숨어 있는 것을 보고자 하면 장기 그래프야”
J가 눈을 깜박이며, 뭔가를 이해하였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자기가 스스로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책 한 권 달랑 읽어보고는 세상을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러니 얼레 설레 짜깁기 한 책이라도, 책을 쓴 저자라고 사기 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거고, 부동산 재테크 서적들이 다 그래,’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실보다 부정적인 소문에 더 관심이 있어. 그게 뉴스라는 거지. 그것을 이용하면서 전문가인 척하는 거야. 가격 폭락이 있을 거라고 공포를 조장하잖아, 일종의 마케팅이지”
“다 말장난 아냐? 폭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팔았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없어” 여자가 말한다.
“전문가인 척하는 사람들이 밥벌이하기 위해 만든 논리야, 우리는 사업 하는 사람이잖아. 그 사람들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길게 봐야 하지 않을까?’
40대의 박정희가 본 그것이 당시 사람들은 뭔지 몰랐지, 하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행동으로 보여 준 박정희의 선택으로 인해 지금 밥 먹고 사는 나라가 된 것이고, 선진국이네 아니네, 말하는 거야. 세계대전 이후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밀가루도 없어서 배급받아 먹던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나?”
“없나요?”
“없어, 우리나라가 유일해, 그게 우연히 된 것 같아? 아니거든. 그러면 그렇게 사업을 해야만 해. 단기 그래프를 보지 말고 장기 그래프로 보면 아직도 끊임없이 상승하는 중이야”
J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서 말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60년 그래프를 보면 답이 나와. 일직선으로 우상향이야.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아라’라는 말, 다 알지? 하지만 실전에서는 무지하게 어려운 거야. 거의 모든 사람, 열에 아홉은, 머리에서 사서 발바닥에서 팔지. 손해야, 왜 그럴까? 단기 그래프 보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거거든···.’
부동산 투자를 도박처럼 하는 인생들이지. 인정해야만 되는 사실인데, 아무도 인정 안 해, 그게 사람들 사는 모습이야.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거고, 자기가 망한 것은 쪽팔려서 입 다물고”
“그래서 말인데, 빌라 8채 다 우리가 매입하자”
“뭐라고?”
여자가 소리치듯 말하다가 움칫 멈추고 카페 주위를 둘러본다.
“우리가 팔아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자고요?”
J도 여자 말에 맞장구치듯 말한다.
“그래, 채당 1,000만 원 수수료가 있으니, 우리는 2억 원에 사는 거야. 그리고 전세가 1억8천만 원에 있으면 2,000만 원에 가지고 오는 거고, 8채 해 보았자 1억6천만 원, 전세가 올라가서 2억 원이 되면 우리는 원금 회수하는 거잖아. 우리는 10원도 들이지 않고 부동산을 소유하는 거고, 올라가는 족족 돈 버는 거야”
여자가 고개 끄덕이며 수긍하는 것처럼 하지만, 애매한 눈빛으로 남자를 보고 있다.
“법인을 하나 만들자. 그 법인의 대표이사는 J가 해, 누군가가 토지 작업해서 빌라를 짓고 전세 맞추어 놓으면 우리는 사들이자고”
“정말입니까? 그래서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우리가 버는 거지”
“하락하면 어떡하지? 하락하면 우리가 손해잖아.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잖아.”
여자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괜찮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돈 있는데 뭐 걱정이야, 문제없어, 하나 팔아서 두 채 사고, 두 채 팔아서 네 채 사고”
J는 대표이사가 된다는 마음에 기대가 가득한 표정이다.
“길게 보면 일희일비할 필요 없어. 그리고 하락해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꺼야. 일단 100채를 목표로 사들이자, 그 대신 어디에도 떠들고 다니지 마,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역에서 가까운 신축 빌라를 우선으로 사들여”
“알겠습니다. 형님, 그런데 100채면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아니, 안 많아. 그림을 어설프게 그리면 죽도 밥도 안 돼, 푼돈 벌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
“네, 알겠습니다. 일단 세무사 만나서 의견 들어보겠습니다.”
“어쨌든 IMF 같은 사태가 벌어질 징조가 보이면, 징조는 아마도 가격 폭등일 거야, 그때 모두 팔면 돼, 만약에 안 오면, 안 와도 괜찮아. 그럼 우리는 계속 돈을 번다는 이야기거든.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사들이는 걸로”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여자는 작은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또 묻는다.
“빌라는 매매가격의 80%-90%에 전세가 맞추어 분양한다고 하더라”
“그래, 그거는 알고 있는데”
‘100채를 매입하라고, 배짱이 보통 아냐, 무서운 사람이다.’ J는 속으로 경탄한다. J는 남자의 얼굴에서 승부사 얼굴을 보았다. 사업이 점점 확장되면서 남자의 숨겨진 카리스마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J는 남자 앞에만 서면 두려움에 바짝 긴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남자가 하는 사소한 것 하나도, J의 일부가 되어 말투와 몸짓이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보통 여덟 세대 빌라를 신축하고 일곱 세대 분양하면 원금이 회수된다고 해. 건축비, 운영비, 토지 대금이 해결되는 거지. 토지 매입가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여덟 채 중에, 한 채가 이익으로 남는 거야. 전세가 맞추어지는 순간에 이미 사업자는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거든. 전세 보증금 제도를 최대로 활용한 부동산 사업이니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판단하기에 위험이 거의 없어. 너도 가만히 생각해봐, 하는 게 바보인지, 안 하는 게 바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