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미친남자. 징편소설, 돈
박호영은 윤 의원과 롯데호텔의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다.
하얀색에서 붉은색으로 펼쳐진 숙성된 회가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다. 한쪽에는 참다랑어 초밥이 접시에 담겨있다. 빙수처럼 갈린 얼음에 반쯤 담겨있는 도구리에는 사케가 담겨있다. 한잔을 손에 들고 윤 의원이 마시고 있다.
윤의원은 서울대학 선배로 학창 시절,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고 다닐 때, 운동권 핵심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대학 3학년 때 총학생회 회장으로 당선되었고, 전국대학생연합회를 이끌었다. 마이크를 잡고 집회 연설하면 군계일학이었다. 그가 휜 두루마기를 걸치고 허공에 목소리를 날리면 또래의 젊은이들 가슴에 뭔지 알 수 없는, 세상을 향한 뜨거운 분노가 육체를 뚫고 나왔고, 기꺼이 몸을 불살랐다. 학창 시절에 두 사람은 접촉할만한 공통점이 없었다. 젊은 윤 의원은 학생 운동에 전념하다가 강제로 군대에 끌려갔다. 그리고 복학하여 학생회장이 된 것이다.
젊은 박호영은 학생 운동이란 것을 비현실적인 행위로 판단했고 관심이 없었다. 특히 말과 행동이 낮과 밤처럼 전혀 다른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성인이라면서 자기의 처신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처신에는 비판적인 이중잣대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어느 날 운동권 학생들을 앞세우고 젊은 윤 의원이 고시 공부하는 법대생들을 찾아왔다.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군사독재에 대해 적극적 저항을 할 때이며 수동적 저항은 젊은이로서는 치욕이라고 즉흥적인 연설을 했다. 군사독재정권에서 입신양명을 꿈꾸는 고시생의 선택을 비난하고, 이들을 ‘어용 학생’으로 규정하였다. 어용이라는 말에 화가 난, 젊은 박호영과 즉석에서 불꽃 튀는 공개토론이 만들어졌다. 소문은 삽시간에 학교에 퍼졌고 꽤 오랜 시간 법대생들 사이에 회자 되었다. 그렇게 학생 운동을 이끌던 젊은 윤 의원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출소하면서 바로 정치권에 입문, 보좌관 생활하다가 지금은 자민당의 5선 의원으로 당 대표이다.
“이번 검찰청 자리 이동은 맘에 들어?”
“네, 감사합니다. 의원님이 물 밑에서 힘써 주신 덕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부탁은 내가 해야지, 호칭은 편하게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형님이 쓰실 총알은 20개 맞추어 정리했습니다.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총알은 누가 준비한 건가? 이번에도 부동산 시행한다는 그 사람인가?”
“그 친구는 그림자처럼 움직일 친구입니다. 머리 좋은 친구죠. 평생 곁을 안 주어도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하고 역할 분담했습니다. 형님 곁에서 총을 쏘는 역할은 제가 하고, 그 친구는 총알을 조달하기로”
“그러면 안 되지, 예의가 아니야,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오라고 해, 밥시간인데, 같이 밥이나 먹자”
23층 일식당으로 들어왔다. 종업원이 안쪽의 밀실로 안내한다.
문을 열고 윤 의원하고 눈이 마주친다. 잔잔하게 입에 번지는 미소는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미소로 화답하며, 윤 의원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태현이는 방에 들어선다.
“대학에 입학하고, 운동 circle에 들어가서 철학책을 읽었지. 책을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읽었어, 그때 읽었던 책 중의 하나였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아.’
도덕이라고 하는 그런 언어는 주로 감정적인 언어이므로 주관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거야. 객관성이라고 하는 것은, 애초 싹트지 않는 건데, 사람들은 객관성이 있다고 하면서 그 가치를 공유한다는 거지. 그 책을 읽고, 그때 깨달았지, 인류의 역사는 한 사람의 말로 시작한다는 것을···”
윤 의원이 호흡을 가다듬는다.
태현이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자세로, 뭔가 감추어진 듯한 검은 동굴 속, 정치인의 눈을 마주 본다.
“객관성 없는 도덕이란 말이 맘에 와닿습니다.”
“음, 그래?”
윤 의원이 맥주병을 들자, 태현이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술을 받는다.
“젊었을 때는 기고만장했지, 영웅 심리라고나 할까, 그런 것과 비슷할 거야.’
그리고 역사 공부를 좀 했지, 정치는 한마디로 연설이거든, 내 편에게 행동 지침을 내려주는 메시지, 성공한 정치인은 청중에게 환상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지.’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의 연설 자료를 구해서 반복해서 읽어보고 연구했어, 다른 나라 정치인들도 비슷해, 히틀러를 비롯하여 넬슨 만델라, 링컨, 간디, 처칠 등등···, 공중의 말 한마디로 세상을 지배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지”
“공중에 바람처럼 던진 말 한마디가 불화살이 되어 사람들 가슴에 박히는 거군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예수가 종말론으로 군중들 마음에 불을 지피고 들어가 신의 아들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태현이 말을 듣고, 윤 의원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시원하게 웃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하자는 몸짓을 취한다. 태현이가 오른손을 내밀자, 손을 잡고 두세 번 흔들고 나서 말한다.
“정 대표하고 대화가 되는구먼, 정치는 ‘말’이야. ‘말’은 연설이고···, 말이 사람들 가슴에 파고 들어가야지, 이것을 못 하면 정치에 소질이 없는 거지. 지금 여의도를 봐,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놈들 뿐이야, 한심한 곳이 되어버렸어.”
“의원님, 권력을 이야기하면 죽이는 자와 죽는 자,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복종하는 것도, 권력의 한 부분으로 봅니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그런 힘을 ‘돈’에서 찾았습니다.”
“욕심인가? 욕망인가?”
“둘 다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욕심에 가까울 겁니다. ‘색즉시공’이라 했습니다. 그런 것이 인생이라면 미련 없이, 놀다 가고 싶습니다.”
“의외로군, 정 대표와 내가 닮은 구석이 있네,
“총알을 조달하는 사람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경제학에 Hold Up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에서 이를 적용할 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총알 한 방에 죽을 수 있습니다. 정치는 잘 모릅니다만, 총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설계는 다 끝났습니다. 허공을 향해 가는 총알의 방향은 박 검사가 잡을 겁니다.”
간단한 식사 자리로 시작하였는데, 술이 방으로 들어간다. 오후 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
LH 노재호 본부장은 처음으로 인생을 걸고 일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았다. 자기가 정한 원칙을 깬 것이다. 가격을 흔들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했다. 악성 하자 물건으로 만들기로 했다. 공중에 고압선이 지나가는 것도 하자이지만, 지질 조사하여 보니 암반이 발견되어 토목공사비용이 일반 다른 토지에 비해 3배가 많은 것으로 서류를 만들었다. 그 서류 작업은 태현이가 소개한 ㈜동인엔지니어링에서 수행했다. 그렇게 해서 정상적인 토지 분양가격의 30%에 처리했다. 박호영 검사가 지시한 대로 직접 커피 타서 태현에게 준 것이다.
계약이 이루어지고, 3일이 지났다. 토요일 오전에 광화문에 있는 호텔을 찾았다. 문자에 찍힌 번호 차량 옆에 주차하고 사우나가 있는 8층으로 올라갔다. 호텔 사우나를 대낮에 와보기는 처음이다. 외국인 두 명이 샤워하고 있고, 물이 담겨있는 온탕이 중앙에 보인다. 그 안에 두 사람이 물속에 앉아있다. 자기를 본 태현이가 손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물빛이 온통 황금빛으로 출렁거려 환상적이다. 욕조 타일이 금박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번쩍번쩍 빛난다. 노재호가 벌거벗은 몸으로 탕 속에 들어온다.
“부장님, 지난번 커피, 감사합니다. 사우나 Key 주시지요?”
Key를 받은 형기가 탕에서 일어난다. 몸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반짝이는 물방울 몇 개가 왼쪽 가슴에 있는 검은 문신을 신비롭게 한다. 삼족오라는 전설 속의 까마귀이다. 빨간 태양을 입에 물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몸이다. 상체 여기저기에 흉터가 보인다.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느낌이 오지만,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을 내리고 못 본 척한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보면서, 금빛이 출렁이는 물속에서 발가벗고 앉아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습니다. 앞으로 시간 되는대로 사우나 같이합시다. 자 나가시죠?”
밖으로 나와 가운을 걸치고, 호텔 직원이 마사지실로 안내한다. 침대에는 30여 분 전에 먼저 일어났던 형기가 마사지를 받고 있다. 입구 옆에 조그마한 바구니가 있고, 거기에 사우나 Key가 두 개 있다. 그중에 하나는 노재호 Key다. 3시간 뒤에 노재호는 자기 차의 트렁크를 열어본다. 골프 백이 실려 있다. 살짝 열어보니 5만 원 현금다발이다. 2억 원이다. 심리적 불안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었다.
강일지구, 소하지구, 김포신도시, 인천 논현지구, 발산지구, 운정신도시, 왕십리, 청라지구 등에서 개발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면서 총알이 쌓여갔다. 총알은 소리소문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였다. 빌라를 매입한 것은 100채가 넘었다. 박 검사가 넘겨준 이름으로 새로운 사업자 3개를 만들었다. 빌라를 다시 매입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