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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27. 2024

부미남 14. 부동산은 돈이다.

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3부

2016년 - 지금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업가보다는 기업가라는 단어가 태현에게 어울리게 되었다. 물에서 놀던 물고기가, 뭍으로 올라 온 것이다. 진화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 바뀌게 되었다. 개발사업이 여기저기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총알이 쌓여가면서 꼭두각시로 놀아줄 인형들이 필요했다. 

  롯데호텔 지하에 있는 BAR이다. 5명의 중년 남녀가 모였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차갑고 쌀쌀맞은 인상을 풍기지만 웃으면 애교스러움이 넘치는 서수경 박사, 자기 관리를 잘한 듯 말쑥한 신사처럼 보이지만 걱정이 많아 늘 잠이 부족해 보이는 오진명 박사, 두툼한 아랫배와 앞머리 일부가 대머리로 변하고 있지만 있는 집에서 우량아로 자란 듯한 임 박사, 동그란 얼굴에 모성애가 넘치는 듯한 자애로운 목소리지만 눈치 안 보고 바른 소리 잘하는 김보경 박사이다. 

  서울부동산포럼의 1부 행사가 끝나자마자 다섯 명의 부동산 박사들은 이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이들만의 광화문포럼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는 정태현이 있다.          



  “서 박사님은 이번에 신공항 예비 타당성 조사 용역에 참여한다고 하시었죠? 끝날 때 되지 않았나요?”

  “아직 정리할 게 조금 남아있습니다.” 

  손끝으로 금테안경을 한번 만지면서 서수경이 대답한다.

  “임 박사님는 지금 시청 토목과 과장이라고 했나요?” 

  오진명이 임박사를 보면서 묻는다.

 “서울에 못 있고, 외곽으로 돌고 있습니다. 힘 좀 써 주십시오, 선배님,”

  “정 박사님은 논문도 계속 쓰시나요?”

  “논문은 무슨···, 학위 받았으니 끝이죠, 저는 공부보다는 사업 때문에 박사학위 딴 겁니다.” 

  “뭐 저도 그렇습니다. 임 박사와 김 박사가 논문 계속 써내는 것 보면 대단합니다.” 

  오진명이 말을 마치고, 맥주 한 모금 마신다. 그것을 보고 정태현이 오진명에게 말한다.

  “오 박사님은 정치에 관심이 없나요? 공기업에 근무하신 것이 20년 넘었죠?”

  오진명이 뜻밖의 질문에 정태현을 쳐다본다.

  “남자들은 정치에 다들 욕심이 있지 않나요? 권력에 대한 욕망···, 남자들끼리 대화하면 대부분 정치 이야기잖아요,” 김 박사가 말한다.

  “김 박사님은 이번에 SH 연구실에 정직원이 되었다고요? 1년 계약직으로 맘고생 하셨는데···, 축하드립니다. 서울시 부동산정책은 이제 김 박사님 손에서 만들어지는 거군요”

  “감사합니다. 정 박사님”

  “서 박사님은 강 교수 Lab에 아직 있는 거죠? 박사학위 이번에 못 받나요? 논문 다 쓰신 것 아닌가요?” 

  오진명이 서수경에게 묻는다.

  “네,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강 교수가 논문을 계속 다듬자고 하네요, 조금만 더 다듬으면 좋은 논문이 나올 것 같다면서, 계속 연구하자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여기 네 분하고 다르게 저는 아직 학위가 없어서 박사라고 하기에, 좀 염치가 없네요.”

  “아닙니다. 서 박사님 통계 능력이야 우리가 다 아는 건데, 저는 통계 돌릴 줄도 모릅니다. 서 박사님이 진짜 박사지요, 제가 짝퉁입니다. 박사가 실력이 있어서 박사 되는 거 아니잖아요, 잘 아시면서···, 통계 돌릴 줄도 모르는데···”

  “여기서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은 정태현 박사님이 유일합니다. 사업도 크게 하시고”

  “통계만 알지, 실무를 전혀 모르는 부동산 박사들도 차고 넘칩니다. 논문이라는 것이 통계에 나온 값을 정리하는 거고···, 논문기술자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학위 논문 아르바이트가 알음알음으로 있지 않습니까? 통계 대신 돌리고, 분석값 뽑아주고, 돈만 있으면 학위쯤이야.”

  “통계전문가인지? 부동산 전문가인지? 헷갈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전문가랍시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맨날 뒤죽박죽입니다. 제멋대로 해석하는 거죠. 다른 분야도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 대학 박사 출신으로 진주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양 교수 아시죠, 그분이 대표적인 논문기술자 아닙니까? 논문만 기계적으로 써내는 사람, 학회지에 제출한 논문이 통계 조작으로 들통나서 망신당했던 것 다 아시잖아요”          



  서수경은 생각에 잠긴다. 현 정권의 선거공약인 경상남도 신공항 관련하여 ‘공공기관 사업 예비타당성조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용역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관련 기관의 입맛에 맞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 KDI와 국토부 관계자와 협의하고 미팅하는 과정에서 이점에 대한 해결을 찾아야 했다. 정부가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서 ‘예비타당성조사’는 사업성이 있어야 했다. 팀장인 강 교수는 통계의 숫자를 일부 수정하여 수익성 지수가 1보다 크게 나오도록 ‘마사지’를 요구하였다.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하는 일에, 조작된 데이터로 집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이용 가치가 없어 세금 낭비 관련된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박사가 정말 박사인가라는 회의가 들면서, 박사 공부를 한 사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논문 조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Lab은 술 사줘야만 논문 통과합니다. 그래서 논문 통과하자마자 대부분 인연 끊잖아요. 박사학위 받고 윤 교수 찾아가는 제자들이 거의 없을 겁니다. 그에 비하면 강 교수는 좋은 사람인 거죠. 논문 완성도를 높이자고 하는 거잖아요” 임 박사가 말하는 것을 서수경은 듣는다.          



  술과 과일 안주가 새로이 추가되었고, 주거니 받거니 맥주를 마시면서 논문 이야기를 시작으로 각종 부동산 Issue를 가지고 마구잡이 떠든다. 실력이 있든 없든 박사들이다. 지적인 능력을 뽐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아는 법이다. 이 사람이 한마디 하면, 저 사람이 바로 한마디하고, 생각이 생각을 이어가면서 대화에 굶주린 사람처럼 떠든다.          



  “새로 법안 추진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주된 내용이 권리금 회수 방안을 만들어 주는 거인데, 어떻게들 생각합니까?” 

  정태현이 화두를 던지면서 말한다.

  “숨어 있는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내자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은 착한 임차인과 나쁜 임대인들 편 가르기 한 거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선거전략으로 활용해서 재미 본 것 아닙니까? 한국당의 민병대 의원이 처음에 여론몰이한 겁니다. 연예인 가수가 매입한 건물에 있던 임차인이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는데, 건물주가 바뀌면서 쫓겨나는 그림으로 언론 Play 한 거죠.” 

  “어떻게 쫓겨날 수 있죠? 계약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계약이 있어서 중간에 내보낼 수는 없잖아요, 계약이 종료해서 계약 연장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쫓겨난다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김 박사님, 국민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그냥 나쁜 임대인, 착한 임차인으로 기억되는 거죠. 그리고 공생, 공존, 또는 함께 하는 세상이란 키워드로 포장하는 겁니다.”

  “권리금은 임대인과 관계없다는 것,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돈으로 해석하죠, 아닌가요? 그리고 권리금의 성격은 대법원의 판례에서 일관되게 명시한 것이, 시설, 영업, 지역 권리금으로 유형무형의 금전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3가지 권리금 중에 지역 권리금을 뺀, 시설이나 영업 권리금은 현재 치킨집을 하는 임차인이 새로이 치킨집 하는 임차인에게 각종 비품이나 인테리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하고, 영업 know-how를 가르쳐 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임차인이 받을 수 있는 돈이고요. 다시 말하면 같은 업종으로 이전될 때 받는 돈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치킨집에서 핸드폰 점포로, 임차인이 바뀌어도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권리금을 주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웃기는 거죠. 이것을 인정하라는 법이 만들어졌으니, 법조문을 들여다보면 앞뒤가 하나도 안 맞아요. 어처구니없는 법이 만들어진 거죠.”

  “오 박사님,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건물 가격이 올라갔으니, 업종이 다르게 되어도 권리금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적 문제인데”

  “아니죠, 서 박사님, 지역 권리금이라고 하는 그것은 임대인이 받을 수 있는 거죠, 판례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가지고 와서 법조문 조항을 만든 것 아시나요? 만약에 서 박사님 의견 따르면, 지역의 상권이 죽고, 건물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그 하락한 가치를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손해 배상해야만 된다는 논리도 나옵니다.”

  “임대인은 임대료를 높게 받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아닌가요?”

  “아니죠, 임대료가 많다 적다는 잘못된 접근 논리입니다. 수익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입지가 좋아서 비싼 돈 주고 사 왔는데, 그에 맞는 수익률이 임대료로 바뀌는 것이지요, 수익률로 계산하면 임대료가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닥권리금이 맞는 말 아닌가요? 지역 권리금이라 하나요?” 임박사가 묻는다.

  “두 가지 말을 다 사용하지만, 지리적 입지에 대한 유형무형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지역 권리금이 맞는 말이죠, 건축법에서 면적 계산할 때 바닥면적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상가 매매나 임대차 계약할 때 계약면적과 바닥면적을 구분해서 말하는데, 바닥권리금이란 말은 이런 습관에서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진명이 답한다.

  “지난달, 본부장들 사내 연수 1박 2일 갔다 왔는데, 교육내용 중에 권리금에 대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감정원에서 나온 분이, 권리금 평가는 같은 업종으로 승계될 때만 권리금 가액을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 감정평가사들에게 지침이 내려간 것으로 강의했는데, 아닌가요?” 

  공무원 연수 교육을 갔다 온 임 박사가 말한다.

  “실무와 따로 노는 법, 실무와 따로 노는 행정지침, 그게 문제네요” 김보경이 말한다.

  “법조문 읽어보면 임대인도 권리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해 놓았습니다. 그게 왜 그런가 하면, 지리적 입지 때문입니다. 입지에 대한 것이니, 임차인이 주장할 수 없다는 거죠, 그게 대법원 판례에 있는 내용입니다.’

  법조문에 나와 있는 문장을 실무에 그대로 접목해서 해석하면 권리금은 임차인보다 임대인을 위한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므로 이 문제에 대해 이의제기하였더니, 법제처에서 이 법안의 숨어 있는 의도는 그게 아니라고 답변해서 충격받았습니다. 법조문 읽을 때는 단어의 정의가 아니라, 만든 사람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어이없었습니다.’

  이런 걸 개차반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법을 만들 때, 부동산 실무를 아는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고, 경제학과 교수들과 법대 교수들이 자문으로 참여한 겁니다. 경제학과 교수들은 거의 사기성에 가까운 권리금을 재산권으로, 법대 교수들은 관습법의 성격으로 규정하여 언론에 법 제정의 필요성을 홍보하여 준 걸로 생각합니다. 정치 논리에 교수들이 들러리 나팔수 노릇 한 거죠.” 오진명이 말한다.

  “김보경 박사님이 SH에서 일하시니, 이거 논문을 한번 써 보시죠?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 자료도 연구도 할 겸···,”

  “그러네요, 정 박사님, 계약이라고 하는 행위, 돈을 주고받는 행위는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금전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여야 하고, 주는 사람을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반대로 돈 받고 Bye-bye 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법이네요.’ 

  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쌍방의 이행 의무가 있는 것인데, 돈을 받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어떤 행위가 없네요, 그냥 돈 받고 가네요, 허공에 날리는 돈, 결국 사기네요.”

  “임대인이 가치 투자를 잘못해서 은행 등 채권자들에게 부동산을 뺏기듯이, 임차인은 사업실패입니다. 사업 실패한 임차인은 성공 Know-how에 대한 영업 권리금을 당연히 주장할 수 없죠. 시설권리금은 돈 주고 버려야 할 폐기물이고, 지역 권리금은 더더욱 주장할 수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현재 임차인의 자기 잘못으로 사업실패 한 것을 후임자한테 권리금으로 보상받으라는 것이 맞는 건가요?” 정태현이 말한다.

  “그럼, 국민이 서로 ‘사기’ 치라고 만든 법이라는 건가요? 그것을 정치인들이 선거전략으로 쓴 것이고,” 서수경이 말한다.

  “갑질하는 임대인도 문제지만, 갑질하는 임차인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임 박사가 말한다.       


   

  “부동산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들이니,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강원도 평창 땅을 연예인 강일동이 매입한 것을 투기라고 해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잖아요, 그리고 최근에 모 대학병원에 그 땅을 전부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투기인가요? 투자인가요?” 

  이번에는 김보경이 화두를 던진다.

  “투기 아닌가요?”

  “투기라고 하시면, 투기와 투자를 구분할 수 있나요?” 정태현이 말한다.

  “부동산에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학문적 정의는 취득, 운영, 처분의 3단계에서···, 운영과정 없이 단기간에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투기라 하고, 운영과정이 있으면 투자라고 하잖아요” 

  “김 박사님 의견에 따르면 투자네요. 취득은 했고, 아직 처분은 하지 않았다. 처분행위가 없으면 운영단계에 있는 것이고···, 처분한다면 이익이 아니라 손실 볼 수도 있는 거고···, 그럼 투기, 투자라고 판단할 근거가 애초부터 없는 건데요, 병원에 기부한 것은 여론이 시끄럽고, 다들 투기라고 난리를 치기 때문에···, 욱하는 마음에 그런 거지, 투기라고 할 수 있는 논리가 없는데요.” 정태현이 말한다.

  “처분은 안 했지만 취득할 때···, 단기적인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니, 투기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임 박사님, 처분할 생각이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음에도, 제삼자가 ‘너 단기적인 시세차익을 보고 매입한 것이 맞잖아, 솔직히 말해, 솔직히 말하고 잘못했다고 해’라고 한다면 웃기지 않나요? 당사자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제삼자가 원하는 답을 무조건 들어야겠다는 심보잖아요. 대중 언론을 통해서 한 사람을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고 가는 짓거리잖아요?” 김보경이 말한다.

  “듣고 싶은 이야기 나올 때까지···, 사람을 고문하는 것과 차이가 없네요, 방법의 차이일 뿐, 본질은 같은 듯···, 사람 사는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거 같아요” 정태현이 말한다.

  “돈이 문제네요, 그놈의 돈이 무엇인지”

  “그렇게 말하면 주식은 전부 투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들 안 합니다. 주식은 투자이고, 부동산은 투기로 보는 선입견이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진명이 말한다.

  “투기와 투자는 학문적 구분이지, 실무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울 겁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입니다. 내가 돈 벌면 투자, 네가 돈 벌면 투기, 남이 잘되는 꼴은 못 보고 배알이 꼴려 그런 것이 아닐까요?” 김보경이 말한다.

  “돈, 돈이 문제라고요.” 

  임 박사가 버럭 소리 지르는데, 다들 웃는다.

  “실무에서 투기와 투자 구분할 수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실무에서 투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미등기 전매’ 정도일 것 같네요. ‘미등기 전매’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투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등기 쳤다는 것은 보유하고 운영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봐야 하니깐.”

  “정 박사님, 그렇다면 평창 땅을 매입한 것은 투자라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데요”

  “경제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부도 늘어나고, 국민도 잘살게 되는 거 아닌가요? 국가가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도로 만들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사업체를 만들고 공장들을 세웁니다. 사람들이 일자리 찾아 도시로 모여들죠. 사람이 많아지면서 도시의 외곽이 개발되고, 도심뿐만 아니라 전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불로소득이라 할 수 있는지, 저는 그게 의문입니다.’ 

  세종신도시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만들지 말고,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지 말고, 강남개발도 하지 말고, 신도시 개발하지 않으면, 땅값 절대 안 올라갑니다. 서울부동산 가격만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올라갈 겁니다.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한 영화 ‘헝거 게임’에 보면 수도 캐피털을 중심으로 12개의 외곽지역이 나옵니다. 캐피털은 수도라는 뜻도 있지만, ‘돈’이란 뜻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돈 없는 사람은 수도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영화 속의 모습이, 지금 서울의 모습이라고 상상하면 맞을 겁니다. 그나마 신도시를 계속 만들고, 개발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에, 이정도 모습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였기 때문에 강원도 땅값이 올라가는 것이고,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만들겠다고 하니, 토지 가격이 올라가는 겁니다. 어쩔 수 없죠, 그것을 아는 사람이, 주머니에 돈이 있어서 땅을 샀는데, 그게 투기인가요? 경제성장을 통해서 국부가 늘어나듯이 개인 자산도 늘어났는데, 그것이 불로소득이라는 프레임에 놓고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요?”

  “정 박사님이 말을 듣고 보니, 영화 ‘인 타임’도 비슷한 내용인 것 같네요, 거기서는 시간이 돈의 개념이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외곽에는 빈민들이 사는 거죠” 서수경이 말한다.          



  “최근 문 의원이 ‘토지공개념’을 이야기하면서 부동산은 불로소득이라고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것 들었는데···” 

  서수경이 이야기 주제를 바꿀만한 화두를 던진다.

  “진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토지공개념은 이상일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선동전략의 하나라고 저는 봅니다. 지식인 척하는 교수들이 권력에 아부하는 겁니다.” 

  오진명이 흥분하듯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진보와 보수, 낱말사전 풀이하듯 아니면 양심선언 하듯 ‘나는 진보주의요’ ‘나는 보수주의요’ 떠들면 뭔가 잘나 보이고 그럴싸해 보이지만, 진보주의자적인 삶이 무엇인지, 보수주의자적인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거죠,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관계가 없죠,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적인 것을 떠드는 것 아닌가요? 참고로 저는 제가 사는 삶을 보면서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정 박사님,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보수, 중도, 진보는 다 같은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난쟁이끼리 키 자랑하는 거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극우, 극좌지요, 생각에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목숨을 건 사람들입니다. 사이비 종교를 보는 듯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혐오식품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입맛이 변하고, 혐오했던 것이 맛난 음식이 될 수도 있고요, 젊어서 못 먹었던 삭힌 홍어를 지금은 아주 좋아하거든요, 정 박사님 의견에 동감하네요.” 김보경이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한 자산가를 만든다. 부자로 사는 그들이 사치를 조장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사회의 불균형을 만든다. 그런 사회는 진정으로 진보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저항하는 반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헨리 조지라는 사람이 자기가 쓴 책 ‘진보와 빈곤’에서 주장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문 의원 같은 일부 정치인들이 논리를 보면 이 책의 논리와 아주 흡사합니다.” 오진명이 말한다.

  “아, 저는 그 책을 아직 못 읽었는데, 읽어야지 하면서 못 읽었네요” 서수경이 말한다.

  “꼭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좋은 책입니다. 생각을 열어놓고 읽으셔야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소설과 달리 이런 종류의 책을 잘못 이해하면 가스라이팅···, 편견에 빠지는 거 아시죠?” 김보경이 말한다.

  “톨스토이가 헨리 조지라는 사람과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관계라는 것, 알고 계시나요? 제가 알기로는 부활이란 소설이 헨리 조지의 사상을 담은 책입니다. 주인공 남자가 자신의 토지를 소작농인 빈농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토지란 누구의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권리가 있다.’라고 합니다.” 오진명이 말한다.

  “아, 진짜요. 남녀 사랑 이야기로만 읽었는데, 아니군요.” 임박사가 말한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50대까지는 돈 걱정 없이 아주 잘 살았어요. 부동산을 엄청나게 소유한 사람이었고, 이상주의적 사고와 쾌락주의적 사고를 오가면서 풍요롭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소설가로 성공하면서 톨스토이를 성인처럼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았었습니다. 맹목적인 군중들이 생긴 거죠’

  당시에 기대수명은 50살이 되지 않았죠. 50대를 살고 있다면 죽음을 앞둔 노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인생을 정리할 나이가 되자,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고백하는 겁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인구 90%가 소작농으로 살았고, 굴속 같은 집에서 굶어 죽는 것이 삶의 한 모습이었습니다. 10%인 영주와 귀족들은 풍요롭게 살았고, 톨스토이는 그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봉건주의적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혁명의 씨앗이 사회 여기저기에 싹트고 있었고, 레닌이 그것을 이용하여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공산주의 국가가 세워지기 직전에 톨스토이는 살아온 삶의 궤적을 바꿉니다. 톨스토이가 기회주의자로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50대가 되어서야 기독교 사상에 몰입하고, 청빈과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면서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데, 그것도 자기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죠. 하지만 ‘부활’이란 소설에서는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82세까지 살죠. 그 시대에는 엄청나게 오래 산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죽을 때가 돼서 이웃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고 아쉬운 것이 있었을까요? 이미 성인으로 대접받는 사람인데”

  “약은 사람이네요”

  김보경이 단번에 말을 한다.

  “오 박사님, 책을 많이 읽으시나 보네요.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바쁘실 터인데 정말 존경스럽네요, 저는 책을 잘 안 읽어서··· ‘진보와 빈곤’이란 책이 ‘부활’이란 소설하고 연결되는지는···, 잘 몰랐던 이야기네요. ‘부활’이라는 것도 영화로 보았지, 책으로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의외네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서수경이 말한다.

  오진명이 서수경을 보고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부를 창출한 자산가를 사치나 조장하고 다니는 존재로 단정하고 접근하는 것, 그 전제 조건이 잘못된 출발처럼 보입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구석기 채집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이 강가와 냇가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신석기 시대 이후, 인류의 역사에서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어 산적이 있나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강가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전투하는 병사들이 생기고, 저장된 식량을 관리하는 사람, 배분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무기를 만드는 사람, 가축을 키우는 사람, 그리고 다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절대 권력자 왕과 신의 뜻을 알려주는 제사장을 뽑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강한 소유욕, 집착은 이때부터 인간에게 생기었을 겁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나의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 거죠. 신분과 직업의 구분이 발생했고, 일의 차별이 시작된 겁니다. 육체와 정신으로 노동을 구분하고, 명령하고, 명령에 따르는 계급이 생긴 거죠. 특정 직업을 가진 그들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그들이 부동산을 움켜쥔 겁니다.’ 

  사람이 나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배부른 자와 배고픈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오 박사님, 의견에 일단 동의하고요” 

  김보경이 주위 사람들에게 차분한 미소를 보여주며 말한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헨리 조지’라는 사람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보다는 나’라는 본능이 있지 않나요? 배가 고프면 내가 먼저 먹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다면 내가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거죠. 물론 네가 먼저 먹고, 내가 죽고 너 살고 하는 그런 아가페적인 희생도 있습니다만 영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타인의 고통을 잔인한 쾌락으로 즐기는 파괴적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천사가 있으면 악마가 있듯이, 착한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이 있는 거죠, 어두운 면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거죠. 겉만 보면 성실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음흉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많죠.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죠’

  그런데 헨리 조지는 토지, 노동, 자본으로 논리를 전개하면서 경제가 발전하면서 생성되는 부가가치가 자본가들에게만 귀속되므로 노동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특히 부동산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소외되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이 나온다고 주장하죠. 그래서 잘못된 분배를 버리고, 공정하게 분배하면 그 어둠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잘못된 분배는 뭐고, 공정한 분배는 뭡니까? 저는 허무맹랑한 논리처럼 보입니다. 에덴동산을 만들자는 거잖아요.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과, 만들어진 부가가치에 편승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할 수 있는 기본 뼈대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살을 붙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그런 과정을 뒷짐 지고 방관자로 구경만 하고 있죠. 단순하게 토지, 노동, 자본으로 해석하는 것은 노동이 중심이 되었던 농업사회, 초기 산업사회에서 어느 정도 맞을 수 있는 논리처럼 보이지만, 정보화된 사회, AI가 일하는 사회에서 헨리 조지의 주장은 무리입니다.” 

  “김 박사님, 태어나면서부터 부익부 빈익빈으로 살수 밖에 없다면, 그런 사회는 지양하고 새로운 사회 시스템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는 부자로 살고, 누구는 가난하게 살고, 너무 불평등하지 않나요?” 

  “서 박사님, 그것을 어떻게 고치냐는 것이죠? 그 취지는 저도 동감합니다만 어떻게 고칠 수 있냐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답이 없다고 봅니다. 착한 일 하면 죽어서 천국 간다는 그런 말장난이죠” 

  김보경이 톤이 조금 높아지면서 빠르게 말한다.

  “부동산으로 인한 소득을 불로소득으로 접근하면,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 갈등이 또 나오지 않을까요? 대졸과 고졸, 대기업과 소기업, 남자와 여자, 전문직과 비전문직, 의사와 간호사, 정교수와 시간강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지배자와 피지배자, 서울과 지방, 사장과 직원,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 기술직과 단순노동 등등의 차이에서 오는 소득의 차이는 어떻게 해결하죠? 왜 부동산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구분하죠?” 

  오진명은 하루살이처럼 육체노동만 하다가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말한다.

  “음, 그것은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 아닌가요?”

  “예를 들어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와 일용직인 아버지,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와 지게꾼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부모가 살아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자상한 아버지와 폭력적인 아버지, 태어나면서부터 기회가 다릅니다. 이것도 불평등한 것 아닌가요?” 오진명이 말한다.

  “그래서 미래의 모습을 그린 어떤 영화는, 제목이 뭐더라···, 정자와 난자를 국가에서 관리하여, 인공 자궁에서 태어나는 그런 영화도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만 있고 가족을 해체한 세상이 미래 사회라는 거죠.” 임 박사가 말한다.

  “오 박사님 이야기 들으니, 고려와 조선 시대에 있던 음서제도가 생각나네요. 과거 시험을 안 봐도, 집안의 배경으로 벼슬하는 제도입니다. 현대사회인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들이 정말 다 사라졌나요? 정치, 의료, 법조계, 하다못해 노조까지, 자기들이 가진 각종 기득권을 알게 모르게 자식들에게 넘겨주는데, 그러려니 하면서 모른 척하잖아요,” 김보경이 말한다.

  “재산을 상속받아도 나라에서 상속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부동산을 처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려받은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부모에게 받은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재산을 잘 관리하는 것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노동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한다면, 재산을 탕진할 자식이 아니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자식에게 줘야 하는 게 맞는 거라고 봅니다. 이것도 차별인가요? 어떻게 보면 상속 재산을 자녀들에게 1/N으로 규제하는 것은 국가의 지나친 간섭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정태현이 말한다.

  “정 박사 말을 들으니, 왕권의 승계도 될 놈한테 넘겨주지, 장자라고 주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능력 없는 장자가 왕이 되면 형제들끼리 죽이고 죽이는 자리다툼은 늘 있었고,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요” 오진명이 말한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전라도, 경상도에 비교하면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들 아닌가요?” 김보경이 말한다.

  “박사님들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토지공개념은 말 그대로 이론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계속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표만 얻으면 된다고 막 던지는 말처럼 보입니다.’ 

  개인에게 토지가 배분되고, 소유하고, 재산권을 행사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100년도 채 안 지났습니다. 세계 역사를 보아도, 봉건주의가 무너진 그때부터 봐야 하니, 우리보다 조금 더 빨랐을 뿐이지,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개인이 토지를 소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토지란 모든 것의 아래에 있는 것이다(Under All is the Land).’라는 말이 있잖아요, 토지가 권력이 되면 안 되고, 최대한 많은 국민이 자유롭게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다들 아시죠?’ 

  인류가 처음으로 개인들에게 토지를 할당해서 자유롭게 살아본 지, 이제 겨우 100년, 그것을 불로소득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회수한다면, 토지가 권력이 되는 과거 사회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사회가 되는 겁니다.” 정태현이 말한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지만 아무런 영양가 없는 것이다. 책과 논문 속에서 현실의 삶을 이해 하는 사람들인지라,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른다. 책은 책일 뿐, 세상은 다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그들만의 ‘광화문포럼’이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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