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국현 Sep 28. 2024

부미남 15. 국정농단 별거 아니다.

부동산에 미친남자, 장편소설, 돈



 

   파주에 25채가 모여 있는 타운 하우스에 네 사람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차량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며, 바로 옆집과도 50M 정도 떨어져 이웃과 소통이 전혀 없는 타운 하우스이다.      



  “너희 둘이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 

  연보라색 원피스에 하얀 카디건을 거친 미희가 응접실 테이블에 커피를 놓고는 커다란 벽난로를 지나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한다.

  “넌 어떻게 생각해?” 

  태현이가 넥타이를 풀고 응접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으면서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는 호영에게 묻는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생색, 우리 네 사람은 한 운명이잖아. 오만함을 조심해야지. 내가 더 낫다는 오만함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거야. 그 작은 틈이 서로를 불신하게 할 수 있어. 비밀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지만, 몰랐다는 게 변명 안 되고, 모른다고 도망갈 수 없는 그런 관계도 있는 거야.” 

  호영이가 주방에서 걸어오는 형기와 미희를 보면서 대답한다.

  “그럼 내가 먼저 이야기하마” 

  소파에 자리 잡고 앉는 세 사람을 둘러보면서 태현이가 말한다.

  “화천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금강 신도시, 거기서 총알을 만들라고 해. 아파트 32평을 기준으로 6억 원이라고 하면, 1,000가구면 6천억 원, 3,000가구이면 1조8천억 원, 5,000가구를 개발하면 3조 원 사업이야. 5,000가구라고 가정해서 최소 10% 수익이면 3천억 원이지. 이것은 아파트 분양만 생각한 사업 수익이고, 아파트 공사에 따른 건설이윤은 별도야. 만약에 7억 원에 분양해서 채당 1억 원을 먹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면 5,000억 원이라는 추가 수입이 생기지. 기타 수입 등등해서 최소 1조 원의 총알을 만들고자 하는 게, 계획이야”          



  미희는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갈지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움이 크지 않았지만, 형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파주에서 저녁 먹자고 할 때 묵직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인지 몰랐다. 형기는 당황스러워 몸이 긴장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이 자기에게는 없다. 무엇이 되었든 태현이가 그린 행마에 오차 없이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태현이와 일하면서 돈은 의미가 없어졌다. 딸아이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돈의 굴레에서 편안해지자 살아가는 재미가 달라졌다. 전에는 어둠 속에서 어두운 일을 무겁게 했다면, 지금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일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우리 세 사람은 돈을 벌고, 돈을 어떻게 쓸지는 호영이가,”

  “다음 대선이 안 되면, 다 다음 대선에는 무조건 청와대 주인으로, 그것이 내 계획이야.”

  “다 다음이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너무 늦을 것 같은데, 무조건 다음으로 목표 잡으면 무리인가? 일단 다음으로 잡고, 그리고 안 되면 네 말대로 다 다음 전략으로”

  “그래, 다음에 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야 더 좋지, 근데 쉽지 않을 거야.”

  “그래서 그런 건데, 지금 화천시장을 바로 작업할 수 있을까?”

  “작업이 뭐 어렵나?” 

  “저쪽에서는 이용 가치가 많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쳐내야 할 사람이야. 그 양반의 선거공약이 금강 신도시 개발이었어. 지금 부지에 대한 밑그림 작업 중일 거야, 그것을 우리가 가지고 와야만 해’

  오진명 박사 알지? 지적공사에서 국장으로 근무하는 친구, 그 친구가 화천시 공무원들하고 업무 관계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어. 오 박사 말에 의하면, 여비서하고 시장이 사적으로 친한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단다. 화천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무직으로 데리고 온 비서라는데, 변호사 개업하던 시절부터 비서였다고 하니, 한 20년 가까이 된 듯하다.’

  그래서 그 친구가 정리되면, 화천시장이 되어서 우리 ‘말’이 되어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오진명 박사를 말로 쓸까 해, 그리고 윤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네가 그림을 그렸고, 그 그늘에 들어가 잠룡이 되고자 한다면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어.”

  “뭔데?”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정치는 아마추어이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잖아, 우리가 지금 하는 이것은 뭐야? 뒤에서 의도적인 음모를 꾸미는 거지, 공작정치를 우리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쪽에도 우리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공격당할 수 있다는 거야.”

  형기는 두 귀를 아까부터 활짝 열어놓고 있다. 두 놈의 대화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찌릿한 전율이 몸에 흐른다.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면서 재미가 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점점 집중한다. 

  미희가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다시 내려 가지고 오면서 말한다.

  “두 분, 밤새 국정을 논하느라 피곤하시겠네요.” 

  쉰 살이 넘어가면서 우아한 중년 여성미를 풍기는 미희가 커피잔을 테이블에 놓고, 소파에 앉으면서 농담처럼 한마디 던진다. 

  그 말을 듣고 형기가 ‘국정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농단이지’라고 혼잣말로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그것을 태현이가 듣고 말한다.

  “국정농단, 단어 좋다.”



  화천시장은 문자를 보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집에서 알면 어떡할까?’ 혹시나 하면서 고민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가끔 집에서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부부로 산 게 25년이 넘었는데, 일을 핑계로 수없이 외박하고, 어떨 때는 전화 없이 외박한 적도 있다. 모르고 있을까? 눈치를 채고도 모른 척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였다. 집사람에게서 문자가 3개 왔다.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문자로 보내. 예상은 하고 있었어’ 첫 번째 문장보다 두 번째 문장이, 두 번째 보다, 세 번째 문장이 길다. 온몸에 뻗어있는 말초신경이 제멋대로 반응한다. 입술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예상하지 않았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언젠가 마누라가 알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알려지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호흡이 목에 걸려 죄어오는 심장이 바늘에 찔린 것 같은 통증이다. 두 손바닥으로 머리를 움켜잡는다. 순간적으로 주변이 빙빙 돈다. 화천시장을 끝으로 박수받으면서 은퇴할 날이 코앞에 있었다. 아주 미세한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데, 실패 한 것이다. 발바닥에서부터 냉기가 타고 올라와 등줄기로 온다. 춥다. 

  몸이 떨린다. 언론과 방송에서 욕을 해 될 것이다. 인간 이하 취급을 받을 것이다. 상관없다. 얼굴에 철판 깔고 살 자신은 있다. 내 인생에 관심이 있는 거지, 남의 인생에 관심이 원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욕 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살면 된다. 생각이 이래저래 많아지면서 한 방향으로 점점 몰입되어간다. 지금까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 잡고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고, 박수와 환호를 받는 인생이었다. 이제 철저한 혼자가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하고의 소통은 죽는 날까지 없을 것이다. 버려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속세와 연을 끊은 스님처럼 살아야 한다. 남은 인생은 죽은 놈처럼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는 정말 싫다. 

  도망갈 때가 되었다.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이정도 산 인생이라면 재미있게 살았다.          



  전화가 울리고 전화를 받고, 전화 속 이야기를 듣는다. 자가용을 운전한다. 엄청난 속도와 공기를 가르는 압력으로 난간을 뚫은 차가 밤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잠시 뒤 반대 방향에서 짙은 검은색 차량이 한 대 나타난다. 담배를 입에 문 검은 실루엣이 운전석에 희미하게 보인다. 추락한 차량 앞에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달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