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술 한 잔 받으시죠?”
“윤 의원님과 이야기가 되었다고 하니, 정 대표 믿고 남은 인생을 걸어보겠습니다.”
태현이가 소주병을 들고 오진명을 지긋이 쳐다본다. 술을 마시라는 신호이다. 오진명이 뜻을 알고 술잔을 비운다. 태현이는 상대의 빈 술잔에 술 따르고, 자신의 술잔에도 술 따르면서 말한다.
“죽을 각오로 하시어야 합니다. 목숨 걸고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를 것 같은데,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그런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선택의 끝은 하나입니다.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이기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입을 굳게 다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태현이가 따라준 술을 마신다.
“그리고 좀 있다 한 친구가 올 겁니다. 사귀어 두면 좋은 친구입니다. 정치하시게 되면 어두운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겁니다.”
오진명은 오래전부터 성공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오고 있음을 알았다. 평화시장에서 막노동 지게꾼 인생을 살며 늘 술 취해 있는 아버지, 돈이 없어 진창에 빠진 사춘기 소년 오진명은 독고다이로 살아남아야 했다. 돈 버는 일과 검정고시를 병행하였다. 출세하기 위해 법대에 갔다. 죽기 살기로 공부하였지만, 머리 좋은 놈들이 너무 많았다.
강자와 약자가 섞여 있는 사회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일에 대한 능력이 탁월하던지, 아니면 윗사람 눈에 잘 띄던지, 둘 중의 하나임을 알았다. 본인의 능력이 힘센 놈의 벽을 부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 손바닥을 비비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40살을 넘기면서 불안한 마음에, 인맥을 만들고자 남들보다 더 많은 술을 먹었고, 여기저기 다리를 걸치고 다니면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다녔다. 강자에게는 망설임 없이 머리 숙였다.
부동산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정태현이란 사람을 만났다. 말과 행동에 간격이 보이지 않았다. 거침이 없는 그런 남자였다. 자상해 보이는 웃음과 듣기 좋은 목소리에 자기의 생각을 숨기고 있는 사람인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대부분 사람이 둥글둥글하고 솔직해 보이는 저 얼굴에 속았을 것이다. 말할 때마다 부드러운 음성을 쏟아내는 저 남자의 검은 목구멍은 독을 품고 있는 독사의 입이었다. 하지만 저 남자가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하고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설사 화천시장에 공천받지 못해도 윤 의원하고 줄이 닿았다면 다른 길도 있을 것이다. 수백 번 생각해도 인연으로 이해되었다.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꼼짝달싹할 수 없는 길이 정해진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 아닌지도 모른다.
잠시 뒤, 형기가 들어오는 것을 본다. 검은 와이셔츠에 검정 슈트이다. 몸에 걸친 것은 전부 검은색으로 넥타이는 착용하지 않았다. 형기가 태현이 옆에 앉는다. 형기가 술병을 들고 한잔 따른다.
“일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기억이 없는데”
“오래전에 대표님하고, 박호영 검사님하고, 라운딩하신 적이 있지요? 그때, 제가 박 검사님 운전해 드렸습니다. 차에 대기하면서 그때 먼발치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검은 슈트가 강한 첫인상을 준 형기의 술잔을 받는 오진명은 차갑고 날카로운 눈매의 검은 남자에게 긴장감을 느낀다.
“내일 아침 윤의원을 만나러 여의도에 와야 합니다. 실례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늘 술자리는 이 친구하고 하시면 됩니다.”
태현이가 오진명에게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기가 어딘가에 전화한다.
“그럼 나가시죠? 제가 좋은 곳에서 모시겠습니다. 큰일 할 분이니 잘 모시라는 정태현 대표님 지시를 받기도 하였고, 선거운동 때문에 자주 봬야 하고, 여기서 나가지요?”
잠시 뒤에 형기가 입은 것과 같은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 두 명이 들어온다. 혼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주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형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두 사람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듯하다. 두 사람이 정중하게 허리 숙인다. 차가 움직인다.
차는 밤하늘의 여의도 거리를 빠져나와 어둠 속의 올림픽대로를 달린다. 오진명은 놀랍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엄청난 스릴감도 느낀다. 앞뒤로 검은색 차량이 호위하며 한밤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몸의 신경이 갑자기 팽팽해진다. 머릿속 어디선가 엔도르핀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오만한 도취였다. 무의식 속에서 억눌려 있던 또 다른 자아가 세상을 사느라 둘러쓴 껍데기를 꿰뚫고 번득이며 일어난 것이다. 강 건너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자기가 자기를 찬미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오진명은 술을 마신다. 집사람하고는 중매 결혼을 하였다. 부부싸움을 참 많이 했다. 일밖에 모른다고 늘 불평불만이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일주일 소식불통이 되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갔었다고 하면서 ‘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며 살 터이니, 당신은 당신 인생을 살아’ 말하면서 부부는 그날로 회복할 수 없는 벽이 생기었다. 아들이 대학 입학하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 되어 오는 날이 많았다.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조언을 하고자 하였더니, ‘저 때문에 산다는 말 하지 마시고, 아버지 인생을 사세요.’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거절하였다. 그 뒤로 서로가 무관심한 그런 가족이 되었다. 지게꾼 아들로 태어나 성공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아온 인생이다.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지금, 자신이 살아온 삶에 모욕감을 주었던 마누라와 아들에게 화가 났다. 술을 마신다. 분노가 차올랐다. 지금까지 눈치 보면서 바짝 엎드려 산 것이 억울했다. 헛살았다 싶은 감정이다.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신다. 주먹이 쥐어진다. 흰색 옷을 입은 여자가 빈 술잔에 술을 다시 채워주면서 ‘천천히 저하고 같이 드세요’라고 말한다. 여자가 손을 잡아준다.
살아온 인생이 위로받는 듯하였다. 다음 날 오후 잠실 롯데호텔 21층으로 올라간다. 어젯밤 술 따라준 여자가 문 열어준다. 여자의 몸에 땀이 흐르고, 그 땀이 남자의 손과 입술에 닿는다. ‘땀 냄새가 좋다.’ 자아도취에 빠진 영혼과 육체가 결합하여 땀에 흠뻑 젖은 성적교감이 일어난 것이다. 배설에 집중된 육체적 쾌락과 다른 것이었다. 나른함에 잠을 청하던 오진명은 죽은 화천시장이 괴기한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음침한 악몽이었다. 황홀한 절정에 흐르던 땀과는 전혀 다른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심에 잠이 깨었다.
국회를 이른 새벽에 왔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의원실로 올라오라고 한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우리 당을 위해서 후원 많이 해주시는 분이라고 감사합니다.”
상대방을 긴장하게 하며, 본능적으로 거리감 느끼게 하는 문의원의 눈빛이다. 이때까지 언론이나 방송에서 보았던 따뜻한 이미지가 아니다.
“윤 선배한테 부동산 전문가로 이야기 들었습니다. 지금 여당의 부동산정책은 어떻게 봅니까? 저희 당에 도움이 될 조언을 해주신다면”
“현 정부에서 저금리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점을 이용하여 여론전으로 나가시면 될 겁니다.”
“저금리와 부동산, 지금 우리나라만 저금리 정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낮고, 일본 같은 경우는 마이너스 금리입니다. 금리는 점점 낮아지는 추세인데, 무슨 말씀인지”
“아파트 가격에 초점 맞추어야 합니다. 지금 서울아파트 가격은 이명박 때 하락하였다가, 저금리로 인해서 완만하게 상승곡선 그리고 있습니다. 안정된 그래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접근하는 겁니다.’
지금 말씀드리면서 생각 난 것인데 ‘빚내서 집 사라는 것인가?’ ‘국민을 빚쟁이 만드는 정책’ ‘국민 투기 조장하는 정책’ 이런 종류의 Slogan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Targeting을 집 없는 서민들과 젊은 친구들에게 맞추는 겁니다. 그리고 부동산 지수중에 ‘Price Income Rate (PIR)’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택가격을 가구당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입니다. 이 지수를 이용해서 대학 졸업한 젊은 세대들은 15년 동안 돈 한 푼 안 쓰고 모아야만 집 장만할 수 있다고 언론에 뿌리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정 박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인가요? 잘못된 논리면 역으로 당하는 것인데···,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시지요.”
“네 사실입니다. 저금리가 되면 대출 쉽게 받을 수 있고, 대출 쉽게 받을 수 있다면, 살까 말까 망설이는 가수요자에게 영향을 줄 겁니다. 실수요자만 움직이면 부동산 그래프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가수요가 있다면 상승 그래프로 바뀌게 될 겁니다.’
두 분은 법을 공부하신 분이라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여의도에 경제학을 전공하고 통계를 잘 다루는 의원님이 있을 겁니다. 문 의원님을 따르는 의원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지시 내리시면 통계 이용한 자료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올 겁니다.’
지금 가격이 안정된 가격이지만, 통계 이용해서 일반인들이 착각하게 흔들어야 합니다. 2015년 평균 근로자 소득은 3,245만 원입니다. 이를 상위 50%로 바꾸면 2,299만 원입니다. 2015년에 아파트 중위가격은 처음으로 5억 원을 넘었습니다. 처음으로 5억 원을 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 됩니다. 5억 원이 상징적인 숫자가 되어 사람들 마음에 각인될 겁니다. 그리고 PIR로 계산하면 평균 소득으로는 15년 4개월, 상위 50%로 계산하면 21년 7개월입니다.’
PIR 기준을 가구가 아닌 청년 기준으로 슬쩍 방향 트는 겁니다. 사람들은 단위가 바뀐 것을 모르고, 21년 7개월이라는 숫자만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거짓이 아닙니다.’
언론과 방송으로 ‘월급 한 푼도 안 쓰고 21년 7개월을 모아야만 집 살 수 있는 불쌍한 청년세대’라고 한다면 여론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런데 저금리 정책이라니, ‘국정농단 정책’으로 몰아붙이면 됩니다.”
순간적으로 문의원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그리고 자세 바꾸는 윤 의원을 의식하지 못하고 태현이는 계속 말한다.
“‘빚내서 집 사라는 것인가?’라는 구호가 딱 맞을 것 같습니다. 검토해보시고, 빚내서 집 사야 하는 정책은 잘못된 정책으로 여론몰이하시면 됩니다. 투기꾼들을 위한 그런 정책 만들지 말라고, 집 없는 서민을 위한 정책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명분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도 틀린 주장 아닙니다. 여기다가 다주택자들을 양념으로 곁들이면 더 좋을 겁니다.”
“윤 선배님, 우리 당에 자문위원으로 자리 하나 만들어야겠는데요? 부동산 이야기해달라 했더니, 정치를 이야기하네요.”
조용하게 일어나서 문 의원을 향해서 그리고 윤 의원을 향해서 허리 숙여 인사한다.
“오늘 큰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윤 선배님, 이런 귀한 분을 옆에 두시고”
“오늘 즐거웠다니 다행입니다.”
“화천시장은 윤 선배님 의견대로 하겠습니다. 오늘 조찬 감사합니다.”
문 의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자기 의원실로 돌아갔고, 윤 의원하고 둘이 남았다.
“부동산정책만 가지고는 박 대통령을 공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문 의원도 그것을 알고 있고, 다른 기회를 찾을 거다.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지. 일단 문의원이 앞에 가라고 해, 대신 화천시장을 우리가 손에 쥐었으니 괜찮아. 기회가 올 거야. 화천시장에 그 친구가 떨어지면 헛수고 한 것이겠지만, 당 차원에서 움직일 거니, 이제 정 박사도 공식적으로는 뒤로 빠져”
“오진명이 화천시장이 될 것이고, 의원님의 ‘말’이 되도록 만들어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