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새롭게 지은 시청 건물이다. 5층 복도 끝에 있는 방이다. 안쪽에는 업무용 책상과 의자가 보이고, 그 뒤 통유리를 넘어 화천시 일대가 보인다. 사무실 중앙에는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1인용 가죽 소파 앞에 갈색의 원목으로 만든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1인용 소파가 5개씩 마주 보고 있다. 오진명이 상석에 앉아있다. 왼쪽으로 여의도에서 보았던 검은 슈트의 두 명의 남자가, 오른쪽으로 롯데호텔 21층에 있었던 여자가 앉아있다. 잠시 뒤에 형기가 시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형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주춤하다가, 앉아있는 오진명 뒤로 걸어가서 어깨에 두 손을 올려놓고 안마하듯 주무른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시장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오진명 어깨에서 손을 떼고, 뒤로 돌아서 업무용 책상을 중지로 톡톡 치고, 천천히 움직인다. 명패를 쓰다듬으면서 업무용 의자 쪽으로 걸어간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 발걸음을 따라간다.
“시장님, 정말 고생 많이 하시었습니다. 정 대표님의 지시를 받아, 오진명이란 사람을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이곳 시장실로 시장님을 뵈러 올 일은 없을 겁니다. 오늘로 시장님을 위한 제 일은 다 끝났습니다.”
업무 보는 의자에 슬그머니 앉아서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 본다. 오진명은 몸을 돌려 형기를 마주 본다. 의자에 앉아있는 형기 뒤로 왼쪽 구석에는 태극기가 오른쪽 구석에는 시장기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형기는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눕듯이 기댄다. 마땅히 그 자리에 앉아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몸짓에서 느껴진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 듯, 억양 높여 말한다.
“시장님, 기념사진 하나 찍읍시다.”
사진을 찍고 두 사람은 서로 악수한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흐뭇한 웃음으로 박수친다. 이번에는 3명이 의자에 앉은 형기를 둘러싼다. 그 모습을 오진명이 사진 찍는다. 사진 찍고 나자, ‘선물입니다’라고 하면서 형기가 가방에서 봉투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오진명은 그 봉투를 열어 오피스텔 등기권리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여자에게 넘겨준다.
태현이가 비서의 안내를 받아 문 열고 들어선다. 시장실에는 오진명하고 임 박사가 앉아서 커피 마시고 있다. 화천 시 신도시 개발사업 본부장으로 자리 이동한 임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이며 인사한다. 두 사람과 악수하고 태현이는 임박사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뉴스로 보았습니다. 과반이 넘는 한국당 시의원들이 지방채 발행 계획을 반대했더군요, 뭐 예상은 했던 겁니다. 자기들이 추진하려던 사업을 저희가 중간에 가로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태현이가 말한다.
“행정절차는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임 박사가 차질 없이 잘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먼저 화천 도시개발공사 설립 절차를 밟아 주시고요”
오진명이 자연스럽게 업무지시를 한다.
“기본적인 설계를 이렇게 합시다. 화천 도시개발공사와 민간이 함께 금강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는 SPC를 합작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이 SPC에서 토지 입찰을 관리하는 거죠. 지금 아파트 단지로 계획된 블록이 몇 개인가요?” 태현이가 묻는다.
“네, 아파트 개발할 수 있는 블록은 모두 15개입니다.” 임 박사가 대답한다.
“그럼 제가 5개 블록을 맡도록 하죠. 그리고 10개는 저들에게 던져 주면 됩니다. 그러면 시의회에서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1블록에 이름뿐인 수십 개의 법인 이름으로 벌떼 입찰할 것이므로 저들이 다 가지고 갈 겁니다. 5개는 시장의 재량으로 SPC에서 수의계약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LH의 노재호 국장이 있습니다. 조만간에 광화문포럼에 합류할 사람입니다. LH에 김보경 박사가 특채로 들어간 것은 아시죠? 디테일을 두 분이 설계하시면 될 겁니다. 명분을 만들기 위해 LH에 토지를 1~2개 넘겨주고, LH 참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LH의 노재호 국장과 김보경 박사 만나서 논의해보고, 실무계획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SPC에 정 대표님이 참여한다면 특혜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시장인 제가 직권 남용하였다고 분명히 시비 걸 텐데”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자기들이 선거에 졌기 때문에, 찍소리 못하고, 닭 쫓던 개가 된 처지입니다. 그래서 공개 입찰로 문 열어준 것이니, 가만히 있을 겁니다. 예정 가격을 높게 던져 주면 됩니다.’
제가 개인으로 참여할 수 없으므로 펀드와 자산관리회사를 만들어 쿠션 칠 겁니다. 광화문포럼 사람들, 선거에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지분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림 그릴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법에서 정한 형식과 절차를 다 준수하면 됩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는 시장 임기가 다 끝났을 때 아닌가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여기를 발판으로 더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숨을 고르면서 태현은 두 사람의 얼굴을 한번 보고 몸을 앞으로 비스듬히 내밀면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말을 계속한다. 태현이가 말한 ‘더 높이’란 말이 오진명의 귓가에 머물러 앉아 맴돌았다. 오진명은 잠깐이나마 더 높이 올라가는 환상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다. 화천시장의 권력에 취해 가슴이 울렁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도시 개발사업이 자기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스스로가 대단한 위치에 올라와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시장실에 아무도 없이 혼자 있으면, 일부러 소리 내 웃을 때가 있다. 자신이 기특하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행위이다.
“신도시 개발사업은 LH가 해당 지역의 토지 매입하고, 기반 공사 마치고 나서 민간 사업자들에게 토지 분양합니다. 땅장사입니다. 조성 원가에 이윤이 얼마인지는 비공개라서 국민은 모르죠,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으로 가장 돈 벌기 쉬운 조직이 LH일 겁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LH가 아파트를 직접 지어서 팔기도 합니다. 민간과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차이가 없습니다.”
“가격 말고 뭐 차이가 있나요?”
“아뇨, 가격 차이도 없는 겁니다. 8억 원짜리 민간 아파트를 LH가 공급하면 4억 원이 되는 거 아닙니다.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말이 있지만, 다 말장난이고, 매수자는 시세차익 전제로 아파트 분양받는 겁니다. 살던 사람들이 새로 만들어진 아파트에서 계속 사는 재정착률이 15% 내외이고 85%의 사람들은 살던 동네 떠납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민간 아파트가 8억 원이면, LH에서 짓는 아파트는 한 7억 원 언저리 정도입니다. 그 가격이 낮은 가격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렴한 건축자재, 어설픈 조경, 열악한 주민 공동시설 등으로 LH가 공급한 아파트는 가격 경쟁력이 없습니다. 받을 것 다 받는 겁니다.’
정부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똑같습니다. 돈 벌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국민은 민간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고, 실제 거래가격도 차이가 있는 겁니다. 분양받고 나서 가격이 상승하고 안하고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오진명은 공기업에서 월급 받으면서 일할 때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자부심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거란 자기합리화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에서 승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봉사 받아야만 하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겠군요, 물론 공기업에서 일으킨 수익은 일정부분 공익을 위해서 사용되었겠지만, 눈먼 돈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전에는 공공개발이라고 하면, 토지 공사에서 주택 공사에 땅을 팔아서 자기들 수익으로 챙기고, 주택 공사는 아파트 지어 수익을 챙기는 구조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파트가 주공아파트입니다. 지금은 두 조직을 합쳐서 LH가 된 것이고, 권력자들이 돈 벌기 더 쉬운 구조가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