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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Oct 11. 2024

부미남 25. 아.. 부동산에 미쳐 살았구나

부동산에 미친남자. 장편소설. 돈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람 중에 일부가 돈을 갖는다. 사람 중에 극소수가 권력을 손에 쥔다. 모두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의미 있는 길이 사랑ㆍ돈ㆍ권력에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없다는 게 인생이다.     


  두보의 ‘곡강시’의 한 구절인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가지고 온 말이 고희이다. 사람 나이 70세까지 산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드문 일이니 70세가 되면 잔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80세를 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라, 상상 속의 비현실적인 나이였다.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딱히 없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불혹을 두 번 살면 팔십이다. 팔십은 그냥 팔순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가 무엇일까?”

  “사람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거잖아. 오래 사는 것”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연구하고 있어. 명분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 요인을 연구한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붕괴할 것인가야”

  “그런 말 들어본 적이 있어요. 인구소멸로 없어질 최초의 나라가 될 거라고”

  “앞으로 20년 뒤를 생각해봐. 196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 80살이 되는 시대, 다섯 명 중의 세 명이 50대 이상이야.”

  “끔찍하다. 오빠”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사람들이 아파트 선호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 아니지, 시간 문제야.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스스로 붕괴할 거야. 옛날에 셋방살이, 자취방, 하숙집, 달방 등의 용어가 있었어. 이런 개념이 지금의 임대주택, Share House, 한달살이, 공유 오피스 등으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는 거야, 새로운 것이 아니지. 착각하면 안 돼.’

  노인들만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면 주거문화는 바뀔 수밖에 없을 거야. 늙으면 가장 힘든 것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거야. 예전에는 자식이 늙은 부모를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지만, 고령화 사회는 자식이 늙었거나, 죽었거나, 둘 중의 하나야.”

  “아, 그러네, 오빠가 지금 구상하는 사업이 이거구나?”

  “그래, 같이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동주택이 나와야 해. 부동산에 대한 개념을 싹 바꾸어야 해. 고령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세상을 누군가가 만들어야만 해.’

  돈 있는 사람들은 지금 그렇게 살아. 일명 실버타운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거지. 서민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돈을 주고 남은 인생 편하게 살아. 상위 10%가 살아가는 실버타운을 돈 없는 사람은 바라만 봐야지, 죽는 날까지 실버타운 밖, 개미굴 같은 도시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사는 거지.’

  영화 속의 모습이 서울의 미래 모습이 될 수 있어. 대부분은 실버타운에서 버린 찌꺼기 주워 먹다 죽는 개가 될 것이고”

  “고급 실버타운은 보증금 10억 원에 한 달 임대료가 700만 원 정도 하던데”

  “그래, 그래서 내가 구상한 사업은 노인들이 살 수 있는 실버타운 짓는 거야, 사용료는 한 번만 내고 죽는 날까지, 운영 관리자는···”

  “뭐라고요? 죽는 날까지”

  “그래, 소유의 개념이 아니고 사용의 개념이야. 이제 소유의 개념은 고령화 사회에서는 맞지 않아.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올 때가 된 거야, 공산주의와는 다른 개념이 될 거야. 그리고 실버타운, 요양원, 요양병원, 공동묘지를 원스톱으로···, 국가에서 관리해야지.”

  “뭐라고요?”

  “부동산의 내재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까 하는 관점에서 ‘장소성’이란 것 들어보았지?”

  “논문 읽어보고 토론한 적도 있어요”

  “늙은 사람들 전부를 수용할 수는 없어. 주택공급량이 100%가 넘어도 자기 집 소유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전국 떠돌아다니기를 즐기는 사람들, 새집에서만 살고 싶은 사람들 등등이 있으므로, 아무리 선진국이 되어도 자가 보급률 70% 넘기기 어렵다는 것은 너도 알지?”

  “네, 상식이죠”

  “내가 구상한 것도 그래. 전부를 위한 것 아냐. 일부 사람, 돈 없이 늙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거야. 돈 많은 사람은 자기들끼리 놀라고 해, 뭐,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실버타운의 등급을 조절할 수도 있을 것 같네”

  “오빠 말 정리하면 이거네요, 실버타운 사업을 한다. 그런데 단순한 실버타운이 아니라, 요양원, 요양병원, 장례사업까지 원스톱서비스 제공한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임대료이지만, 죽는 날까지라고 하니, 뭐 임대분양의 개념이 되네요, 운영비는 장소마케팅의 개념을 도입하여 충당하는 것이고···, 그런 것 같네요”

  “역시···, 정확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이해하네, 비슷해. 노후 자금 없이 늙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마을이야.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이 없지, 아니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어.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네트워크처럼 퍼져나가면···”

  “검토할 것이 몇 개 있어 보이는데, 흥미로운 사업이네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업이기도 하고”

  “그래서 너에게 사업 제안하는 거야 지금까지 수도 없이 사업 아이디어를 썼다 지웠다 했어.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아 놓았지, 이제 거의 윤곽이 나왔어.”

  “알았어요, 제가 뭘 준비 하나요?”

  “하나 염두에 둘 것은, 만약에 민간 주도로 분양형 실버타운이 있다면, 사기가 될 것이야, 분양하는 사업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분양에 집중할 것이고, 운영에는 관심이 없지, 운영해 준다는 그것은 낚시야, 수익률로 꼬드기는 것과 같아.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분양형 호텔이나 분양형 실버타운은 아주 비슷하지, 하나는 투자상품이고, 하나는 실거주야, 실버타운의 위험이 더 커서 측정 불가야, 미끼를 입에 문 국민은 또 속을 것이고···, 누군가가 돈 버는 그림이지”

  “그러네요, 분양형 호텔과 분양형 실버타운이···,”

  “내일 구속이 될 거야. 땅을 사들여. 제주도, 강원도, 경주, 목포, 그리고 판문점 DMZ 지역, 특히 비무장지대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나오는 족족 사들여, 매물이 없으면 두 배 세 배 준다, 하고 사들이면 돼. 세계에 단 하나뿐인 실버타운을 만들자. 사업계획서도 내가 봐줄 터이니 지금부터 하나하나 만들어봐”

  “오빠, 더운물 틀까? 물이 좀 식었다.”     



  매입한 토지는 모두 국가에 기증하였고, 실버타운과 DMZ의 모든 땅은 공공주택개발청에서 관리한다. DMZ이 개발되면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국유지가 55%였고, 개인들이 보유한 45%는 모두 강제수용하였다. 실버타운은 회원권을 분양하는 것이다. 기간은 죽는 날까지이다. 회원이 죽으면 다시 국가로 귀속되고, 대기자에게 차례대로 넘겨준다. 모든 거래와 운영은 새로이 만들어진 세계연합 기관에서 공정하게 관리한다. 회원은 살고 싶은 곳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참여하는 국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주거 시스템으로 통일되어가면서, 단일 화폐가 만들어졌다. AI의 발달로 언어의 장벽이 없어졌다. 국가의 개념도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새로운 바벨 시대가 열리는 중이다.

  세계 곳곳에서 이주자들이 몰려들면서 늙으면 살기 좋은 나라, 1순위가 되었다. 6.25 전쟁은 인류 역사상, 단 하나의 국가를 둘로 나누어 놓고, 가장 많은 국가가 네편내편 둘로 나누어 패싸움한 전무후무한 전쟁이었다. DMZ은 아마존 밀림 지역을 빼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유일무이한 지역이다. 비무장지대는 생태 자연공원으로 변하고 있다.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곳, DMZ 248km 트레킹 코스는 세계인을 상대로 예약제로 움직인다.      



  팔십이 되었다. 경주에 있다가 이곳에 온 지 3년이 지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여자의 손을 잡고 산책한다. 인생이 공(空)하다는 것을 느끼는 나이, 굽이굽이 주름진 인생의 고달픔과 업연을 털어내기 위해 이곳에 모여 있다.

  제주 조천에 있는 1,400가구가 사는 실버타운이다. 5만 평의 대지에 노인들이 사는 마을이 만들어졌다. 그중에 4만 5천 평이 공원이고 산책길이다. 온갖 꽃들로 4계절을 장식한다. 겹벚꽃, 유채꽃, 능소화, 수국, 코스모스, 산파체스, 동백꽃, 메밀꽃, 들국화, 장미, 해바라기 등등의 꽃들이 색의 아름다움을 눈꼴사납게 보여주고, 후피향나무, 동백나무, 모새나무, 황칠나무, 구실잣밤나무, 소철나무, 먼나무, 소나무, 대나무, 삼나무, 편백 나무 사이로 너울대는 숲길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빨강, 노랑, 검정, 파란색이 입혀진 나무 의자들이 곳곳에 놓여있고, 음료와 빵을 맛볼 수 있는 팔각정 근처에는 물길이 있어 잉어들이 놀고 있다. 산새들이 발걸음에 맞추어 재잘거린다. 잔인한 세월에 지친 노인들에게 신선한 기운을 주는 산책길이다.

  실버타운 직원 유니폼을 입고, 60대 백발의 러시아 여자가 내려주는 모닝커피를 마신다. 세계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젊은 사람들의 결혼보다, 노인들의 황혼 결혼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다. 기대수명이 100세를 넘어서면서 노인의 기준이 75세 이상으로 바뀌었다.

  형기가 저쪽에서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 뒤에 호영이 내외가 리드 줄을 목에 멘 강아지와 함께 오는 것이 보인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따끈따끈한 빵 몇 조각 입에 넣는다.

  “날이 참 좋다.”

  “오늘 뭐 할 거야”

  “나, 나는 오늘 책보고 글 쓰고, 너는?”

  “나는 오늘, 뭐할까?”

  “형기 너는 다음 달에 강원도로 간다면서?”

  “응, 제주에 2년 살아보았으니, 이제 강원도 가야지”

  1시간이 채 안 되게 수다 떨다가 일어난다. 산책하러 가는 사람, 도서관으로 가는 사람, 각각 헤어진다.      



  태현이와 여자는 산책길로 들어간다. 오른쪽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가고, 왼쪽은 수목장으로 가는 길이다. 삶의 잔인한 먼지를 털어낸 영혼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있는 곳이다. 영원함은 없고 인생의 보잘것없는 순간들···, 기억들만 벽의 낙서처럼 펼쳐져 있다. 10분쯤 걸어가다가 먼나무에서 멈춘다. 먼나무에는 여자 이름 팻말이 붙어있다. 빨간색의 나무 의자에 두 사람이 앉아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먼나무 이파리를 바라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의 휜 구름이 보인다. 바람 소리가 두 사람 귓가를 사르르 지나간다. 바람에 팻말이 흔들린다.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는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죄 밖에 없다. 태어난 이상 열심히 사는 것이다. 누구는 사랑을 위해서, 누구는 돈을 위해서, 누구는 권력을 위해서, 욕망의 힘은 본능이다. 아니면 돈, 사랑, 권력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기는 더 어렵다.」



  비가 온다. 해무가 낮게 깔리면서 호랑이가 앉아있는 듯한 서귀포 범섬이 자기만의 신비로움을 보여 주고 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두들겨 맞는 거친 바다가 장관을 이루어 유리 밖으로 보인다. 쏴아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남자는 첫 문장을 써놓고 커피 한 모금 입에 물고 읽어본다. 맘에 안 들어 삭제하고, 다시 써 본다. 옆에는 여자가 책을 읽고, 가끔 고개 들어 글 쓰고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커피 마신다.      



  「태어났으면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인생 대충 살지 않는다. 사랑, 돈, 권력의 욕망에 길들여 죽어가는 것이다. 사랑, 돈, 권력에 자유롭지 않은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그림자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어느 것이 맘에 드는지 여자에게 읽어보라고 한다. 수경이는 두 번째 글이 더 좋다고 한다. 우리는 늘 하나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고 그런 인생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남자는 여자에게 책의 제목으로 불혹이 어떤지 물어본다. 불혹의 나이에 여자를 처음 만난 것을 기억한 것이다. 여자는 남자가 부동산에 미쳐서 살아온 것이 40년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있어서, 남자가 있는 것이다. 남자가 있어서 여자가 있었던 거다. 남자는 눈 감고 여자를 처음 보았던 그 날을 생각한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보이는 것이 전부(全部)이고, 보이는 것이 공(空)한 것이다. 옳고 그름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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