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숫자의 환상과 인구절벽

<시작되지 않은 약속들>

by 경국현

우리는 숫자 속에서 살아간다.
수십만 호, 수백만 호. '공급'이라는 말은 언제나 옳아 보인다.
그러나 숫자는 때로 선동이다.
말해진다는 이유만으로, 실현 가능한 것처럼 믿게 만든다.

집을 짓겠다는 약속은 좀처럼 비판받지 않는다.
공급은 언제나 해결책처럼 제시되고, 숫자는 신뢰를 가장한 구조물로 작동한다.
하지만 그 구조물은 종종 아무것도 지탱하지 않는다.
'공급'이라는 단어는, 실은 '수요의 실종'을 감추는 장막일 뿐이다.

현실은 숫자보다 복잡하고, 느리며, 냉정하다.
인구는 줄고, 도시의 생명은 서서히 소멸하며, 수요는 정체되고 있다.
그럼에도 숫자는 반복되고, 약속은 누적된다.

계획되지 않은 공급이, 계획된 언어로 포장된다.
그리고 미래는 과잉과 착시 속에서 잉크처럼 번진다.

우리는 집을 산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설계한 환상을 소비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환상이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속도로 인구절벽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그것은 예측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부동산 시장을 지탱해 온 수요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패턴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23만 명 수준.
반면 사망자 수는 35만 명을 초과했다.
이른바 '데드크로싱'—사망자가 출생자를 초과하는 현상은
2020년 처음 발생한 이후, 매년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다.
인구 구조 전체가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
OECD 평균 1.6명의 절반 이하이며,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는 한,
생산가능인구는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말은 곧, 부동산 시장의 실수요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2024년 현재,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3곳이 ‘소멸위험지역’이다.
대부분 수도권 외곽과 지방 중소도시에 집중돼 있으며,
일부 군 지역의 빈집 비율은 30%를 넘었다.
도시 기능은 마비되고, 거래는 실종되었으며,
방치된 주택은 관리조차 되지 않는다.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은 2020년을 기점으로 인구 1,000만 명이 무너졌고,
청년층 유입으로 인한 일시적 수요가 있었지만
주거비 상승과 고령화로 상쇄됐다.

이미 서울 강북과 수도권 외곽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율이 떨어지며,
시장 전체가 식어가고 있다.

한 나라가 인구 감소기에 진입하면,
주택 수요는 양적으로 줄어들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완전히 달라진다.

결혼과 출산 중심의 가족 단위 수요는 사라지고,
이제는 단독·고령·무자녀 가구가 대세다.
그들은 더 작고, 더 저렴하고, 더 복지적인 주거 공간을 원한다.
기존의 대형 아파트 중심 시장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방 소멸 대응 특별법’과
‘고령자 맞춤형 공공임대’ 정책으로 대응하려 하지만,
시장은 이미 구조적으로 반응을 멈췄다.
분양은 줄고, 착공은 지연되며, 미분양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2024년 4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 호를 넘어섰다.
그 중 70%가 지방에 몰려 있다.
수요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공급을 밀어붙인 결과다.

주택은 더 이상 ‘모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소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자산’이 되었고,
그 소수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수요는 없다.
수요가 없으면 가격은 유지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진실 앞에서,
한국의 부동산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붕괴의 출발점은,
바로 ‘수요의 절멸’이다.





작가 소개

부동산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EMBA 겸임교수.

30년간 투자·정책·교육·현장을 오가며 부동산을 연구하고 해체해왔다.

‘가격’이 아닌 ‘구조’를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붕괴의 구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부동산, 끝의 시작』에서 그 조용한 균열을 함께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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