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비오는 날, 개처럼 들어온 남자

<부동산으로 불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by 경국현

<1부; 2005-2010년>



02.


분양사무실 팀장으로 일하는 J에게, 그 남자는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존재였다.
떠도는 분양쟁이들처럼 이곳저곳 현장을 돌며 일당을 챙기는 양아치쯤으로 보였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0월, 갑작스레 쏟아진 가을비.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머리칼이 젖고 어깨가 축 처진 한 남자가 들어섰다.
마치 비 맞은 똥개처럼.
그리고는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 좀 합시다.”

첫인상은 초라했다.
세상살이도, 부동산도 모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무렵, 그는 똥개에서 진돗개가 되어 있었다.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둥글고 편안한 턱선, 밤 라디오의 DJ처럼 낮고 묵직한 목소리.
말 한마디면 마음이 기울었다.

“형님이 처음 ‘일 좀 해보겠다’고 찾아왔을 땐, 솔직히 놀랐습니다.”
맥주잔을 비우며 J가 말했다.
“저도 이 일 4년 됐지만, 대부분 사정 안 좋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오는 거지, 자기 발로 찾아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는 웃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팀장님은 제가 부동산으로 인연 맺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지금 네이버에 투자 카페 만들었고, 칼럼도 쓰고 있습니다.
조인스랜드, 상가114, 스피드뱅크… 책도 낼 생각이고, 사업도 해보려 합니다.”

J는 물었다.
“형님 칼럼 보고 오는 사람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란 거죠?”

“맞습니다. 전부 인터넷 글 보고 상담 신청한 분들입니다.
처음엔 가짜 명함 줍니다. 아직 사업자도 없으니까요.
그들은 날 모르고, 난 그들을 압니다. 두세 번 만나면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죠.
그 믿음이 융단처럼 깔려 있어요.”

“그게… 속이는 건데요?”

“사기와 속임수는 다릅니다.
투자 결정, 그들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가 하게 만드는 거죠.”

그의 말은 당당했고, 설득력이 있었다.
어디서 이런 인간이 나왔을까.

J는 그 순간, 아버지를 떠올렸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날.
삶과 죽음은 의사의 손에 있었고, 자신은 무력했다.
의학 용어 섞인 설명은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거액의 치료비 앞에선 묻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팀장님, 사기와 속임수는 어떻게 다릅니까?”
“응?”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 거짓말이죠.
원가가 100원이면 누구에겐 130원, 누구에겐 300원.
월급도 100만 원 받는 사람이 있고, 1,000만 원 받는 사람도 있잖아요.
정상가격이란 건 없습니다. 수요와 공급, 학교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죠.”

그는 곧 전설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첫 계약 이후 두 달 만에 다섯 건의 계약을 따냈다.
수수료만 2억 5천. 믿기 힘든 수치였다.

“하는 일마다 실패했어요. 끝없이 추락했죠.
밑바닥이라 여겼을 때, 부동산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수역을 나왔는데, 비가 오더군요.
현수막이 눈에 띄어서, 그냥 그 길로 분양사무실에 들어갔어요.”

솔직했다.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는 종로 원서동의 낡은 빌라에 산다.
창경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초라하지만 풍광만큼은 서울에서 손꼽힐 만한 곳.

하지만 밥벌이 능력은 부족했다.
궁상 떠는 삶, 그 중간 어딘가에서 늘 허우적거리는 사람.
J는 자신을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이 남자를 만났다.
그건 분명 ‘인연’이었다.

인연은 우연처럼 찾아온다.
어떤 이는 흘려보내고, 어떤 이는 붙잡는다.
그는 빛처럼 스며드는 존재였다.

“팀장님, 분양이 뭡니까?”
“팔아야 돈이 되지.”
“그렇죠. 전문가들? 전부 파는 사람들 편입니다.
저는 사는 사람 편에 서보려 합니다.
그들이 나를 찾아오게 만들고, 제 이름이 브랜드가 되도록 만들 겁니다.
그게 마케팅이고, 포지셔닝입니다.”

J는 입을 다물었다.
수많은 현장을 다니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수원, 파주, 인천, 남양주…
서울 근교를 돌며 그는 태엽 감긴 인형처럼 움직였다.
떠들고, 웃고, 전화를 놓지 않으며 계약서를 쌓아올렸다.

그의 밥벌이 능력은 왜 그토록 늦게 꽃피웠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가 번 돈은 현실이었다. 숫자로 증명되는 힘이었다.

“형님, 계획은 뭡니까?”
“분양대행사 차립니다. 그리고, 10년 안에 제 이름으로 빌딩 하나 짓겠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요.”

그의 야망은 조용했고,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나 J의 마음엔 이상한 울림이 남았다.
이 남자의 삶에, 어쩌면 자신도 공범자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작가 소개


백혈병을 겪고 인생의 방향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학문과 사업의 경계를 오가던 길 위에서, 결국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이 소설은 부동산에 입문하고 사업을 해온, 제 삶의 기록이며,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회 예고

3장. 위로 받는자
글쓰는 과정에 제목이 바뀔 수 있습니다.


–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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