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으로 불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1부; 2005년-2010년
03.
따분하게 누워 있던 여자는 문자를 보고 벌떡 일어난다.
거울을 보고, 다시 문자를 확인하다가, 또다시 거울을 본다.
립스틱을 바르고 지우고 다시 바른다.
옷장을 열어 옷걸이를 털듯 쓸어보다가, 롱 원피스에서 손이 멈춘다.
속옷부터 새로 갈아입는다. 새 옷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다.
거울 속 여자는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다.
하얀 얼굴, 도톰한 입술,
“아담하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남자는 술집으로 향한다.
부부란 결국 삶의 일부만 공유하는 존재 아닐까.
공유하지 않는 부분은 오히려 더 깊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서로 존중한다는 말 뒤엔, 무관심한 계약관계가 숨어 있다.
여자는 술집에 먼저 도착해 소주 한 잔을 마신다.
쓴맛이 코끝을 스치고, 차가운 액체가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1년 전 이곳에서 두 사람은 처음 술을 마셨다.
그 벽에 빼곡히 낙서를 남긴 이들은 대부분,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이겠지.
마지막으로 그를 본 건,
역 앞에서 ‘상가 분양’ 홍보띠를 두르고 전단을 나눠주던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순댓국집에서 마주앉아 여자가 말했다.
“이건 너랑 안 어울려. 딴 일 해. 마누라한테 말해, 망했다고.”
“네 엄마 돈 많잖아. 좀 도와달라 그래. 네가 남편이고, 아들이잖아.”
단호한 말투였다.
거칠게 들렸지만, 남자에겐 귀여워 보였다.
“계약? 웃기고 있네.
분양하면서 몇이나 계약하겠어?
지나가던 사람이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계약한다고?”
여자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잔을 기울인다.
“그냥 얼렁뚱땅 돈을 주고받으면서 물건을 사고 팔아,
그게 부동산이라면… 나, 여기에 인생 걸어볼래.”
여자 앞에 서면,
자기 인생을 막고 있던 장막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허세일까? 아니면 환상?
여자는 불안하다.
이 남자가, 자신으로 인해 이 바닥에 뛰어든 건 아닐까.
얼굴 위로 노숙자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사업 망한 지 4년.
아무도 나에게 기대 안 해.
그냥 말 안 할 뿐이지.”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남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가족들이 말해.
돈도 못 벌면서 왜 나가냐고. 그냥 집에 있으라고.
그 말 들을 때, 진짜… 잔인하단 생각 들어.”
남자의 한숨이 길게 이어진다.
“내가 우리 집에서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된 것 같아.
돈이 곧 권력이구나, 싶더라.”
“그런 감정에 빠지지 마.
마누라가 돈 버는 거, 뭐 어때서.
그냥 너는 살아. 그렇게.”
남자는 여자의 눈을 바라본다.
그 안에 담긴 걱정과 따뜻함이 고맙다.
“부동산, 할 만한 일이야.
깃발 꽂으면 내 땅이 되는 거지.
지금은 밑그림 그리는 중.
그림이 완성되면, 제일 먼저 너한테 말할게.”
남자는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부터 고양이 그릴 생각은 없었다.
남은 인생, 미련 없이 살겠다고 다짐했다.
입구를 바라보며 여자는 그가 오기를 기다린다.
문이 열릴 때마다 가슴이 움찔,
그리고 실망.
그리움은 어느새 여자의 하루가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건,
목마름이었다.
문이 열리고,
그가 나타났다.
눈이 마주친다.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따라 손을 든다.
“오늘은 내가 살게.
이제 너보다 돈 많이 버는 것 같거든.”
술잔을 주고받으며 남자는 흰 봉투를 꺼낸다.
“고맙다. 이건 스카우트 비용이다.
너한테만 주는 거 아냐. 부담 갖지 마.”
수표 열 장.
여자는 당황하지만, 남자는 태연하다.
“인터넷 검색해봐.
내가 쓴 글들, 다 나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돈이 보여.
같이 일하자. 어때?”
남자는 골뱅이를 까서 그녀의 접시에 올려놓는다.
그의 손길에, 여자의 시선이 멈춘다.
“내 말 잘 들어.
너 같은 놈들 많이 봤어.
분양 좀 해서 돈 벌면 대행사 차린다느니,
시행한다느니…
배운 놈들이 더 위험하더라.”
남자의 눈이 흔들린다.
여자는 단호하게 말을 잇는다.
“나는 너처럼 배우진 못했지만,
양아치는 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내가 양아치 안 되게,
네가 내 옆에 있어 줘.”
남자는 술잔을 비우며,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묘한 공모의 기운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작가 소개
부동산학 박사.
삶의 나락과 상승, 그리고 인간관계의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소설을 국내 최초로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에는 요약본을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다음회 예고
남자와 여자가 사랑이라는 욕망으로 들어가는 불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