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남자(1) 권지용, 88년생
::빅뱅 - We Belong Together::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몰랐다.
항상 곁에 있었으니까.
매년 새로운 앨범과 무대를 보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지디가 컴백했다.
단 한 번도 내가 당신의 팬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나는 그저 빅뱅 신곡이 나오면 방구석에서 영상을 찾아보는 정도였다. 굳이 빅뱅 노래를 틀어 듣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빅뱅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술집에서, 축제에서, 클럽에서 나는 늘 당신의 노래를 들었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사랑받고 있었다. 누군가 가끔 당신을 향해 욕을 하더라도, 가끔 ‘약쟁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당신이 나오는 예능이나 당신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나만큼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당신의 팬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당신을 향해 노란 불빛을 흔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당신의 팬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었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나는 당신이 아니라 빅뱅의 팬이었다. 초등학생 때,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 모두 빅뱅을 좋아했다. 빅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쉽게 친해지지만, 빅뱅 때문에 자주 다투기도 한다. ‘빅뱅 멤버 중에 누굴 가장 좋아하냐’를 가지고 절교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으로 치면 ‘최애’를 하나씩 꼽는 건데, 한 번 정하면 중간에 바꾸기 어렵다. 예컨대 지디를 가장 좋아한다던 친구가 다른 무리에서는 탑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전교에 소문이 돈다. 그 친구는 ‘철새’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왕따가 된다. 언제든 이리저리 마음을 바꿀 만큼 가벼운 이미지라는 낙인이 찍힌다.
초등학생 때는 이렇게 사소한 이유로 왕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왕따가 되면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최애’를 고를 땐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같은 무리의 친구들끼리 ‘최애’가 겹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다니던 무리가 6~7명 정도였는데, 빅뱅 멤버 수와 동일하게 다섯 명으로 맞추기도 했다.
“빅뱅에서 누가 제일 좋아? 난 권죵.”
보통 그 무리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거나 목소리 큰 친구가 지디를 골랐다. 비어있는 자리를 먼저 찜하듯이, ‘빅뱅 멤버 중에 누가 가장 좋냐’고 먼저 물어봐 놓곤 재빨리 지디라고 답했다.
아니, 그땐 지디 혹은 지드래곤이라고 지칭하면 안 됐다. 그건 빅뱅의 찐팬이 아닌 것 같은 뉘앙스이기 때문이다. 권지용, 권죵, 권징요, 권시크... 그를 부르는 애칭이 따로 있었다.
그다음은 취향 차이다. 탑이 잘생겼다며 한결같이 탑만 고르는 친구가 있고, 막내가 귀엽다며 한결같이 막내만 고르는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종종 대성을 좋아한다고 나서서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패밀리가 떴다>가 한창 할 때라 대성 팬도 많았다.
그리고 태양을 고르는 친구들은 늘 마지막이었다. (태양이 별로라서가 아니었다. 그땐 그냥 그렇게 됐다.) 보통 그 무리에서 가장 조용하거나 사실 빅뱅에 큰 관심이 없는데 분위기를 맞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처럼 태양을 최애로 고르는 경우도 있다. 나는 굳이 친구들과 다투기 싫어서, 혹은 왕따 당하기 두려워서 항상 태양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사실 태양이 가장 내 이상형에 가까운 것도 맞다. 또 빅뱅 멤버들을 모두 좋아했기에 누굴 고르든 상관없던 것도 맞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최애는 지디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교우 관계를 다 빼놓고 말하자면, 난 지디를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