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남자(3) 순정파, 30세
::민수 - 민수는 혼란스럽다::
'근데 이 남자 마스크를 벗은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술자리에서도 술을 안 마신답시고 마스크를 꼈다.
카페에서도, 벚꽃길을 걸을 때도 마스크를 벗을 일이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난 마스크가 답답해서 바깥을 걷거나 카페에서 음료가 나오자마자 바로바로 마스크를 벗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떻게 마스크를 한순간도 안 벗을 수가 있지? 코로나 감염에 아주 예민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만... 마스크가 불편하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만...
설마 마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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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가서 그의 카톡에 있는 프로필 사진을 다 찾아봤다. 두 장 있었는데 전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강아지 사진뿐이었다. 아무리 상상해 봐도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감이 안 잡혔다.
딱 한 번만 벗길 수 있다면...
마침 회사에서 그와 동창이라던 선배가 둘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봤다. 나는 심각하게 ‘그 사람 얼굴을 몰라요. 왜 마스크를 안 벗는 거예요? 마기꾼이죠?’라고 답하자 선배가 빵 터졌다.
"걔 마스크 빼도 똑같이 생겼어. 둘이 진짜 잘 됐으면 좋겠어. 걔 진짜 괜찮은 애야. 둘이 잘 어울려. 너도 덩치 큰 남자 좋아하잖아."
선배는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며 재차 말했다.
나도 안다.
그는 정말 착하고 우직하고 괜찮은 남자다.
그런데...
그런데…
얼굴을 모르는데 어떻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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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은 삼세판. 나는 이미 그와 단둘이 두 번 만났다. 이제 한 번만 더 만나면 정말 사귀어야 할 것 같았다.
선배의 말을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
나는 더 이상 그 선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를 피해 다녔다. 얼굴도 모르면서 먼저 꼬시고, 썸 타고, 데이트도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는 게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가 진짜 마기꾼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지… 이것도 어떻게 보면 마기꾼이다.
그가 마스크를 안 벗은 게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일부러 안 벗은 거일 수도 있다. 침묵도 거짓말인 것처럼 마스크로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도 마기꾼이다! 나는 끝내 마기꾼에 대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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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꾼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도 마기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웬만해선 절대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심지어 밥 먹을 때도 마스크를 사수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마기꾼들이 남을 속이려고 일부러 마스크를 계속 끼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마기꾼이라고 다 같은 마기꾼이 아니다. 둘 중 하나다.
마스크만 쓰면 당당해지는 마기꾼.
혹은
마스크를 벗을 때 어딘가 미안해하는 마기꾼.
그는 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마스크를 안 벗은 게 아니라 못 벗었겠지. 어느 타이밍에 벗어야 할지 본인도 불안했겠지... 하지만 이것도 명백히 마기꾼이다.
그래, 그가 일부러 속인 게 아니라면 사기꾼까지는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필적 고의 사기꾼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미필적 고의 마기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