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남자(2) 권지용, 88년생
::빅뱅 - Always::
하지만 그때는 지디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게 당연했다.
우리는 자신의 최애를 정하고 나서 ‘권사포여친’, ‘대성에몽z’ 같은 닉네임을 지었다. 가끔은 각자 그 멤버가 되어 역할 놀이도 했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무대에서는 무려 네 팀이나 <거짓말>을 선보였다. 나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춤을 춰봤다.
내가 남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유일한 노래가 빅뱅 노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도록 마찬가지였다. 빅뱅은 매년 그 한 해를 추억할 만한 신곡들을 발매했다.
대학 축제 때는 <뱅뱅뱅>, <판타스틱 베이비>만 들리면 모두가 일어나서 춤췄다. <붉은 노을>로 빅뱅 메들리가 끝나고 나면 꼭 아침 해가 떴다. 빅뱅 노래가 나올 때면 남자여자 할 거 없이 우리 모두 춤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예쁜 척, 멋진 척도 하지 않고 땀에 찌들어선 어깨동무를 스스럼없이 했다. 그때는 서로 번호를 따거나 말을 거는 그런 이성적인 교류도 없다. 그저 동료애로 박자에 맞춰 뛸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까지는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기억들이 드문드문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바빠진 걸까? 내가 나이가 든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빅뱅은 잊혔다.
가끔 ‘빅뱅 띵곡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도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다. <무제>와 <봄여름가을겨울>이 발매됐지만, 나도 딱 그 노래의 분위기처럼 살아갔던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그리고 뒤늦게 빅뱅의 해체 기사를 보았다. 내가 이 소식을 왜 이제야 알았지? 나는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빅뱅 멤버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까지 들었다.
빅뱅의 해체 소식을 알고 눈물이 났다면 주책일까?
빅뱅이 해체한다는데 왜 온 세상이 떠들썩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다들 빅뱅을 잊은 걸까?
다들 빅뱅을 잊었나 싶었을 때쯤 뉴스에 지디 이름이 들려왔다.
지디가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슈트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이 그날따라 왠지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거실에서 텔레비전 보는 아버지가 늙어 보였다’라는 그런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난 지디를 응원할 수도 없고, 의심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디의 팬이라고 단 한 번도 당당하게 말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빅뱅을 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