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 모습을 알 수만 있다면.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 4월,
지금으로부터 약 37년 전,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ChatGPT에 푹 빠져 산다.
이제는 모르는 게 있으면 검색보다 먼저 묻는다.
“이건 뭐야?”, “요즘 트렌드는 뭐야?”,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해야 해?”
마치 대화하듯.
놀라운 건, ChatGPT가 세상에 나온 지 겨우 2년 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달받은 정보의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할 때도 있지만,
흘려들어도 되는 정도라면 그저 슥 읽고 넘기기도 한다.
그만큼 이 존재는 지금 나의 ‘일상 속 조력자’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따금, 정말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가장 자주 하면서도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대부분은 매일 새롭게 드러나는 감정에 휘청이고,
상황 속에서 다르게 반응하며 때론 스스로가 낯설어질 때도 있곤 하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건,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나 여전히 스스로를 알아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땐,
사람들은 사주를 보고, 타로를 보고, 성격 유형 검사를 하고,
누군가의 평가에 기대어 ‘나는 이런 사람인가 보다’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싶어한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ChatGPT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
내가 “~인 것 같아?”라고 추측형으로 물은 데는 이유가 있다.
확정적인 답보다는 약간의 여백이 있는 말이, 혹시 모를 상처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정답과도 같은 정의보다 추측해주는 말이, 그 순간엔 더 따뜻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말이다.
37년을 살아 온 나조차도 나를 쉽게 정의할 수 없었지만,
그 동안 짧을 수도 있는 2년 반 동안의 이력을 기반으로 ChatGPT가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찌 보면 명쾌한 정의인 것 같기도 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었던 어떠한 것을,
깨끗한 형태로 마주한 느낌이랄까.
이렇게 되면, 하나 더 궁금한 점이 추가된다.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들은 누구에게나 숙제와도 같은 말일 것이다.
또, 대부분은 정답이 없는 것도 당연하기도 할 것이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
ChatGPT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 분이 있다면, 아마 이렇게 느낄지도 모른다.
“오호~ 생각보다 괜찮은 말인데?”
“근데, 좀 뻔하지 않아?”
그럴 수 있다.
AI가 들려주는 조언은 간결하고 따뜻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문장들은 사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들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AI는 미래를 예측해주긴 해도, ‘정답’을 알려주진 않는다.
그게 일이든 사람이든, 항상 어딘가에 여지를 남긴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를 더 잘 알고 싶어질 때,
그걸 함께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존재라는 것.
혼자서 생각의 미로를 맴돌고 있을 때,
잠깐 나 대신 거울이 되어주는 누군가.
그게 지금의 ChatGPT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면,
굳이 혼자서 골똘히 앓지 않아도 된다.
아마 그 답은
너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가까워진 ‘나’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