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 속에서 우리는 때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을 때, 삶은 다시 빛을 찾기 시작한다.
급하게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음을 잡지 못했다. 오랜만에 본 아들을 안아주지도 못하고, 식탁에 앉아 멍하니 파라핀만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눈물만 흐르고 있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체, 그저 울기만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함께 입원했던 언니였다.
“인경아! 소식 들었다. 어쩌냐? 몸은 괜찮아?”
“모르겠어요. 지금은. 눈물만 나와요.”
“치료는 해야지?”
“해야 하는데 할 게 없어요. 난 항암 방사선은 못 해요.”
“그래도 살아야지. 아이들이 어린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야지. 너 금이랑 코인 주식 다 팔아라. 현금을 최대한 가지고 있어. 그 돈으로 뭐든 해봐. 중입자 치료라고 아니?”
“그게 뭔데요? 들어보긴 했는데 잘 몰라요.”
“찾아봐봐. 지금 연대와 암센터 두 군데서 가능해. 비용이 6,000만 원 정도라고 하던데. 정확히 알아봐. 얼마가 들던 해 봐.”라는 말에 나는 바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하지만, 백혈병 종류에는 효과가 없다고 나와 있었다.
한 곳을 집중해서 치료하는 거라 골수암, 혈액암같이 온몸에 있는 암은 해당하지 않았다. 언니는 나에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며 무슨 짓이든 해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나는 미친 듯이 통곡했다.
내가 살면서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했을까? 난 오직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나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 많이 준 거 나도 안다. 그런 죄가 이렇게 큰 걸까? 내 거밖에 몰라 남에게 베풀지 못한 거 인정한다. 욕심부린 것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무서운 병에 걸려야 할까?
암 중에 가장 무서운 병이 골수암이다. 죽을 때 가장 고통받고 죽는 병이다. 죄 많은 사람이 받는 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런 병에 걸릴 정도로 내가 정말 많은 죄를 짓고 살았을까? 미칠 것 같았다. 11년의 투병 생활이 적었나? 나의 마무리는 결국 병으로 고통 속에서 끝나는 걸까? 인간다운 삶은 없단 말인가?
어렸을 때, 죽고 싶다고 자살 시도할 때는 성공하지 못했다. 정말 죽고 싶을 때는 살라하고 살고 싶은 지금은 죽으라 한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게.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화가 났다.
원망할 곳이 없는 나는 남편이 미웠다. 결혼 초창기에 정말 참을 수 없는 행동들로 나를 암까지 오게 만든 시누이와 남편. 옛일이 떠오르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특히 마지막 남편 자살소동은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나의 통곡 소리에 놀란 아들은 누나에게 톡을 보냈다. 딸의 톡이 왔다.
“엄마! 울지마!”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어보면서 ‘놀란 아들이 어떻게 하지 못하고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도 눈이 있어.”라는 딸의 재치에 웃음이 나왔다.
침실로 가서 누웠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언니의 전화를 받으며 울기만 했다. 언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내 이름만 불렀다. 핸드폰으로 코인 방송을 들었다. 코인을 모두 팔고 난 뒤 매일 후회하며 듣던 여러 유튜브 방송을 들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시끄럽기만 하고 뭐라고 말하는데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골수암에 관한 방송으로 채널을 바꾸었다. 마찬가지였다. 귀에서 윙윙거리며 뭔가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들리는 말은 생존율밖에 없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또 울고만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내 옆에 누워있었다. 배가 고플 텐데 아무 말 못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자며 일어났다. 딸은 열심히 엄마가 좋아하는 고기를 굽고 있었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힘도 없고 눈이 부어 잠이 든 나는 새벽에 열두 번도 더 깼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모든 마음을 비웠다. 웃으면서
“아그들아! 엄마는 이젠 슬퍼하지 않으련다. 오늘부터 즐겁게 살련다. 살아있는 순간을 즐겨야지. 이렇게 울다 죽으면 더 억울할듯해. 저녁에 대학 친구들도 만나기로 했고, 내일은 우리 망고 빙수 먹으러 신라호텔에 가야지?”라고 말하자, 딸은 밝게 웃으면서
“잘 생각했어. 엄마! 엄마 안 죽어. 점쟁이가 90살까지 산다고 했잖아!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즐겁게 놀다 와!”라며 작년에 종로에서 본 점쟁이 이야기를 하며 웃는 딸을 보니,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야지. 이젠 신경 쓰지 않고 살련다. 죽을 때 죽더라고 지금은 즐기련다.”라며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종로에서 만난 친구들 또한 걱정의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이제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게 나의 병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보다 더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안국동의 유명한 도넛 가게에 가자고 했다.
며칠 전 딸은 금을 사고 심부름 값으로 받은 돈으로 도넛을 사러 가려다 엄마의 골수암 소식에 울다가 집에 왔다고 했다. 딸이 말한 ‘노티드 도넛’ 가게로 친구들과 갔다. 친구들에게도 도넛을 사주면서 아이들 주라고 했다.
이날부터 나는 다시 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내 마음의 허전함과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매일 친구들과 지인분들을 만나 웃고 떠들면서 지냈다. 아들딸과도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나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병마와의 싸움이 나에게 준 것은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도 발견한 작은 기쁨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순간들이 다시 살아갈 용기였다.
이제 나는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 동안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웃음을 선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삶이란 그 자차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202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