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7일, 오후 4시쯤 나는 새로운 치료에 도전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반을 이용한 치료법이다. 태반 앰플 10바이알에 내 몸의 피를 2cc 뽑아 잘 섞어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빠르게 허벅지 근육에 투여하는 방법이다.
이 치료법은 50년 전 러시아의 한 의사가 개발한 치료이다. 4기 암 환자 100명에게 임상으로 실행한 결과, 60명 이상이 10년 이상 생존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시판되지 않은 임상 치료법이다.
의학적으로는 IPT. (immuno placental therapy)라고 불리는 이 치료법은 “태반 백신”이라고 한다. 증상이 개선되는 시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태반주사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다.
내 피를 태반에 넣은 이유는 ‘인터페론감마’란 케모카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성분을 직접 구매하기엔 금액이 너무 부담스럽다. 다행히 암 환자의 피엔 ‘인터페론감마’ 성분이 일반인보다 많다는 연구를 바탕으로 이 방법을 선택했다.
‘인터페론감마’라는 케모카인이 태반의 세포를 자극하여 암을 치료하는 약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논문에 의하면 치료 후, 일시적으로 암 부위의 통증이 심해질 수도 있지만, 이는 몸이 좋아지려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예상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몸살, 고열 등 다양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효과는 보통 2주 후에 나타난다고 되어있다. 이처럼 아직 정식 임상 실험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루타로 내가 처음 시도해 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의사가 권유했을 때,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 되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통증은 점점 심해져 가지만,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나에게 해볼 수 있는 치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한 번에 22cc를 한쪽 허벅지에 투입해야 하지만, 양이 많았다. 우리는 반으로 나누어 양쪽에 맞기로 했다. 내 피 1cc와 태반 10cc를 썩어 11cc씩 2개의 주사기로 만들었다.
나는 얇은 바늘보다 굵은 바늘로 맞겠다고 했다. 맞는 도중 피가 응고되는 것도 걱정되었고, 직접 맞는 건 가는 바늘이 오히려 더 따갑기 때문이다.
허벅지에 바늘이 들어가고 약물이 투입될 땐 묵직하며 아팠지만, 어찌 암 통증에 비하겠는가? 맞고 나자, 약간의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남은 ICT 치료를 한 뒤 병실로 올라와 침상에 누었다.
40분쯤 지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방귀가 나왔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 깜짝 놀란 나는 병간호하는 아들을 쳐다보았다. 핸드폰에 정신이 없는 아들은 엄마의 당황한 표정을 보지 못한 듯했다. 나는 화장실로 피했다. 내 방귀 냄새가 이렇게 독한 적은 처음이었다.
다시 침대로 올라가는 데 아픈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암 통증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했던 팔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속으론 ‘아무리 효과가 바로 온다지만, 허벅지에 맞았는데 팔부터 이렇게 빨리 편해질까?’라는 생각만 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나는 방에선 최대한 걸음을 자제했다. 화장실은 혼자 가야 한다는 압박에 다리를 아꼈다. 이상했다. 다리 또한 걷는 게 부드러웠고, 예전보다 많이 걸어도 통증이 덜했다. 신기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런 효과를 느낀다는 게.
메스꺼웠던 속도 저녁 식사로 나온 매콤한 쫄면과 총각무로 어느 정도 진정시켰다. 쉬려고 했던 나는 따뜻한 곳이 생각났다. 병원 1층에 있는 따뜻한 찜질방에서 30분쯤 지나자, 팔이 옆으로도 뻗어졌다. 오른쪽 머리까지 올라가 한쪽이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통증은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지난 10월, 죽음의 통증 이후 처음이다.
병실로 올라온 나는 파라핀에 손과 팔을 담그며 서서히 팔을 돌려보았다. 훨씬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팔을 보며, 고개도 숙여보았다. 어깨랑 가슴의 통증도 덜했다. 기분이 좋아 아들에게 엄마 좀 보라며 자랑했다. 이게 일시적인 현상인지 계속되는 건지가 궁금했다.
주사 맞은 곳은 한 시간이 지나자 빨갛게 부어올랐다. 만지자 뜨근뜨근했다. 2시간쯤 지나자 약간 부은 기는 있으나, 붉은색도 가라앉고 주사 놓은 자리에 멍만 남아있었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가서 또 한 번 놀랐다. 대변의 냄새가 그야말로 악취였다. 내 변임에도 참기 힘든 암모니아 냄새에 아침부터 비유를 건드렸다. ‘내 몸에서 독소가 배출되고 있는 걸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새벽에 잠시 다리 통증이 오긴 했지만, 24시간 아픔을 동반했던 어깨통증이 견딜만했다. 다리도 병실 안을 돌아다니기엔 무리가 없었다. 이 순간 나는 ‘하나님 저에게 이런 행운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오늘은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 생일이다. 저녁에 가족들과 식사하기로 했다. 남편은 불경기로 일이 없다며 5시 반까지 올 수 있다고 했다. 외출 준비가 끝나자, 아들은 휠체어를 병실 앞으로 가져왔다.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는 사랑이었다.
1층에 도착하자, 남편은 내 차를 가지고 왔다. 남편이 트럭을 운전한 이후 승용차 운전이 예전만 못했다. 큰 차를 몰다 작은 차를 끌어서인지 우리 가족은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가 운전석에 앉았다. 한쪽 발을 들어올려야 하기에 아들은 차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조심스레 내 다리를 올려주고 운전석에 안전하게 앉으면 문을 닫아 주었다. 몸은 불편하지만, 이런 대우를 받을 때마다 내 마음은 행복함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병원 근처 식당에서 가족과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병원에 돌아왔다. 이때도 주차하는 동안 아들은 빨리 병원 현관에 두고 온 휠체어를 가지고 나왔다. 팔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위해 말없이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은 이쁘고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더없이 감사했다.
곧 죽을 수 있다는 무서운 병으로 아픈 건 서럽고 힘들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아픈 게 나쁜 건만은 아니었다. 매일 아들딸이 웃으며 서로의 편의에 맞게 번갈아 가며 나를 간병해 준다. 치료실에 갈 때도 아이들은 나를 공주처럼 휠체어를 태워 데려다준다. 치료가 끝나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준다.
내가 언제 이런 대우를 자식에게 받겠는가? 자유롭지 못한 몸과 통증으로 짜증은 나지만, 항상 웃는 두 아이가 옆에서 나에게 행복을 준다. 두 아이의 사랑이 나의 슬픔을 웃음으로 바꾸어준다.
나는 원장님을 만나 태반 백신을 5일에 한 번씩 맞고 싶은데 메뉴얼엔 어찌 되어있는지 물었다. 메뉴얼엔 평생 한 번으로 암 치료의 성문을 열어주는 기능을 한다고 쓰여있단다. 2~3달에 한 번씩도 했지만, 그들은 오래 살지는 못했다고 한다.
또한 뼈로 전이된 환우에겐 큰 효과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항암치료도 안 하고 점점 나빠져 가는 내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아 권유하셨단다.
원장님은 생쥐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한 실험은 있었지만, 아직 사람에겐 시행 전이라고 했다. 또한 태반 백신 후에는 ‘흉선 추출물’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는 싸이 원주를 일주일에 2번씩 맞기로 했다. 성문이 열렸으니,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하며 뜸과 열 치료, 아미그달린도 꾸준히 병행할 예정이다.
현재 나는 암이 남들과 달리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심하여 치료 방법도 딱히 없다. 2주 정도 지켜보고 조금씩 편해지는 느낌이 사라지면 반복적으로 시행하려고 한다. 태반 백신은 컨디션을 높여주면서 치료한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나는 특별한 치료법을 선택했다. 아직 정식 치료법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효과도 검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몸은 분명 변화를 느끼고 있다. 치료가 끝난 후의 컨디션은 최상이고, 지금 나는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
이 방법이 나에게 큰 효과가 있기를 기도 한다. 이 병원에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를 살리시기 위해 이 병원에 보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팔다리의 암으로 인해 몸은 불편하지만, 살아있는 오늘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오늘도 치료에 임한다.
202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