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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Oct 27. 2022

아이들의 종이접기  

애석하게도 종이 접는 엄마의 두뇌는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가방을 매일 뒤적거린다. 앞주머니에 언제나 쓰레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니, 쓰레기는 아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접어온 색종이들, 색칠해서 오려온 종이들, 친구들과 주고받은 그림들다. 문제는 정말 한가득씩 매일 나와서 중요한 가정통신문을 놓칠 때도 많고 알림장 같은 노트들도 색종이 더미에 파묻혀 미처 체크하지 못하고 보낼 때가 몇 번 있다는 것. 사실 내 눈에는 쓰레기이지만 아이들 에게는 나름 중요한 무언가 이다. 별것 아닌 조잡한 그림에도 하나하나 다 의미가 숨어있고 메시지가 담겨있으며 각자의 추억을 담아 가지고 오는 것이니 함부로 쓰레기라 부르고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면 정말 경을 치기 일쑤, 그래서 일단 보는 앞에서 다 꺼내 만 놓고 오며 가며 조금씩, 슬금슬금, 티 안나게 버리다가 그다음 날 등원하면 싹 갖다 버린다. 어차피 오늘 또 그만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어제의 물건들을 오늘 버린 것으로는 아이에게 혼나지 않는다. 재활용 쓰레기로 버릴 수도 없는 종이 조각들로 우리 집 종량제 봉투는 아주 가볍게, 그러나 꽉 차 있다.


이 정도는 약과다


큰아이가 종이접기를 시작한 것은 5세 겨울이었다. 당시 유치원 친구들의 형아들이 접어오는 종이접기를 보고, 선물로도 받아오며 저도 따라 하고 싶어 했는데 아직은 기본 접기 조차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어린아이였기에 그때는 종이 접기가 거의 내 몫이었다. 종이 접기라는 게 처음 반으로 접기, 세모로 접기에서 조금씩 어긋나는 게 쌓이면 마지막 결과물이 예쁘지가 않다. 심한 경우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기질적으로 꼼꼼하고 예민하고, 완벽주의 성향에 승부욕까지 있는 큰아이의 기준에 맞춰주려 이제 갓 두 돌 된 둘째를 끌어안고 열심히 접어 주었다. 큰 아이는 그렇게 종이접기를 익히면서도 자기가 접는 것이 엄마가 접는 것보다 못한 것을 영 못 마땅해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모서리를 맞추어 꼼꼼히 접는 법을 알려주고 연습하게 했더니 점차 나아지는 자신의 결과물이 본인도 꽤 만족스러운지 그때부터 종이접기 홀릭이 되었다.



종이 접기가 아이들의 두뇌발달에 좋다는 것은 여러 번 들어온 말이라 색종이는 끝없이 제공해 주었다. 다만 너무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 주고 지도하고 있는 편인데 물자가 흔한 세상을 사는 아이에게 왜 종이를 아껴야 하는지를 체감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다이소에 가면 널린 게 색종인데 다 쓰면 다시 사면되는데, 돈이 없으면 카드로 사면되는데, 유치원에 가면 많은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종이와 연필만큼은 끊임없이 제공받았던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아이의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한다. 내가 아끼자, 내가 쓰는 키친타월, 물티슈, 물걸레 청소포를 줄이는 것으로 아이의 업을 갚아보자 하고 말이다.



큰 아이의 종이접기는 나날이 늘어갔다. 작년에 네모 아저씨라는 유튜브 종이접기 선생님의 종이 팽이, 페이퍼 블레이드가 대 유행을 하였는데 처음에 몇 번 같이 접어 주니 그다음부터 꽤나 난도가 있는 팽이도 척척 접어냈다. 온 가족들의 칭찬과 감탄과 격려를 등에 업고 아이의 종이접기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했다.


다섯 살 둘째의 종이접기, 어설프지만 로봇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큰아이는 예민하고 꼼꼼하며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무언 갈 잘 해내려 하는 승부욕이 있는 아이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게 나오는 것,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동생이 와서 방해하는 것을 견디지 못할 때도 많았다. 주로 패드를 보며 혼자 종이 접기에 몰두하는데, 패드 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아 제지하려고 해도 울상을 지어, 하던 것은 마무리하고 오늘은 그만 보도록 지도하는 편이다. 당장 끄라고 하는 것이 이 아이에겐 얼마나 가혹할지, 화장실에서 큰일 보는데 중간에 끊고 나오라고 하는 것보다 더 한 고역일 테니 말이다. 네모 아저씨의 종이팽이는 꽤나 어려운 수준까지 진화했고, 아이는 그것들을 거의 마스터했을 뿐 아니라 이제 패드나 종이접기 책을 보지 않고도 자기 나름대로의 조합으로 팽이를 만들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5킬로짜리 과탄산소다를 다 쓴 플라스틱 바구니를 종이접기 결과물 상자로 주었는데 그것을 가득 채울 만큼 (맘에 들지 않게 접어진 것은 폐기처분하거나, 동생에게 줘 버리거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팽이를 접어댔다. 동생은 형아가 종이 접기에 열중하면 심술을 부린다. 저는 못 하는데, 형아랑 놀 수도 없고, 칭찬은 형아만 받으니 심술이 날 만도 하다. 형제의 난의 도화선이기도 해서 그것을 중재하느라 나만 새우등이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새우등 터지는 대신에 흰머리가 났겠지.


코로나 투병 투혼. 엄마는 아파도 쉴 수가 없었다.


격리기간동안 무증상 확진자였던 둘째와 이렇게 뒤엉켜 놀았어도 끝까지 음성이었던 첫째. 강한 아이. 나와 신랑만 많이 아팠던 우리집 코로나의 기억

여하튼, 지난 2월 온 가족이 코로나로 2주 격리에 들어갔을 때도 팽이를 천 개 접을 수 있겠다며 오히려 신나 하던 큰 아이는, 종이접기 기술을 더 발전시켜 요즘은 미니카 합체로봇을 접는다. 색종이 한 장을 이등분, 사등분, 사등분한 한 조각을 또 이등분하여 접는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데 종이를 잘 접는 것보다 그것에 집중하는 집중력이 놀랍다. 방해하는 동생이 없을 때에는 한 시간도 꼼짝 않고 접을 때도 있어 이제 그만 쉬라고 내가 말릴 정도이다. 종이 접기로 집중력도 늘고, 소근육 발달도 되고, 친구들에게 선물도 하고 가르쳐 주기도 하며 사회성 발달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동생하고의 사이만 자꾸만 틀어진다. 심술 내는 동생과 역정 내는 형아.

정품을 제작한 큰 아이의 여유, 짝퉁을 만들고는 눈치보는 둘째.


어제는 둘째 녀석이 종이접기 더미들 속에 파묻혀 무언갈 열심히 하고 있길래 옳다구나 하고 모른 척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슬금슬금 오더니 자기의 작품을 내민다. 형아가 접고 버린 미니카 조각들을 테이프로 얽어서 자기만의 합체로봇을 만든 것이다. 나름 변화를 주어 숫자 스티커를 붙여서는 숫자 에너지 폭탄이 탑재된 자기만의 로봇이라고 작품 뽐내기에 이메일로 응모해 달라고 귓속말로 속삭인다. 원작자 형아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너무 웃겨서 깔깔 웃고 말았다. 꼭 내 이름으로 응모해 달라고 귓속말로 속삭이고 눈빛으로 확인을 받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 와중에 원작자는 형아이고 자기는 그저 얽었을 뿐이라는 걸, 당당하게 큰 소리로 내 거라고 외칠 수는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기특했다. 너도 일곱 살 되면 형아보다 더 잘 접을 수 있을 거라고 꽉 끌어안고 말해주니 금방 당당히 웃으며 돌아선다.


아이들이 등원한 지금도 나는 종이 쓰레기를 모아다 종량제 봉투에 넣고 꽉꽉 누른다. 행여나 아이들이 돌아와 쓰레기봉투에 들어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도로 꺼내려고 할까 봐 쓰레기봉투를 저기 안 보이는 곳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들의 색종이 접기를 도우며 나도 색종이 꽤나 접었는데 내 두뇌는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걸 보니 정말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모양이다. 지금 종이 접는 때, 아이들의 종이접기를 화내지 않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기로 다짐한다. 쓰레기봉투를 발로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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