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2년간 한자와 서예를 가르치는 학원을 다녔다. 정식 학원은 아니었고 집에서 하는 공부방 같은 곳이었는데 선생님이 꼼꼼하시고 아이들을 잘 봐주셔서 언제나 정원이 꽉 차던 곳. 미리 연락도 안 하고 무작정 찾아가 등록을 희망했는데 마침 오늘 이사 나간 아이가 있어 등록이 가능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당시엔 서예와 한자가 슬슬 사양학원? 쪽으로 접어드는 추세였다. 컴퓨터 학원이 생기고, 영어 학원이 싹을 틔우려 준비하던 시기. 서예와 한자는 조금 고리타분하거나 아니면 정말 산만한 애들이 차분해지라고 다니는 학원 이미지가 조금 있었다. 참고로 옷에 먹물이 튀는 것이 싫으면 차분해야 하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괜찮은 아이라면, 이를테면 나 같은, 붓글씨를 쓰고 먹물을 소매에 잔뜩 바르고 집에 오기 일쑤였으니, 엄마가 그런 걸로 화낸 기억이 없는데 참으로 대단하신 엄마님이시다. 나는 지금 애들이 유치원에서 짜장만 묻혀와도 짜증이 나는데. 여하튼, 그렇게 시작한 서예에서 나름의 끈기와 열성으로 글씨를 작게, 예쁘게, 한 장 가득 빼곡하게 쓸 수 있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 한두 글자, 세 글자 정도를 쓰다가 맘에 안 드는 점, 획이 나오면 이번 장은 망했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일단 마음이 흔들리니 예쁜 글씨가 써지지 않았고, 글씨가 예쁘게 써져도 이미 틀린 글씨만 보였으며 그러다 결국 구겨 버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게 되는 그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끝까지 예쁘게 안 틀리고 해 냈을 때의 기쁨은 어쩌다 한 번이었고 대부분 이번 장은 망했구나 하는 마음과의 싸움이었으니, 열 살, 열한 살 꼬마였던 나의 인생 최대의 고비, 살얼음 위를 살살 걷는 마음으로 평안하기보다 불안한 마음으로 글씨를 쓸 때가 많았다. 그렇게 계속 쓰다 보니 어느덧 도를 아는 순간이 왔다. 조금 틀린 것 같은 점, 맘에 안 들게 뻗은 획, 비뚤게 느껴지는 선들을 꾹 참고 한 글자 한 글자 끝까지 써서 완성만 하면 일단 작품이 된 다는 것, 한 글자의 작은 부분들보다 전체의 조화, 균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더 큰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로는 작은 실수들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한 평정심으로 끝까지 쓸 수 있게 되었다. 불안을 떨치고, 평안하게 끝까지, 그 무렵부터 노트 필기가 마음에 안 들어졌다고 공책을 부욱 뜯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고약한 심보도 고쳐진 것 같다. 서예 학원을 다녀서 나의 덤벙거리는 성격이 고쳐진 건 아니지만, 그런 도를 깨쳤다는 건,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영향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때 배운 한자로 어휘력도 늘었을 것이고 나중에 중국어를 전공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큰 아이는 다섯 살에 종이 접기에 입문을 했다. 처음엔 간단한 여우 접기, 밤 접기여서 같이 접고 접어 주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여섯 살이 되며 종이 팽이 접기를 시작하며 아이의 종이접기는 물줄기가 달라졌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많이들 익숙할만한 네모아저씨라는 유튜브 채널을 보며 팽이 접기를 하는데 난이도가 여섯 살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워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자기가 못 접는 것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고사리 손으로 팽이를 접기 시작했는데, 어려움에 좌절을 하면서도 성실히 배우고 색종이 세 장으로 접는 종이 팽이의 원리도 이해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기의 팽이가 예쁘지 않은 것, 비뚠 모양이 되는 것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연습을 하며 기어이 꼼꼼하게, 예쁘게 마스터했다. 정말 기특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조금씩 엇나가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실패했다고, 망쳤다고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고 울 때도 있었다. 도대체 어디가 틀린 건지 물어보면 끝 모서리가 조금 삐둘어져 있거나, 모서리 부분이 조금 찢어진 정도였는데 그것이 영 맘에 들지 않을 순 있는데 그 짜증을 왜 나한테 부리는지, 그런데 이 광경, 어디서 많이 봤다 하니 내가 붓글씨를 쓰며 작은 것 하나에 집착을 하던 그 모습과 너무 닮았다. 뒷골 당기는 아이의 떼부림을 참아줘야 할 이유가 생겨버린 것이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나이고, 어쩌면 나를 빼닮아 이 아이가 이러는 것일지도 모르니. 아이가 실패했다고 짜증을 부리는 그 색종이들을 주워 들고 내가 팽이를 접어 완성해 주었다. 조금 틀어져도 완전한 작품이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음을 내 손으로 천천히 옆에서 보여 준 것이다. 모서리가 찢어진 것은 어차피 마지막엔 가려져서 안 보이고, 조금 비뚤게 접어진 것도 완성된 팽이에선 하나도 티가 안 난다고. 몇 번이나 실패했다 내던진 색종이를 들고 팽이를 접어 완성해 주니 아이도 이해한 듯하다. 그러더니 정말 무서운 속도로 팽이 접기를 마스터하였다. 나중엔 완성된 팽이 몇 개를 모아 돌려 보며 도는 모양을 보고 최종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은 것 같은데 팽이마다 균형감, 손잡이의 모양 등으로 도는 모양새가 다 다르다고 한다. 맘에 드는 것을 고르고 나머지는 동생에게 하사하기도 하고 정리 좀 하자는 엄마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루 이틀 지난 것들은 쓰레기통에 선뜻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팽이 접기의 과정을 이겨낸 평정심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아의의 평정심은 나의 흰머리, 주름과 맞바꾼 결과물이라,나는 그러는 동안 한 소끔 더 늙었다.
팽이는 점점 진화 한다. 어렵게 어렵게, 뾰족하게 뾰족하게.
한동안 합체로봇을 열심히 접다가 이제 시시해졌다 하더니 때 마침 네모아저씨의 신작 팽이 접기 책의 제5권 마스터십이 출간되어 이번 방학엔 신나게 팽이를 접어 돌릴 예정이다. 4권까지만 해도 조금 귀찮긴 하지만 진짜 어려워서 못 접어주겠다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책은 마스터십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정말 어렵다. 모서리마다 뾰족하게 각이 잡혀야 멋진 팽이인데 어른의 크고 둔한 손으로는 그렇게 뾰족하고 작은 각을 맞추기가 정말 어렵다. 아이에게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처음 팽이 접기를 할 때처럼 조금 접다가 실패했다고, 망쳤다고 짜증을 부리지 않는다. 정말 접다가 그만 찢어져서 못 쓰게 되는 경우를 빼고는 웬만하면 끝까지 접어는 본다. 접다가 안 되는 것은 물어보기도 하고, 일단 접으며 익히고, 익힌 걸 바탕으로 새 색종이를 갖다가 다시 접어보니 5권에 있는 어려운 팽이들도 접을 줄 알게 된 것이 여럿 있다. 팽이를 잘 접는 것도 기특하지만,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진 것이 더 기특하다. 팽이 접기 책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눈이 침침해서 머리가 아파지는데 아이의 골똘한 눈빛은 더 빛이 난다. 여섯 살 꼬마에서 이젠 입학을 앞둔 어엿한 형아가 되어 당연히 더 자랐겠지만, 팽이 접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또 한 번 아이의 성장을 느낀다. 부럽다. 자람. 잘 함.
#네모아저씨
빛 바랜 종이 위에 나의 아이 일 적 시간이 담겨 있다. 아이는 없어지고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가 쓴 글씨는 종이와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