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바라보는 눈
불만 vs 문제인식
건방지게도 나는 사물이나 상황을 보는 통찰에 있어서 스페셜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건방지다고 표현했지만 나름 자중하고 있다고 하기 위한 밑밥이다.
브런치에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일을 할 때 늘 효율을 찾는다. 그러나 업무의 환경과 시스템 자체가 비효율적이면 그 아래에서 효율을 찾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는 시스템을 개선시키고자 노력한다.
동료들에게 말하곤 한다. 특히 후배를 가르쳐야 하는 선배의 입장에선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이런 잔소리는 꼭 한다.
문제는 누구나 알아낼 수 있지만 문제만 꺼내면 불만이요, 해결까지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식이다.
문제인식이라는 단어를 너무 주관적으로 풀이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해결까지 고민하겠다는 의도가 없으면 입 밖에 꺼내지 말자고 다짐한다.
'문제인식과 해결'이라는 업무 기조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몸 구석구석 체화되었고 첫 직장이 대기업이었음에도 말단직원의 쓴소리가 먹혀들어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작년에 퇴사한 회사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럴 때마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결을 위한 방안도 제안했다.
끊임없이 거절당했다. 아니, 차라리 거절이면 감사할 정도로 나의 제안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같았다. 나의 '문제 인식'이 '불만'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분명 둘의 차이는 명확한데..
결국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대상에게 원망의 화살을 쏘아댔다.
나이를 먹은 건가. 좋게 말해 연륜이 쌓인 건가.
상황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제품을 출시하고 고객도 만들어낸, 잘 키워온 스타트업이다.
성장통이 올 때가 되었다. 작은 규모의 인원인데도 잦은 마찰과 묵은 갈등들.
업무 시스템이 잘 정의되지 않았기에 많은 일들이 임기응변 식인 것은 당연한 일.
회사에 적응을 위해 사람들과 일대일, 다대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경영진(특히 대표)을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듣고 있는데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원망의 화살을 쏘아댈 과녁이 필요해 보인다.
내색은 안 했지만 부끄러웠다.
갑자기 나에게서 그동안의 방법과는 다른 모습이 나왔다. 모든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대표는 왜 그랬을까
실무진의 이런 생각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상황이 그랬던 걸까
그동안의 관성 때문일까
학습되어 온 교훈 때문일까
바꿀 의향은 있을까
대상을 성질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지만 상황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겠거니.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해결 방법이 보였다. 나름대로 파악한 회사, 대표, 직원들의 상황들을 여러 부분에서 이해시키려 했다. 그다음에서야 해결안을 제시했다.
합류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나의 제안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지랖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내 본업이라기보다 내 일을 잘하기 위해 제반되어야 하는 것들이기에 나라도 나서야 한다.
마음 한편에 의무적으로 담대함을 가지려 한다.
'내 일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바라지 말자'
'내 의견이 무시돼도 서운해 말자'
나의 논리를 강화하고자 대상의 부족함을 무기 삼기까지 하며 관철시키려 했던 것 같다. 혀 끝의 날카로움을 없애야겠다. 혀 끝이 무뎌진 대신 옵션이 하나 더 생기겠지.
지난 1년 동안 일을 안 했는데 뭔 깨달음을 얻은 거지?
뭐지? 육아하다 보니 미륵이 오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