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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작가 Mar 17. 2024

비건을 대하는 자세

내가 프렌즈에 빠지게 된 이유 - 시즌3 Ep10

 우리나라에선 자신이 비건이라고 스스로 지칭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비건이 되기엔 고기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우리나라는 고기가 귀해서 주식으로 먹기 어려웠기 때문에 비건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지 못했다고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건이란 동물(조류, 어류, 해산물 포함) 및 알류, 우유, 유제품, 꿀 등 모든 동물성 식품 섭취를 제한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더 나아가 비건 제품으로 확장이 되는데, 이는 동물성 원료나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만든 제품들을 말한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비건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비건은 마치 고급스러운 프리미엄의 개념으로만 느껴지는 경우가 있으며,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천연이기 때문에 더욱 성분이 좋을 것이다라고 판단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면에, 비건의 움직임을 유난 떤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 나는 비건이 아니며, 부끄럽지만 비건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간혹 동물 실험의 잔인성에 대한 영상을 보는 순간에만 과하게 몰입했다가 막상 몇 시간만 지나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삼겹살이 땡긴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던 중 프렌즈에 피비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어 비건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피비는 굉장히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캐릭터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밍크 같은 비싼 의류들을 소비하지 않기도 하고 대량생산하는 제품들 또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건에 대해 익숙한 미국이지만, 피비의 친구들은 그런 피비를 조금은 유별나게 생각한다는 점이 드러난 장면들도 쉽게 찾아볼 있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에피소드는 이렇게 생명을 소중히 하는 피비의 면모가 잘 드러나면서도 조금은 유별난 피비를 대하는 다른 친구들의 방식 또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에피소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려진 이야기로, 사람들은 베어진 나무를 구매하여 곳곳에 트리를 꾸미곤 했다. 당시에 조이는 트리 판매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고, 피비는 그런 조이를 구경하러 그곳에 놀러 갔다.

신선하고 푸르른 나무들을 앞으로 꺼내고 나이 들고 져버린 나무들을 뒤로 옮기려던 조이를 보고 피비는 깜짝 놀라며 '나이차별'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주 못쓰게 된 나무를 분쇄기에 넣어 갈아버리는 것을 보고 피비는 그만 눈을 가려버리고 만다.


 사실상 조이의 입장에서는 알바 중에 피비의 그러한 행동이 방해가 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을 법한데 조이는 이를 다 받아주고 피비가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도 해준다.


 마침 며칠 뒤에 모니카도 트리를 구매하러 조이가 일하고 있는 가게로 찾아왔고, 피비는 모니카에게 너무나 오래되어서 죽어버린 나무를 사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모니카 입장에서도 그런 트리를 살 수는 없었을 테고 사실 피비도 자신의 요구가 지나쳤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싶었다.


 나는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아마도 피비가 슬퍼하며 끝나지 않을까 하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쯤에 모니카는 그 트리가게에 있는 모든 죽은 트리들을 구매하여 집안 한가득 장식하고, 모든 나무들이 트리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어 피비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었다.


 분명 모니카도 죽은 트리를 구매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피비를 위해 전부 구매해 주었다는 점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여느 식스센스급 반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피비가 기뻐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죽은 나무들로 가득 찬 모니카의 집이었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멋진 크리스마스 인테리어였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끝나고 나서 피비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죽은 나무를 뒤로 빼버리는 모습을 '나이차별'이라고 이야기한 대목도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감에 따라 언젠가 모든 생명은 결국 나이가 들고 약해지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해 온 인간이기에 낡고 병든 것보다 젊고 건강한 것을 찾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이지만, 어느 누구도 낡고 병든 것들을 먼저 돌봐주고 신경 써주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사회는 생명의 가치보다 돈, 권력 따위의 것들에 더욱 매몰되어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다 시들어 죽어버린 나무일지라도 한때는 푸르렀고 그로 인해 다른 나무들이 태어나고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렇기에 어느 하나의 생명도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피비처럼 살아갈 순 없을지라도 적어도 피비처럼 유별난 사람들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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