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밤 11시 52분이다. 오늘 일과를 모두 마치고 네게 2번째 편지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 네가 보내준 어제 편지를 읽고 있다. 유격 훈련을 받는 첫날의 상황을 간결하게 묘사해 놓았더구나. "지옥 같아요!"
시간을 돌이켜 아빠가 훈련받던 때의 유격장 풍경을 그려봤다. 군필자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코스가 유격장이다. 기억을 되살려 볼 테니 나중에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알려다오.
유격장에서는 모든 장애물 코스를 앞에 두고 몸 풀기 체조를 시작한다. 유격장 교관은
“여러분의 몸의 긴장된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기 위해 PT체조를 실시하겠습니다.
조교 앞으로, PT 1번 10회 실시!, 마지막 구호는 붙이지 않습니다. “
네 말대로 지옥을 체험했다. 모든 코스에 앞서 위와 같은 멘트는 무한 반복한다. 처음에 몇 회를 하겠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떤 이유를 대서건 PT 동작을 계속하게 만든다. 처음 10번이 100번이 된다.
”지금부터 PT 8번 30회 실시합니다. 마지막 구호는 붙이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작습니다. 더 크게 더 크게! 손발이 안 맞습니다! “
훈련병들을 정신없이 몰아치다가 29를 복창할 때쯤이면 더 세게 몰아쳐서 마지막 번호는 붙이지 않는다는 지침을 잊게 만든다. 여지없이 누군가 “30!”하고 복창한다.
“정신 차립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군인이 되겠습니까?, 다시 120개 실시!”
이란 식의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
PT는 Physical Training의 약자로 원래는 미국 육군에서 채용한 체력단련 체계이다. 이 체조는 각 동작들이 유기적으로 몸의 곳곳을 순환하면서 단련해 주는 좋은 운동이다. 몸을 단련하기 위해서라면 전체 동작을 몇 번씩 반복시키는 것이 좋다. 하지만 훈련병들에게는 특정 PT를 무한 반복하는 가혹행위 수단으로 더 많이 악용되었다. 그래서 군필자들은 이 PT체조를 피똥체조, 피 튀고 이 갈리는 체조라는 등으로 불렀다.
유격 훈련에 앞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PT체조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몸의 근육을 충분히 풀어줘야 유격 훈련을 받다가 몸이 경직돼서 생길 수 있는 부상을 사전에 방지해 준다. 군대는 단체 활동이 매우 중요해서 단 한 사람이 정신 줄을 놓게 되면 부대 전체가 어려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빡세가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특히 8번 온몸 비틀기 체조를 많이 시키는 이유는 유격 훈련 자체가 복근을 매우 많이 쓰는 훈련이고, 대부분의 장애물들이 복근의 힘이 좋아야 쉽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격 훈련장에서의 이동은 무조건 구보다. 유격 훈련의 기본이 체력이고 유격 훈련은 군기를 매우 중요시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잠시도 신경을 흐트라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유격장에서 PT를 몸이 흐느적 거리도록해서 체력을 고갈시킨 후에 가는 코스가 사격이다. 에너지가 모두 고갈 돼서 오직 방아쇠를 당길 힘 정도만 남아 있어야 총기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에너지가 넘쳐서 산만하게 움직이면 오발 사고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경험상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격의 둘째 날이라고 했지? 사격장의 분위기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진땀이 난다. 손가락 하나 들 수 없을 만치 온몸에 기운을 다 뺀 후에야 실탄 지급을 받고 사격을 할 수 있었다. 아들아, 요즘도 그렇게 PT체조로 온몸에 진을 다 빼놓니? 물론, 힘이 넘치고 산만하면 오발 사고가 높을 수 있기 때문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마지막 힘과 정신만을 남겨 놓는다는 의도에는 일견 찬성한다.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지. 우리 아들을 만나서 요즘의 유격장 분위기와 사격장 상황을 듣고 싶다.
네가 편지에 쓴 '긍정의 힘'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게다가 단 한번 깔끔하고 정확하게 실시한 PT체조 덕분에 나머지 PT체조에서 열외 받고, 다른 훈련에서도 시범을 보이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부분은 재미있더구나. 다른 사람들이 얼차려를 받을 때 눈에 띄지 않아 편하게 쉴 수 있었다는 말은 만나서 들어봐야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특히, 네 전우들이 "너는 어찌 그리 운이 좋으냐, 군대에 말뚝 박아라"라고 말하는 것도 재미있다. 아들 생각은 어떠니? 군대가 너를 반기는 것 같은 이참에 군대에 남을 생각은 없니?
네가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크고 작은 은혜를 매사에 보여주시며 남들이 보기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만사 형통하다"
는 말씀에 너는 무릎을 치고,
" 이거구나,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내가 사람들 중에서 빛나는구나. 나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
라는 너의 고백을 읽으면서 아빠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과 친밀한 만남을 계속한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기쁘고 풍성하겠니, 날마다 이런 삶을 누리기를 기도한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