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편지 (2부) 25

by 순례자

사랑하는 아들아


어떤 날은 왠지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 꼬이는 날이 있다. '머피의 법칙'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계속 문제가 생기는 날이다. 오늘이 그날이다. 학교에서도 너무 당연한 일들이 꼬여서 진땀을 뺐다. 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엄마와 짐(GTM)으로 갔다. 엄마는 핸드폰을 집에 놓고 나왔다. 아빠는 다른 날 보다 좀 늦게 퇴근해서 조금만 운동하고 씻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 산책을 하다가 별다방에 들러 차를 마셨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전화기가 없는 것을 알았다. 운동 후에 전화기를 락커룸에 놓고 온 거다. 네게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가 며칠 전에 전화가 왔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녀오기에는 짐(GTM)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놓고 온 것이 정확히 기억나서 가는 길에 찾기로 했다. 며칠 후에 우리 아들 훈련병 수료식 때 뭘 준비해 갈까, 우리 아들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리고 살아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좀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락커룸에서 전화기를 찾았다.


저녁 11시 6분이다. 핸드폰에 1633 번호가 8시 15, 16분에 미스드콜로 2회 찍혀있다. 우리 아들에게서 온 부대 전화번호다. 엄마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다. 네 전화를 못 받아서 엄마가 얼마나 아쉬웠했는지 모른다. 그날 훈련을 잘 받은 병사에게 주는 일종의 보너스 쿠폰인 전화 걸기 찬스를 그만 놓치고 말았구나. 단 몇 명에게 주는 보너스 찬스를 얻기 위해 우리 아들이 얼마나 애썼을까. 우리의 스케줄을 알고 우리가 집에 있을 시간에 맞춰 전화했는데 전화벨 소리만 계속 울렸겠구나. 아빠의 깜빡 행동으로 아들의 전화를 못 받은 엄마의 속상함은 그대로 아빠에게 쏟아졌다. 아들이 수료식을 앞두고 뭔가 생각났거나, 필요한 것이 있어서 전화했을 텐데 못 받아서 어쩌냐는 것이었다. 오늘은 학교에서부터 '머피의 법칙'이 자꾸 생각나는 날이다.


그래도 엄마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것은 오늘 네게 온 편지다. 지난 일요일에 논산 훈련소의 종교 행사 참여 시간 얘기가 재밌었다. 네 편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침을 먹고 나서 훈련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훈련소 종교활동에 대해서 정보를 나눴다. 그중에 누군가 각 종교마다 어떤 부식(간식)을 주는지 빼곡하게 메모해 놓았다. 간식, 그 달달한 맛을 잊은 지 오래된 너희들의 미각을 충족할 간식을 어느 종교가 가장 풍성하게 채워 주느냐가 너희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육군 훈련소에는 기본적으로 4개의 종교가 있다.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이다. 일요일에는 아침 식사 후와 점심 식사 전 모두 2번의 종교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훈련병들은 각 종교별 프로그램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어느 종교가 아낌없이 간식을 내주느냐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여성 댄스팀의 공연이 있느냐가 중요했다. 네가 알려준 각 종교별 활동은 이렇다.


천주교 미사는 사회의 성당미사와 거의 똑같다. 딱 미사만 드리고 끝난다. 초코파이 2개와 코카콜라 1캔을 준다. 오후 미사는 수녀님의 교리 수업을 듣고 그날 참석자의 수에 따라 초코파이 숫자가 4개 전후가 된다. 불교는 1부에서는 법회를 하거나 찬불가 수업을 하고 2부에서는 스크린으로 부처님을 눈을 가린다. 그리고 여성 댄스팀의 공연, 눈이 휘둥그레지는 공연이 있다. 초코파이 2개와 복숭아 주스 1캔을 준다. 오후도 거의 같다. 기독교는 1부에 예배를 드리고 2부에는 CCM 찬양 공연을 한다. 오후에는 CCM 공연만 한다. 가나파이 2개와 세븐-업 1캔을 준다. 마지막으로 원불교는 오전에만 종교활동을 한다. 1부에는 TV예능프로그램을 보여주고 다음에 명상을 한다. 이어서 '훈련병 장기자랑'을 한다. 여기서 인기를 끌면 몽쉘 1박스를 받는다.


훈련소에서 친해진 전우들이 종교와 상관없이 오전 종교 활동에 참여하고 오후에 몽쉘 한 박스를 받기 위해 원불교 '훈련병 장기자랑'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중에 한 명이 한 박스를 얻어 냈다고 했지.


너와 내가 군대를 다녀온 지 한세대가 넘게 지났는데도 인간의 일차적 욕망의 시험무대가 군 훈련소라는 말은 변함이 없구나. 우리 아들도 오전에 기독교 활동에 참여하고 나서 오후에 다른 종교 활동에 가볼지 잠시 갈등했다고 했지? 그날 오후에 불교에서 괜찮은 간식을 제공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너는 갈등을 떨치고 그날 오후에 내무반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쉬었다고 했다.


오랜 전 아빠는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교회에서 좋은 교역자와 친구들과 신앙생활을 했다. 우리 친구들은 우리 스스로를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몇 명 입대하는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가서 3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입대했다. 사도 베드로의 마음으로 황금어장에 사람을 낚는 어부의 심정으로 군대에 갔다.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가득 찬 때였기에 훈련은 견딜만했다. 훈련병을 마치고 부산의 김해비행장을 거쳐 수영비행장으로 배속받은 후에는 특기병으로 복무하다가 일요일에는 군종병 노릇을 했다. 수영 비행장은 새로 지정돼서 건설 중인 부대로 규모가 작아서 종교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사병들을 이끌고 부대 앞 해운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청년 모임에 참여해서 성경 공부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사병들이 매주 일요일만 기다렸다. 부대 밖을 나갈 수 있었고 맛있는 점심과 청년부의 청년들과 예쁜 자매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극진한 대접을 해줬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시절의 열정과 진지한 군생활이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아들 편지를 받고 보니 역시 우리 아들이구나 싶다. 너는 훈련소에서부터 단단히 마음먹고 독서하며 미래를 계획하고 있구나. 아빠는 하루의 일과를 매일 기록하고 전도하는 정도의 계획을 세웠었다. 더 구체적인 계획은 자대배치받고 3개월 정도 뒤에 밑으로 졸병을 받은 다음에 시작했다. 주로 독서와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들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거라. 네가 입대하면서 사도 바울처럼 부요에도 처하고 곤궁에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니 어떤 일에도 지혜롭게 잘 해결하리라 믿는다.


사랑한다, 아들아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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