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편지(2부) 27

by 순례자

9 사랑하는 아들아

저녁 8시 58분이다. 이번 주는 새벽 예배를 나가려고 마음먹었다. 일찍 자야지. 네게 편지를 쓰고 바로 자려고 해. 오늘 은 네 전화를 받아서 얼마나 기뻤는지! 어제 락카에 핸드폰을 두고 나와서 통화를 못한 기억을 되살려 오늘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운동했다. 어제 통화가 안 됐으니 우리 아들이 오늘 같은 시간에 전화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통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아빠가 전화를 못 받은 바로 그 시간 8시 15분에 벨소리가 울리더니 1633 번호가 떴다.


“아빠!”, 수화기에서 너의 활기차고 밝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곁에 있던 엄마를 불러서 짐(Gym)의 입구 쪽에 있는 락카실의 빈 공간으로 서둘러 갔다. 너도 어디쯤인지 장소가 그려지지? 통화한 지 이틀 밖에 안 됐는데 너는 한 달은 못 본 사람처럼, 다시 전화할 기회가 없는 사람처럼, 신바람이 나서 얘기했다. 며칠 동안 네가 보고 들은 것, 그 짧은 시간 동안 네가 느끼고 생각한 것, 그 시간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지혜를 쉰 목소리로 한바탕 정신없이 펼쳐 놓았다. 포상으로 준 시간이 정확히 5분간이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바빴겠니.


밖에서는 짐(Gym)의 공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더블유(W)의 "이 바보야"와 제시(Jessi)의 "센 언니"가 들려온다. 네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엄마, 아빠는 이어폰을 한쪽씩 끼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귀를 막고 네 얘기에 집중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신바람 나게 하는 우리 아들의 표정과 모습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려볼 수 있을 만큼 생생하고 정겨웠다. 네가 펼쳐놓은 얘기의 여운이 종소리 마냥 우리 마음에 길고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래! 우리 아들이 잘 지내고 있구나!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지금 인터넷으로 며칠 뒤에 너를 만날 훈련병 수료식 날의 날씨 체크를 하고 있다. 너를 만나는 4월 11일 수요일의 날씨는 최저가 8도, 최고가 19도 구나. 구름이 많이 낀다고 한다. 혹 비가 올 수도 있다는구나. 그 주에는 매일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수요일은 구름이다. 그날 비가 안와야 행사에 불편이 없을 텐데. 하기야 모든 부모들이 입대하고 일차 훈련을 마친 아들을 만나러 가는데 비가 온들 무슨 상관이 있겠니.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내 아들이 안전하게 훈련을 끝마치고, 또한 함께 훈련받는 누군가의 아들들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아무 사고 없이 훈련을 잘 마치기를 바랄 뿐이다. 그간 네 얘기를 들어보니 얼마나 복된 일이냐! 이번 차수 훈련병 중에 단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다치지 않고 모두 수료하게 되었다니. 아들을 군대 보내 놓은 심정은 모든 부모가 한마음이다.


엄마는 며칠 전에도 집 앞 T-마트 앞에 장 보러 갔다가 휴가 나온 군인 몇 명이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너도 이따금 갔던 바로 앞에 있는 던킨 도너츠로 군인들을 데리고 갔다. 커피와 도넛을 사주면서 너를 본 듯 이야기 저 얘기 나누다 나왔다고 한다.


이 땅에 군대를 보낸 모든 엄마들은 이와 비슷한 마음인가 보다. 그 풍성한 마음을 아빠들이 태생적으로 따라가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래서 한국뿐 아니라 홍콩과 중국에도 ‘어머니의 날’만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소외된 아버지를 위해서 후에 ‘어버이의 날’로 바뀌었지만, 자식에 대한 그 절절한 마음을 이름을 바꾼다고 따라갈 수 있겠니.

수료식날 아침에 집에서 6시 30분쯤에 출발할 거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잘 챙겨서 논산으로 출발한다. 이모는 매일 출근해서 함께 못 간다. 직장 생활이 쉽지 않다. 오죽하면 자기 아들 해창이 입학식도 못 갔겠니.


엄마는 오래전부터 무슨 음식을 준비할까 고심했는데, 막상 마음은 들뜨고 분주해서 가지고 갈 음식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준한이 아줌마가 얼마 전에 면회 갔다 와서 전해준 얘기다. 쓸데없는 것 해가지 말고 고기, 치킨, 과일 그리고 달달한 것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도 리스트를 몇 번이나 넣었다 지웠다 했다가 최종 네게 가져갈 음식을 정했다. 한우 등심, 프라이드치킨, 양념 치킨, 배추 겉절이, 맑은 된장국, 과일 몇 가지, 요플레, 탄산수, 던킨 도너츠 등을 가져갈 거다. 모두들 남자아이들이 누구나 좋아할 고기면 된다고 했다. 꼭 잊지 말 것은 핸드폰이라고도 했다. 네 핸드폰은 벌써 챙겨 놓았다.


아들아, 너는 야행성 올빼미 체질이라 군대처럼 이른 시간에 잠자려면 힘들었겠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훈련의 최종 코스를 잘 마무리 져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여기면 좋겠다. 네가 입대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지? 그간의 시간이 네게는 어떻게 지나갔을까? 지금 먹은 첫 마음을 제대할 그 시간까지 잘 간직하면 보람찬 군생활이 될 것 같다.


아빠가 살아보니 삶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어느 장소, 어느 위치이건 환경을 바라보면 쉴만한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눈이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환경을 넘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바라보면 이런 고백이 가능해진다. 시편 23편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비밀을 우리 아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아빠는 아무 걱정도 없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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