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편지(2부) 30-에필로그

입영편지 끝맺음과 그 이후의 이야기

by 순례자

사랑하는 아들아


드디어 D-1이다. 너를 만나기 1미터 앞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6주를 보냈다. 오늘 아침은 세상이 온통 회색빛 아침이다. 오늘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는데 무거운 대기에 스모그와 먼지가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처음 한국을 떠나 중국 T시에 갔을 때 생각이 났다.


" 잠시 후 10분 뒤면 T시에 도착합니다. 현지 시각은 00이고 현재 온도는 00도입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십시오."


기장의 멘트 후에 만난 중국 T시의 하늘은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도시 위에 짙은 회색빛 돔이 씌어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T시의 공해가 심해서 항상 스모그와 먼지층이 하늘에 두껍게 쌓여 있다고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의 하늘 같구나.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그 세월의 추억들도 영사기처럼 지나갔다.


일기 예보를 보니 오후에 시작된 비가 늦은 밤까지 내린다고 하는구나. 비가 와서 이 먼지가 싹 씻겨나가고 맑게 개인 아침에 수료식을 하면 더 좋겠다. 맑게 갠 아침처럼 지난 6주간의 힘겨운 기억들이 자양분이 되고 잊고 싶은 일들은 말끔히 씻어 버렸으면 좋겠다.


엄마는 긴장 상태다. 아들을 볼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특별 새벽기도회 기간 중에 더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하심을 기대하고 있다. 행군은 할 만했니? 20Km는 그래도 제법 먼 거리인데, 모두가 함께 가는 길이니 그리 외롭고 고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을 것 같구나. 어린 시절부터 늘 생각이 많은 우리 아들이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구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현재의 네 모습과 앞으로의 계획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떠올렸겠구나. 언젠가 우리 아들에게 보여주었듯이 아빠는 군복무 동안 매일 묵상 노트를 쓰고, 간략하게 매일의 삶을 메모하면서 하루하루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름 군 생활을 후회없이 보냈다고 생각한다. 메모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아들에게도 추천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훈련소 편지를 쓰는 것도 오늘이 끝이구나. 수료식 전후로 모든 자료는 삭제된다고 하니, 엄마 아빠의 일상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가 사라지게 생겼구나. 아들과의 공간을 초월한 소통의 촉수 하나가 이제 서서히 시한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 기분이 묘하구나.


네게 보냈던 모든 기록들은 모두 저장해 놓았다. 모두 출력해 클리어 파일에 담았지만, 저장해 놓으면 이따금 기억날 때마다 돌이켜 읽어보고 그 시간과 추억을 회상해 볼 수 있어서 좋단다. 네가 보내준 편지도 잘 간직하고 있다. 마무리 잘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소중하게 돌아보거라.


방금 점심 먹고 왔다. 하늘이 여전히 온통 뽀얀 먼지와 이슬비로 뒤범벅이 돼 탁하기 그지없다. 오늘 같은 날은 훈련이 없기를 바란다. 소나기라도 속 시원하게 내려 탁한 하늘을 싹 씻겨 내렸으면 좋겠구나. 최근 몇 년 내 최대 가뭄이라 온 대지가 메말라 있단다. 일부지역에서는 식수조차 부족해서 물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하니 가뭄의 정도가 얼마나 극심한지 알겠다. 대지를 충분히 적실 비가 와줘야 하는데 예상 강우량도 1~5미리라니 지표도 적시지 못하겠다.


오늘 점심 주요 식단은 닭다리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치킨이다. 좋아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절제하느라 닭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네가 생각난다. 우리 아파트 뒤에 새 치킨집이 생겼다. 쌀 맞은 닭이다. 기름을 쫙 뺀 오븐 치킨에 쌀가루로 반죽을 입혀서 건강한 닭이라고 광고한다. 그래서 이번 수료식에 이 치킨을 양념, 바비큐를 각각 1마리씩 해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논산 훈련소로 출발해서 전날 치킨을 사야 한다. 페리카나는 기름이 많고, 양념을 섞으면 눅눅하고 식감이 안 좋아서 이 닭을 선택했다. 바비큐 치킨 한 마리와 양념치킨에서 양념을 따로 담아달라고 해서 펜션에서 레이지를 돌린 후에 양념을 섞을 계획이다.


등심은 좋은 고기를 엄마가 찾고 있다. 오늘 퇴근 후에 사서 생등심으로 가져가서, 소금 기름과 양념장으로 모두 먹을 수 있게 준비할 계획이다.


핸드폰은 가져가면 본인이 그 자리에서 114에 전화해서 그대로 풀고 귀대하면서 다시 잠금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가져가면 그때 네가 하거라.


오늘 네게 보낼 수 있는, 아니 훈련병 기간 중에 네게 보내는 끝 메시지가 아닐까 싶구나. 참으로 수고 많았다. 자랑스러운 나의 아들아, 내일 아침에 만나자!!


아빠가




입영편지 1부와 2부의 길고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6주의 논산 훈련소 시간이 끝났습니다. 입영편지도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프롤로그에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10여 년 전에 한국을 훌쩍 떠나서 중국과 홍콩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와의 갈등은 외국대학 진학을 고집한 것이 첫 번째 관문이었습니다. 아이를 많이 설득했습니다. 설득의 종착력은 "연 1억이 넘는 학비를 댈 능력이 아빠는 없다." 했더니 포기하더군요.


둘째 관문은 군입대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쉽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을 시간을 두고 설득했는데 거절하더군요.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군복무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게 적어도 공평하고 정의롭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들이 논리는 이렇습니다. 본인은 홍콩 영주권자이니 졸업 후에 곧바로 홍콩에 취업하면 한국에 올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외국 아이들은 졸업하자마자 취업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개발하는데 2~3년은 아주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군대를 안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학교를 간 사이에 병무청에서 날아온 입영 통지서에 '자원입대'를 표시하고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아들은 강제 입대했습니다. 그런 저의 만행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한 두통의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바로 입영편지 1, 2부입니다. 성격이 굳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들이 혹시 탈영할까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훈련을 잘 받아 모범사병이 되었고 국가관도 생겼습니다. 3개월 후에 입대라는 통지서를 받고 뺑뺑이 카츄사에 지원했다 떨어지고 다음에 육군 통역병을 지원했는데 다행히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군생활이 그나마 덜 힘들었나 봅니다. 국방 신문에 영주권자 자원입대 기고를 해서 휴가도 받았으니 저의 무모한 강제 입대가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아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제대하고 졸업해서 본인의 계획대로 홍콩에 금융회사에 취업하고 결혼도 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기막힌 은혜입니다.


한 개인의 보잘것없는 넋두리를 참고 읽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아들의 훈련소 수료식 초대장*


*자대 배치 후 병장 때 국방일보에 영주권 자원입대자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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