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의 초기에 얘기했듯 홍콩은 국제도시라는 특성이 경제적인 측면에 강하게 반영된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 환경에도 영향을 미쳐 학교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선택받지 못한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한다.
홍콩의 교육 시스템과 학교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학교는 우리의 공립학교 개념으로 학비도 싸고 교육의 질도 좋은 학교로 댜부분의 홍콩 시민이 진학한다. 홍콩인들의 현지어는 광둥어이다. 광둥어는 중국 남부, 특히 광둥성, 광시성 일부 지역과 홍콩, 마카오에서 주로 사용되는 중국어 방언이다. 150년 전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는 영어와 광둥어가 공용어였다. 중국 본토에서 약 8천만 명, 해외 화교 사회에서 약 1천만 명이 사용하며, 총 9천만 명 이상의 사용 인구를 가지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일상에서 광둥어를 쓰고, 노년층은 중국어(북경어)를 사용하며 오래전부터 공용어는 영어를 사용했다. 1997년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에는 중국어와 영어가 공용어가 됐다.
재미있는 것은 현지에 오래 산 주로 금융 전문 직업을 가진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자기 자녀를 현지 일반 초등학교에 일정 기간 보내서 광둥어를 배우게 한다. 그러고 나서 70여 개의 국제학교나 70여 개의 사립학교에 보내서 영국학제에 의한 교육을 받게 한다.
이런 치열한 틈바구니에서 홍콩한국국제학교도 살아남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한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교육 문제와는 동떨어진 학교 운영권에 관한 문제로 서로 다른 두 주체 간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 신문지상에 많이 보도됐듯이 한국정부와 홍콩한인회 사이에서 누가 학교의 운영권을 갖느냐를 두고 오랜 갈등과 분쟁을 보이고 있다.
한국정부나 현지 한인회의 논쟁은 법정에 까지 옮겨갔고 여론들도 연일 기사를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3 담임으로 또한 교무부장으로서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어느 편에 서서 어떤 쪽이든 두둔할 생각이 없다. 난 교사로서 학생의 교육과 진로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른들의 이권 싸움에 학교와 학생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아래 글은 당시 한국의 중앙 일간지 홍콩 특파원이 홍콩한국국제학교의 운영진이 학교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학교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 기사를 한국 신문에 게재한 일에 대해 내가 반박 기사를 실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한국대학은 각 나라에 흩어진 한국학교들의 학사행정과 교육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각 학교를 평가한다. 신뢰를 잃으면 입시는 망하는 것이다. 홍콩 모 특파원의 이 기사가 나간 뒤에 평소 친분이 있던 몇 개 대학의 입학처 담당자들의 연락을 받았다.
"홍콩한국학교 괜찮은 가요? 학사행정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아래와 같은 기사를 현지 한인 신문에 기고했다. 물론 이 기사가 나가자마자 곧바로 해당 기자는 신랄한 반박 기사를 썼고, 홍콩 교민 사회는 한동안 두 편으로 갈라져 벌집을 건드려 놓은 듯 시끄러웠다.
홍콩 한국학교에 관한 기사를 읽고
얼마 전, 한국의 모 일간지에서 '홍콩한국학교 비리 망신'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소위 '비리' 문제를 지적하면서 '학생들의 미래의 꿈'을 걱정하는 듯한 어조로 끝맺었다. 그런데, 왜 그의 글에선 피 냄새가 날까? 불의에 분노하고 학생과 학교를 걱정하는 지식인의 따뜻한 배려보다는 연적의 얼굴을 그려 놓고 바늘로 찔러대는 독부의 옹졸한 악의만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편견일까?
기자가 지적하는 '비리'문제를 두둔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다. 그의 펜 끝이 불의를 파헤치는 날 선 검이 돼서 왜곡된 현실을 사정없이 도려내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한다면야 박수를 칠 일이다. 불의를 저지른 사람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예외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런데, 0 기자가 들춰낸 소위 '비리'가 사실일지라도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위장한 '창작'과 '예측'이 그의 기사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늘, 언론의 공정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기사 작성자의 태도에 달렸다. 기자는 분명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진실에 스스로 몰입한 나머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 태도를 잊는 경우가 종종 있다. 0 기자의 글에서 난 그 점을 지적하고 싶다.
0 기자는 그의 기사 첫 단락에서 재단 관계자의 공금 유용혐의를 지적하면서 한 학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위해 당장 학교를 옮길 생각이라는 인용을 덧 붙였다. 짚고 넘어가자. 이 기사는 '00.1.19. 새벽 4:38분에 최초 입력된 것으로 돼 있다. 내가 기사를 열람한 시간이 오전 9시이고 우리는 처음으로 이 소식을 기자를 통해서 알았다. 어떤 학부형이 그 기사에 그렇게 빠르게 반응해서 기자에게 "학교를 떠날 결심"을 전달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는 자신이 마치 특종처럼 터뜨린 이 사건을 홍콩 교민 사회가 다 알고 술렁이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
또한 0 기자는 그의 기사 둘째 단락에서 학교가 문을 닫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끝맺었다. 그의 논조는 계속해서, "홍콩 사회에서 이렇게 10년이 넘게 버텨왔다.", "~피해는 KIS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물론, 각 단락의 전반부에서 그가 지적한 문제들은 관계 기관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정당하게 처리할 문제이다.
그런데 위에서 지적했듯이, 그의 논지에는 학교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 없다. 학교가 자정 과정을 거쳐서 새롭고 건실하게 관리되기를 소망하는 순수한 기대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펜 끝은 환부를 도려내고 생명을 살리려는 의사의 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집요하게 "학교가 문을 안 닫는 것이 이상하다"는 논지에 집약돼 있다. 그래서 그의 펜 끝에서는 망나니의 칼끝에서나 풍기는 피 냄새가 난다.
그에게 묻고 싶다. 그의 말대로 홍콩한국국제학교(KIS)의 400여 명의 학생들의 미래가 걱정되는가? 만일 추호라도 그런 지식인적 양심이 있다면 '비리'만을 지적하고 그 객관적 자료를 공개해서 독자가 판단하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혹시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믿고 자신이 모두 정리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계몽주의적 지식인의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이 기사는 신문 본연의 공정성을 벗어나서 홍콩 교민과 모든 신문 독자의 정당한 알 권리를 왜곡한 오만한 자기감정의 표출이다. 같은 날 같은 사안을 다룬 M신문은 해당자의 혐의 사실뿐 아니라 항변도 나란히 실었을 뿐 아니라, 학교와 학생 자체에 대한 감정적 추측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도 극명한 대조가 된다. 0 기자의 기사는 작성자가 해당 사안에 대해 무지하거나 의도적이며 보복적인 심사가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나타나는 결과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선택적 효과'라는 말이 있다. 개인은 미디어 메시지에 선택적으로 노출되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며, 선택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가'의 메시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그것의 부정적인 면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특정 사안에 대한 신문의 편중된 기사는 대상자를 곤궁에 빠뜨릴 뿐 아니라, 결국은 언론의 공정성마저 훼손할 수 있다,
0 기자가, 한국과 홍콩이라는 공간적 거리로 인해, 확인할 수 없다는 맹점을 이용해서 홍콩의 소식을 과장되게 보도한 부정적 이미지의 피해는 그의 말대로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국제학교의 입학생 유치와 대학입학은 학교의 명예와 신뢰도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본교는 그동안 주목할 만한 입시 성적과 함께 현지 교민과 주재원 자녀, 16개국에 가까운 외국인 자녀들의 한국어와 외국어 교육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그런데 이 일로 초중등 10회 전후의 졸업생의 마음을 무겁게 했고, 대학입시를 수개월 앞둔 수험생과 부모, 교사들은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또한, 곧 있을 새 학기의 신입생 유치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다시 한번 기자의 지식인적 양심에 호소해 본다. 뒤늦게나마 언론인의 본질적 사명감을 회복하고 홍콩한국학교의 400여 어린 눈망울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기대해 본다.
다시금 본연의 학교 업무로 돌아가서, 본 학년도 대학 입학 진학 상황을 알려야 하는 어깨가 무겁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