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이민국의 조사 분위기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편안한 상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조사관은 밝고 명쾌하고 자상한 여성이었고 약 6시간의 조사 동안 나의 상태를 여러 번 물었다.
" Mr 0, 계속 조사를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우리가 불편함을 줬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얘기하세요. 잠시 쉬었다 할까요? 이 조사는 약 6시간 정도 걸립니다. 오후 7시 30분에 끝날 예정입니다. 전화가 필요하면 전화하고 오셔도 됩니다."
하지만 편안한 분위기와 말투와 배려와는 달리 조사 항목은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부터 가족에 관해서 시작해서 취업을 하게 된 계기와 자격 요건에 대한 상세히 질문했다. 현재 홍콩한국국제학교에서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이 학교에 왜 필요한지를 하나씩 하나씩 상세하게 묻고 기록했다. 길고 지루하고 긴장된 시간이 지났고 다소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천정의 형광등 불빛이 좁은 방안을 희뿌옇게 비치고 웅웅 소리를 내는듯했다.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 사건에 대해서 하나씩 되짚어봤다.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됐을까?
문득 선명한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래 그거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선명하게 스쳐갔다. 우리 가족이 홍콩에 도착한 첫날 행정실장의 안내로 홍콩에서 살 집에 들어갔다. 행정실장은
"0 선생님 짐을 내려놓으시고 우리 저녁 먹읍시다. 30분 뒤에 이 앞에 건물의 1층에서 만납시다. 내가 맛있는 집을 한 곳 소개할게요."
" 네 실장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우리 가족이 가진 짐이라고 해야 트렁크 3개뿐이었다. 책과 나머지 짐도 적었지만, 약 1달 뒤 배로 오기로 했다. 홍콩의 집은 이미 모든 가전제품과 가구가 다 갖춰 있어서 몸 만들어와서 살면 된다. 우린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있고 약속 장소로 갔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행정실장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대머리만 아니면 최민수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짙은 눈썹과 큰 눈,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자~. 우리 3층으로 갑시다. 일식집인데 초밥이나 덧밥이 맛있어요. 가격도 괜찮고요. 좋아하시지요?"
"물론이지요. 수고 많으셨으니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맛있는 것 많이 시키세요."
"무슨 말씀을요. 그래도 제가 명색이 행정실장인데 홍콩에 오신 첫날 간단한 저녁 정도는 사야지요."
시원시원한 성격에 말이 빠르고 유쾌한 행정실장 덕분에 이렇게 시작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더 편안해졌다. 그가 살아온 이력과 이 학교의 행정실장을 맡게 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대학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그는 나를 '후배님'으로 불렀다. 싫지 않았다. 낯선 이 땅에 든든한 후원자 하나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자, 이제 홍콩 살이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이것 받으세요."
그는 흰색 학교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겉 봉투에는 몇 개의 계산식을 볼펜으로 쓱쓱 적어 놓았고 얼마의 돈이 적힌 것을 내게 보여 주었다.
" 후배님, 이것 말이지요. 학교에서 이번에 오신 선생님들에게 대여하는 홍콩 달라 5만 불입니다. 두 달 치 보증금, 그리고 한 달 치 월세에 부동산 비, 계약서 인지대 등을 쓰고 남은 돈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
봉투를 탁자 위로 내 앞에 쓱 밀었다.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이미 중국에서 1년 가까이 살고 온지라 동일한 방식의 임대 절차를 잘 알고 있었다. 적어놓은 숫자도 눈에 잘 들어왔다. 그런데 지출 항목을 눈으로 몇 번을 확인하고 돈을 계산해도 이해할 수 없는 항목이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장님,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가족 비자 발급비와 인지대, 비자발급 여행비는 학교에서 지불하기로 계약서에 작성되어 있지 않았나요?"
그는 말을 더듬으며 서둘러 말을 추슬렀다.
"아하~! 그렇지 내가 왜 이렇게 기록했지. 내가 한국에서 오신 선생님들은 처음이라 정신이 없었네. 가만있어 그러면 얼마를 되돌려 드려야 되나? 잠시 기다려 보세요."
"각 집마다 사정이 다르니 다른 선생님에게는 제가 직접 말할 테니 아무 말씀 말고 계세요. 아셨지요?"
그는 지갑에서 5천 홍콩불 세어 흰 봉투에 넣고는 내 앞으로 밀어 놓으며 당부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서 그 자리를 떠났다. 행정실은 학교 교문 입구 1층에 있다. 행정실장은 걸음이 빠르고 활동적인 사람이라 늘 학교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날 뒤로 그는 나를 가급적 마주치지 하지 않았다. 멀리서 그가 보이듯 했는데 가다보면 그는 다른 길목으로 돌아서 갔다.
그즈음에 행정실장에게는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여러 소문이 떠 돌았고 그는 더 이상 행정실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얼마 후에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올해 초에 행정실장이 1년마다 재계약하는 학교 청소 용역 업체 선정에 개입해서 뒷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었다. 사전에 모의한 A 업체의 사장에게 제법 큰돈을 빌리고 그 업체를 선정했다. 그리고 돈을 갚지 않았다고 A업체의 사장이 사적인 회식 자리에서 그 사실을 떠들고 다녔다. 그 얘기는 함께 입찰에 참가 했던, 경쟁 B와 C업체에 들어갔다. 두 업체가 ICAC에 고발했다고 한다.
ICAC는 홍콩의 반부패 초월적 기구로 염정공서 (廉政公署, ICAC)라고 한다. 염정공서는 홍콩 특별 행정구 정부의 독립적인 반부패 기구로, 부패 행위를 수사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이다. 이 기구는 홍콩 행정장관 직속으로 운영되며, 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고가 들어간 올해 초부터 약 6개월간 수사를 하다가 혐의점이 확실하게 입증된 후에 지난주에 행정실에 컴퓨터를 압수, 수색한 후에 최종 구속을 하게 됐다고 한다. 지인들에 말에 의하면 행정실장은 몇 개월 간 구속된 후에 한국으로 추방됐었다고 했다.
물론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니니 알 수 없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일은 그날 이후 행정실장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행정실장이 비자 문제로 내게 행한 일이 실수라고 보기에는 납득할 수 없었다.
여러가지 얘기를 들은 후에 추론은 이렇다. 한국에서 온 3명의 선생님들은 행정실장이 학교 대여금으로 지출하고 남은 돈이라고 최종으로 내어준 돈의 세부 항목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고 그냥 받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해외에 처음 근무한 것이고 이런 일련의 계산 방식을 처음 대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1년 살아 본 나는 해외 정착에 필요한 경비와 집 계약 방식과 지출항목에 대해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검토할 수 있었다. 결국 행정실장의 심기를 건드려 보복을 받게 된 것이다. 취업비자를 고의적 누락해서 내가 불법 취업으로 조사를 받으며 곤욕을 치르다가 추방되게 만들려는 했다는 것이 나의 최종 결론이다. 사람이 타인에게 그렇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한국에서 온 교사 4명과 15명의 가족 모두의 취업비자와 동반비자 서류는 함께 접수되고 처리돼야 하기 때문에 누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은 차후에 재무 담당자인 홍콩 직원에게 확인할 수 있었다. 비자 접수비와 인지대 등을 지출한 그에 말에 의하면 총 15명의 가족 중에서 우리 가족 3명을 빼고 비자 발급 절차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홍콩 직원이 3명이 빠졌다고 하자, 그쪽은 서류가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준비되는 대로 자기가 따로 진행하겠다고 했단다.
행정실장은 대학 동문 선배였고, 나를 후배님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홍콩에 도착한 첫날 5가정 15명 중에서 우리 가족을 선택해서 직접 안내하고 저녁을 사준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를 가장 힘겨운 상황에 몰아넣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고작 홍콩 달라 5천 불의 출처를 따진 것이 그를 그토록 분노하게 했을까? 아니면 정말 실수였을까? 여전히 궁금한 일이지만 정작 자신은 다른 일로 구속돼 있었고, 얼마 후에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집 떠나면 누구도 믿지 말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존적인 말의 의미를 처음으로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내일 오후에 다시 홍콩이민부 조사과에 출두해서 진술해야 한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