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 18화

by 순례자

작년 10월 중국의 국경절 연휴 여행동안에 마지막 여행지였던 홍콩에서의 추억이 좋았다. 맑고 깨끗한 날씨, 푸른 바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 맛있는 음식들이 2박 3일 동안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람들의 분위기와 함께 타인에 대한 세련된 배려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길거리나 엘리베이터에서 약간 스치기만 해도 'sorry 나 Excuse me"라고 하며 미소를 보였고, 앞서 가는 사람이 문을 잡아 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홍콩을 떠났다.


그런데 채 2달도 지나지 않아서 예상치 못했던 사건의 틈바구니에 끼여 몇 개월을 고생하다가 뭔가 크고 높은 분의 힘에 의해 중국 T시를 떠나 홍콩으로 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홍콩한국국제학교에 와서 근무하게 된 것은 기적이다.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 홍콩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약 5개월이 지났다. 고3 담임으로 학생들 교과 지도, 논술, 상담 그리고 원서작성 등을 하면서 그 기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지금은 학생들이 한국대학 수시 준비를 위해 모두 한국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난 텅 빈 교실에 들어와서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변가 도로 위에는 걷거나 뛰는 사람들, 바다 위에는 배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평화로운 오후 시간이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잠시 넋을 놓고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행정실에서 나를 찾았다. 행정실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하참!~.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선생님, 아니 후배님 내가 실수를 했어요. 어떻게든 이 일을 수습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하~참!"


"실장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선생님의 취업비자 문제예요. 홍콩이민국에서 선생님의 취업비자에 문제가 생겼다고 출석 요청을 했어요."


"무슨 말씀인지? 이미 취업비자 취득이 완료되어서 근무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하참!,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이민국에서 우리 후배님 취업비자에 문제가 있다고 연락이 와서 내 책상 서랍을 뒤져 봤지요. 국제부과정 교사들이 10명 가까이 오는 바람에 서류가 너무 많았어요. 내가 신청 서류를 모두 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선생님 것만 책상 서랍 뒤로 넘어 가있지 뭐예요. 결국 내 실수로 선생님 취업비자 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했어요. 내가 그때 너무 빴어요. 미안합니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게요."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서류는 교육부의 휴직교사 서류와 연관돼서 적지 않은 분량이다. 4명이 함께 왔고 한 패키지로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나만 누락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홍콩에서 취업비자 없이 일을 한 사람과 고용주에게 얼마나 엄격한 처벌을 내리는지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속-벌금-추방'의 수순이었다. 홍콩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타입의 비자 중에 하나를 취득해야 한다. 내게 해당되는 비자는 General Employment Policy (GEP)이다. 홍콩에서 일반적인 비자 신청 형태이며, 취업 회사를 스폰서로서 신청할 수 있는 비자이다. 신청자의 과거 경력, 자격이나 현지에서 유용한 인재인지 여부, 기업이 스폰서로서의 조건에 충분한지 등의 심사를 거쳐서 받게 된다.


따라서 홍콩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려면 취업 비자(Employment Visa)가 필요하다. 워킹 비자 없이 홍콩에서 일하는 것은 체류 자격 위반에 해당하며, 이민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된다. 위반 시 취업자와 고용주 모두 최대 50,000 홍콩 달러(약 850만 원)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취업자는 이후에 강제 추방되고 다시 홍콩에 입국하지 못한다.


홍콩에서 불법 취업자를 조사하고 단속하는 부서는 홍콩 이민부 (Immigration Department) 산하의 조사과 (Investigation Division)다. 행정실장을 만난 며칠 후, 이 부서로부터 출석 통보서를 받았다. 이들은 출입국 관리와 불법 취업 단속을 담당하며, 필요에 따라 경찰과 협력하여 불법 취업자를 검거하고 관련 법규 위반자를 처벌한다.


홍콩한국국제학교 이사장을 먼저 만났다. 행정 실장의 실수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을 사과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홍콩한인회 법률 자문 변호사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나는 학교를 나와서 그를 만나러 갔다. 시몬스 앤 시몬스(Simmons & Simmons) 000 변호사라고 쓰여 있는 명함을 들고 센추럴의 빌딩으로 갔다. 센추럴 시내와 숲이 사방으로 보이는 고층 건물의 멋진 뷰를 보면서 도서실로 안내받아 앉아 있었다.


" 0 선생님 제가 000 변호사입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상황은 이미 설명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만, 내일 이민국에 가면 상황을 사실대로 잘 설명해야 합니다."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잘 설명하는 것일까요?"

" 학교의 행정 처리 실수라고 분명히 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모든 처벌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행정실에서 안내한 비자 취득 절차와 선생님 취업비자 서류를 누락하게 된 상황을 있는 대로 설명하십시오. 꽤 긴 시간 조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통역은 신청하셨나요? 일단 출석하셔서 그쪽 얘기를 들어보시지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홍콩 이민부 (Immigration Department) 산하의 조사과 (Investigation Division)에 출석했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내고 모든 소지품을 바구니에 넣고 명찰을 달았다. 긴 복도의 양쪽으로 마주 보는 문들을 지나갔다. 반 투명한 유리 벽 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한 방으로 안내돼서 들어갔다. 4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 한 명과 30대 정도의 여자 한 명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Mr 000 맞나요?"

"네"

" 점심은 먹었나요? 먼저 커피 한 잔 하고 시작하지요."


이미 점심시간은 지난 시간이었다. 여자가 커피의 종류를 선택해도 좋다고 메뉴판을 내밀었다. 나는 라테를 가리켰다. 작은 방 가운데 책상을 사이에 두고 내 앞에 두 명의 조사관이 앉아 있었다. 커피가 방에 들어오고 나서 여자가 먼저 말했다.


" 오늘 조사는 Mr 0이 취업비자 없이 지난 5개월간 일한 사안으로 열린 것입니다. 저는 Mr 0의 불법 취업, 불법체류 등 이민법 위반 행위에 대해 조사할 것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묻는 말에 답변하십시오. 모든 질문과 답변은 여기에 기록하고 나서 Mr 0에게 보여주고 이상이 없으면 사인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것입니다."


그들은 정중했고 미소를 띤 얼굴로 편안하게 조사를 시작했다. 1시 30분에 시작된 조사는 중간에 10분씩 3번 정도 쉬고 저녁 7시 30분까지 계속됐다. 그들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홍콩에 도착한 지난 2월 17일 시점 전후로부터 질문을 시작했다. 내가 홍콩에 오게 된 이유부터 물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서류는 이미 서류철에 가지고 있었다. 여자가 하나씩 질문을 하면 남자가 타이핑을 했다. 이어서 내가 답변하면 그것을 적었다. 그렇게 A4용지의 한 페이지가 채워지면 내게 내밀어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모든 페이지에 어떤 강요나 억압이 없었다는 문구에 사인을 했다. 여자는 천천히 혹은 반복해서 질문을 했다.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3시간쯤 되었을 때


"영어를 알아듣고 답하는 일이 내게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집중력이 떨어져서 더 힘이 듭니다. 영어 통역을 사용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우리 이민국에서 위촉한 한국인 통역사가 있습니다. 미리 신청했으면 통역을 이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음 두 번째 조사가 있을 겁니다. 그때 통역 신청을 하겠습니까? 물론 비용은 내지 않습니다. 오늘 조사가 끝나면 Mr 0이 모든 서류를 읽어보고 최종 사인을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의도와 다른 내용이 들어 가 있다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네 신청하겠습니다."

1차 조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더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홍콩의 취업 법규를 위반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상황을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고의적이나 악의적인 위반이 아닙니다. 이것은 학교의 행정실에서 사무 행정 실수로 벌어진 일이란 것을 꼭 참작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가 말했다.


"Mr 0, 오늘 1차 조사를 통해서 당신의 상황을 잘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규 위반 시 무지에 의한 사유는 법적으로는 참작되지 않습니다. 홍콩 쥐업 법은 모든 사람이 법을 알고 준수해야 한다고 가정하며, 무지나 부주의는 법적으로 정당한 변명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다음 2차 조사는 이틀 뒤 같은 시간입니다. 그때는 한국인 통역이 올 것입니다. 긴 시간 수고 많았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나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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