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 사회의 일류 지상주의, 대학의 서열화에 매몰된 교육 현장의 비정상적인 모습이 싫어서 한국을 탈출했다. 그런데 이곳 홍콩에서 나는 일류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실에 화가 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이유가 뭘까?
특례가 가진 특성 때문은 아닐까? 특례입학을 줄여 특례라고 하지만 입학전형의 유형은 재외국민특별전형이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다. 해외 주재원으로 재직하거나,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또는 연구원의 자녀가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 차례 수정을 거듭하며 현재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의 자녀들로 확대되었다.
이 전형은 해외에서 일정기간 이상 거주하며 교육과정을 이수한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전교육과정을 해외에서 이수한 12년 특례와 중고교과정 해외이수자인 3년 특례로 구분된다. 각 전형별로 부모의 해외 체류 조건과 학생의 해외교육과정 이수 기간 등 구체적인 자격요건이 상당히 복잡하다.
국내 대부분의 대학에서 특례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3년 특례는 각대학의 전형별 2% 이내의 숫자만 선발한다. 고교과정 1년을 포함해 중고교과정 3개 학년 이상 수학한 학생이 자격을 갖는다. 최상위 대학의 경쟁률은 평균 10:1~40:1 정도이다.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는 한국의 수시에 버금갈 만큼 치열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최상위권 대학이 아닌 일반 수도권 대학이나 거점국립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대한민국의 일반 수험생 보다 훨씬 수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면 12년 특례는 선발 숫자가 제한되지 않는다. 대부분 서류 100% 또는 면접 100%이다. 의예과, 한의예과, 약학과와 같은 특수학과는 지필과 면접 또는 서류와 면접이 모두 반영되거나 서류, 면접, 지필 전부 요구하기도 한다.
전교육과정해외이수자는 사실 성적이 좋지 못해도 서울권 상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지원자가 서강, 성대, 한대를 적정, 중앙, 경희, 외대, 시립대를 하향으로 잡고 원서를 접수하고 쉽게 합격하는 경향이 있다.
특례입시는 대한민국의 일반 수험생과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고교과정해외이수자 전형의 경우 모집인원이 매우 적고 인서울대학교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그나마 반론이 가능하지만, 전교육과정해외이수자 전형은 여전히 논란이 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례입시가 유지되는 이유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외교관, 주재원, 연구원, 국제기구 종사자 그리고 재외국민들은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해외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들의 자녀가 해외학교에서 공부한 수학능력을 바탕으로 한국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보다 사회, 경제적 수준이 높은 해외 국가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은 국가 발전에 긍정적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자. 그런데 나는 이 현실에 화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열정적으로 일했다. 중국의 T시에서도 그랬지만, 홍콩한국국제학교의 교실 상황은 한국과 달랐다.
학생들끼리 서로 공부를 돌봐주고 협력하고 사이가 좋았다. 시험에 대한 부담을 갖는 것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점수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을 보이지 않았다. 누구나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실력과 적성에 맞는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래서 학교 분위기는 언제나 즐거웠다.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공부가 학생들을 평가하고 서열을 세우는 기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특례입시를 담당한 교사로서 책임은 적지 않았다. 전문가가 돼야 했다. 특례입시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야 홍콩 한인사회에서 한국국제학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최상위 대학에 합격시키고 결과를 공유하는 일은 중요했다.
다행히 첫 해에 괄목할 만한 입시 결과를 얻었다. 8월 초에 20여 명 전원이 합격했다. 서울대 의대에 2명 법대에 1명을 포함해서 대부분이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홍콩 한인 사회가 술렁였다.
내가 고3 담임이었지만, 사실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다. 내가 2월 17일에 와서 수업을 시작했지만, 특례입시는 매년 7월 초부터 원서를 접수하고 8월 초면 합격자 발표를 하고 9월 초까지 충원발표를 하면 모든 입시가 끝난다. 그러니까 내가 이 학교에 와서 학생을 가르친 기간은 고작 몇 개월이다.
학생들은 고등학교 1, 2학년 때 이미 충분한 학습 능력을 갖춘 것이다. 그동안 이곳의 선생님들이 잘 가르친 것이다. 거기에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이 힘을 더했을 뿐이다.
당시에 홍콩 한인 신문에 나는 아래와 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홍콩한국국제학교, 0000학년도
서울대 수시 법대와 의대에 합격
"특례 입시의 명문으로 더 많은 결실을 거둘 것 임"
0000년 8월 31일, 서울대 특례입시 수시 최종합격자 발표에서 한국국제학교(KIS) 고등부 3학년 000과 000이 서울대 의대에, 000이 서울대 법대에 나란히 합격했다.
예년 보다 1개월이 빠른 7월에 원서 접수를 시작한 서울대 입시는 세계 모든 특례 입시생의 첫 수험장이며,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위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한국국제학교의 특례입시 첫 시작을 멋지게 장식했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또한 한국국제학교에 와서 공부하며 다음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기대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어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특례 입시는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특례입시는 서류평가 반영과 각 대학마다 각기 다른 입시 유형, 해마다 바뀌는 입시 제도의 변화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들을 힘겹게 하고 있다. 한국 수험생 못지않은 전쟁터와도 같은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특례입시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수험장에 앉는 그 순간까지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끊임없이 의논하며 수학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일반입시보다 전문가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
한국국제학교가 특례입시에서 매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국국제학교는 특례입시 체제의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실력을 쌓도록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 주요 과목의 분반 수업을 실시하고, 철저한 수업관리와 매주 과목별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한다.
특례입시의 몇 가지 중요 사항을 짚고 넘어가 보자. 특례입시에서 성적과 다름없이 중요한 것은 서류평가이다. 서류평가를 전형요소로 반영하는 주요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그리고 포항공대, KAIST 등이다.
서울대를 예로 들면, 0000학년도 서울대에서 발표한 서류평가 항목은 ① 고등학교 전교과과정 성적증명서 ② 고등학교 기간 중 각종 시험성적, 수상 등 우수성 입증자료로 요약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외국학교 성적은 지역에 따라 학교 Level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③ 출신고등학교 소개 자료(School Profile)를 제출해야만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물론 소개 자료에는 출신고등학교의 교육과정 및 심화과정 제공여부, 재학생 수, 재학생 교내성적분포, 재학생 표준시험성적 평균 및 분포, 출신학교 입학방법(선발/배정/선택 등), 재학생 대학진학률 및 진학현황 등이 기재되어야 한다.
결국 서울대 서류평가 기준은 미국 IVY LEAGUE에 입학할 정도로 외국고교과정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유리하게 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국제학교가 서울대의 최상위 학과에 연속 진학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대학에서 우리 학교의 고교과정 이수 능력을 인정할 뿐 아니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국제학교에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유지하는 것이 곧 서울의 명문대 진학의 충분한 조건으로 인정받는 자격증이 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할 사항은, 비영어권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전년도까지는 영어를 전혀 못해도 합격한 사례가 많았으나, 0000학년도부터는 반드시 TEPS, TOEFL, TOEIC 등 영어능력시험 성적표를 제출하여야 하므로 이 또한 대비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해외에서 오랜 기간 공부한 학생은 대학에 입학한 후 대학수학능력이 충분하다는 한국어능력 우수성입증자료(KPT, KLPT)를 제출하면 참조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서울대는 서류평가 부분이 오히려 지필고사보다 중요하며, 제출해야 할 서류목록도 매우 많고 복잡하다.
한국국제학교에서는 특례입시의 오랜 경험을 가진 교사진이 서류전형에 필요한 각종 항목들을 재학 중에 갖추도록 독려하나다. 2학년 2학기에는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등의 개인적 서류의 형식을 1차적으로 완성하도록 함으로써 3학년에는 목표를 확고히 정하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국제학교는 또한 수준별 정규 수업과 각종 특기적성수업으로 수학과 영어, 국어 그리고 논술 등의 개별지도를 통해서 특례입시를 위한 최고의 수준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KIS 재학생이 입시 준비를 위해 서울의 특례 입시 학원에서 공부할 때, 전 세계에서 모인 특례생들 가운데에서 최상위의 성적을 유지했던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특례에 관한 한 한국국제학교와 상담하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특례입시의 즐거운 합격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올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