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꽃
차가운 비 뿌리는 새벽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
암갈색 박토를 품은
동백꽃이 졸고있네
노동자의 팔뚝처럼
힘줄 선 억센 줄기
목마름으로 불거진 뿌리
굴곡진 삶의 옹이들
숨 가쁜 삶의 여정을 듣는다.
고단한 신발 벗고 곁에 앉으니
선운사 청아한 범종 소리
긴 여운 남기고
붉은 꽃 하나 눈물처럼
뚝하고 발아래 뒹구네
잿빛 장삼 자락 펄럭이며
황토 마당 가로지르는
한 무리 동자승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붉은 꽃 속에 바스러지고
나는 가슴이 저린다.
돌아보면 가슴 아린 절망의 그늘에서
어떤 것은 썩어 바닥에 뒹굴고
또 어떤 것은 생명을
잉태하지 않았던가
새벽 까치 우는 동백꽃 숲에서
지난날의 슬픈 여정을
설레던 기대를 생각하네
하나 남은 사랑처럼
동백꽃이 눈물보다 빨리
뚝하고 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