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문대출신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부모님과 사이도 좋았던 B. 그런 그가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한국에서 잘 지내던 그에게도 미국에서의 시간은 특별했다. 미국이란 곳이 유달리 자유롭고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힘이 넘쳤고 더 많은 걸 시도할 수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B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살던 익숙한 집에 들어갔는데 억압된 느낌을 받은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억압된 느낌의 근원은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었다. 지금껏 그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왔다. 그게 곧 자신을 위하는 삶이라 믿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계속 신고 있으면 불편함은 익숙해져 간다. 그러나 신발을 벗는 순간, 잊고 있던 불편함을 깨닫게 된다. 부모님이 안 계셨던 미국에서의 자유로움과 편안함, 그것들이 사랑과 관심의 울타리 안에서의 불편함을 일깨워준 거였다. 부모님의 울타리는 안전했지만, 족쇄처럼 답답했다.
B는 진짜 자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만들어가고 싶은 인생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비로소 자신의 욕구와 소망에 주목하기 시작한 거다.이제 그는 부모님의 기대에 언제나 부응하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주체적으로 인생을 꾸려나가려 한다.
잔잔한 수면 아래에 해일이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거친 파도 아래 물길이 고요하기도 하다.
B가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갈수록 그의 가정은 파도가 일며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마음속은 오히려 잔잔하고 편안해졌다. 부모님은 달라진 B의 모습에 처음에는 당황하신 듯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욕구와 소망을 인정해 주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B의 가정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목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