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of Road

여행 끝

by SUKAVIA


다소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짐을 챙긴다. 아침 일찍 아파트 주인을 깨우기가 미안해 감사의 메시지를 적은 쪽지와 열쇠를 아파트 우편함에 두고 집을 나선다.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구시가지 북쪽의 성 마르코 대성당 부근 정류장(케이블카 사무소 앞)으로 이동했다. 버스 출발 시각이 다가오면서 몇몇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어둠이 거칠 무렵, 미니밴 한 대가 정류소 앞에 멈춰 서더니, 공항까지 저렴한 가격에 태워다 준다는 제의를 한다. 흔쾌히 받아 드린다. 사실 여행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항 드롭 서비스인데, 공항버스가 도착하기 10분 전 여행자들을 먼저 싣고 가는 것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지만, 흥정해야 하는 귀찮음이 생기곤 한다. 난생처음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두브로브니크 공항으로 출발. 한 마디의 대화도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일정은 두브로브니크에서 국내선을 타고 자그레브로 이동해서 도시 구경을 마친 뒤, 다시 이스탄불로 국제선을 타고 돌아가는 것이다. 연착과 잦은 취소로 명성이 높은 크로아티아 국내선이라 하루 정도 여유를 두고 일정을 조율했다. 국내선이라 별다른 절차 없이 빠르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을 기다렸다. 말로만 듣던 불행은 나를 피해 가는 듯했지만, 탑승이 시작될 무렵 짤막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자그레브에 내리는 폭설로 인해 항공이 연기된다는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결국 06:30분 자그레브행 비행기는 취소됐다. 다음 비행기까지 다소 여유 시간이 있긴 했지만 오늘 안에 비행기가 다시 뜰지는 의문이다. 두 시간가량의 대기 끝에 08:30분 발 자그레브행 비행기가 또다시 취소. 오전 비행기가 취소되면서 일정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텅 빈 공항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미 검색대를 통과한 짐들을 되찾아 다시 붙여야 한다는 것. 크로아티아 항공사는 대체 항공편이 마련되지 전까지 샌드위치와 음료 하나씩을 승객에게 제공했다. 자그레브를 거쳐 이스탄불로 들어가려던 계획은 독일 뮌헨을 거쳐 들어가는 경로로 변경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루, 이틀 여유 있게 일정을 짠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경유 노선을 이용하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한국 여행자들의 완전히 일정이 꼬여버렸다. 공항 직원의 도움으로 짐을 다시 뮌헨 행으로 부친 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장으로 이동했다. 공항 직원은 두브로브니크 출국 도장 쾅쾅 찍었고 나는 자그레브가 아닌 뮌헨을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예상치 못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크로아티아 여행은 반쪽뿐인 퍼즐이 되고 말았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아드리아 해를 배경으로 뜨거운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기며 분위기 있게 와인 한 잔을 들이켜고 싶었지만 하루가 멀다고 내리는 비와 추워진 날씨에 때문에 감기와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고, 도시 전체를 두른 크라밧(Cravat)도, 하트 모양의 갈레슨챠크(Galesnjak)섬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인파가 몰리지 않는 비수기에 찾은 탓에 모든 관광지를 독점할 수 있었고 한가하고 여유롭게 크로아티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르겠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드리아 해를 둘러싼 아름다운 도시와 자연경관, 문화유산을 둘러보겠다는 생각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아드리아 해. ⓒ Photo by SUKAVIA


비록 반밖에 볼 수 없어 아쉬운 여행이었지만 그렇기에 다시 한번 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두 번째 크로아티아 여행을 떠나야 할 나름의 핑계가 생긴 셈이다. 나머지 반쪽짜리 퍼즐 맞추고 싶어 진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듯, 크로아티아에 취해 보냈던 일련의 시간이 요즘 들어 자꾸만 떠오른다. 유난히도 추웠던 크로아티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크로아티아는 유럽연합(EU)의 28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이제는 쿠나가 아닌 유로를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 크로아티아는 내게 낯선 곳이 아닌 너무나 익숙한 곳이다. 골목골목의 풍경과 진한 커피 향기, 매일 밤 울어대던 고양이의 모습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크로아티아에 몇 개의 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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