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리고 (1)

기억의 작용

by 한혜경



기억의 작용



'사과'라는 단어에서 당신은 무엇을 연상하는가?


탐스런 빨간 모양, 매끄러우면서도 단단한 촉감,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안에 가득 퍼지는 달콤 새콤한 맛,

또는 사과를 가를 때 나는 경쾌한 소리….


사과에 대한 뇌의 기억작용을 다룬 동영상을 보니 사과를 인식하는 뇌의 작동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사과라는 이름은 뇌의 두정엽에 저장되고 색과 모양은 후두엽에 저장된다.

달콤한 맛은 뇌섬엽에, 사과를 반으로 가를 때 쩍 갈라지는 소리는 측두엽에 저장된다고 한다.

이처럼 뇌 속의 다양한 장소에 각각 저장된 정보가 모여 이루는 것을 우리는 기억이라고 부른다.


뇌에 들어온 기억이 잠시 머무는 기관이 있다.

해마라고 하는 이것은 기억의 중요성을 판단해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기고 다시 불러내는 기억재생기관이다. 해마는 나이가 들수록 퇴화하고 뇌질환으로 손상되기가 쉬운데,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점차 감퇴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뇌 속에는 기억에 관여하는 또 하나의 기관이 있다.

편도체라는 작은 공간이다.

이 안에 숨어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정서기억이라고 한다.


낯익은 엄마 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좁은 골목길을 보면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길이 떠올라 정겨움을 느끼고 시골풍경에서 고향을 연상하는 것 같은 감정의 기억은 편도체 안에 숨어 오래도록 바래지 않고 존재한다.






고통의 기억



우리는 현실이 힘들고 버거울 때면 이전의 행복했던 시절을 불러낸다.

아직 젊고 자신만만했던 때, 여유롭고 건강했을 때 그 기억에 기대어 다시 세상과 맞부딪쳐 볼 용기를 얻게 되므로.

거꾸로, 끔찍했던 기억은 하루빨리 잊으려 애쓰게 된다.

두더지 잡기 기계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두더지 머리를 뿅망치로 내려치듯 솟아오르는 나쁜 기억은 얼른얼른 없애버리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데 자꾸 기억나서 괴롭다.

자신에게 손해 나는 일은 빨리 잊을수록 편해지련만 그러지 못해 고통스럽다.

내 일이 아니라고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냐는 생각 때문에 늘 삶이 힘겹다.


마음이 여리고 타인의 아픔에 잘 공감하는 사람,

이기심이 팽배한 이 세상에서 흔히 바보 같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면면이다.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피해자를 수습했던 잠수사 고(故) 김관홍 씨도 그런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외면하고 심지어 지겨워하는데,

그는 바다 밑 참상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사고 1주일 뒤 뉴스를 보고 '자원봉사'로 현장에 갔던 그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잠수를 했다. 잠수 도중 죽을 뻔했으면서도 "사람 부족한 것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냥 가나?"라며 현장을 지켰다.

잠수를 한 뒤 최소 12시간 휴식해야 하는 원칙을 어기고 하루 대여섯 번씩 잠수를 했고

그 후유증으로 몸이 망가졌다.

더 이상 잠수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했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당시 참상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품에 안고 나온 아이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살아있는 자신의 아이를 안지 못했다.

"하루에 한 번도 세월호 애기들 생각 안 하길 바라는데, 한 번도 생각 안 하는 날이 없다.”던 그는

대리운전 일을 끝내면 집에 가서 자는 게 아니라 새벽 5시까지 무작정 걸어 다니곤 했다고 한다.



그는 세월호 청문회에서 물었다.


“고위 공무원들에게 묻겠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들께서는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지?"



아이들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 힘들어하던 그는 결국 이 세상을 버텨내지 못했다.


TalkMedia_i_6cc89182129a.jpeg.jpeg 제주 4.3 평화공원의 조각상




바보 같다는 말 듣는 이들,

다른 사람 아픔을 지나치지 못하는 모든 분들께,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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