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리고 (2)

기억상실에 대하여

by 한혜경



기억과 연관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잊었으면 좋겠는데 잊지 못해 괴롭기도 하고,

기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꾸 잊기도 한다.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은 뇌 속의 해마가 손상을 입거나 퇴화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히 몇 년 전 자신이 했던 말인데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며,

특히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불법 거래에 개입한 정황이 확실한 데도 전혀 모르는 사안이라고 하며,

수상한 계약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재산형성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실이고

처가나 배우자의 몫이라고 둘러댄다.

선거 때 목청 높여 천명했던 공약임에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오래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잊을 만하면 다시 들리는 말이다.



편의에 따른 기억 상실.

그들만의 기억법이 따로 있는 것일까?



IMG_6955.JPG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동물농장》에서도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농장주인 존즈를 쫓아내고 동물만의 나라를 세운 동물들.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신을 위해 일하는 기쁨을 만끽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생겨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며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는 계명과 달리,

돼지들은 일을 하지 않고 우유와 사과를 먹고 집 안에서 지내며 침대에서 자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의아하게 여기는 동물들에게 돼지 스퀼러가 그럴듯하게 설명해 준다.

농장의 동물들을 위해서 돼지들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하는 말 끝에

돼지들이 약해지면 존즈가 되돌아온다며 쐐기를 박는다.


"존즈가 되돌아온다."


이는 동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므로 불평을 잠잠하게 하는 데 이 말 이상의 힘을 갖는 건 없었다.


동물주의 계명의 내용이 교묘하게 바뀌지만, 동물들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존즈 시절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데도, 스퀼러가 통계를 늘어놓으며 농장의 각종 생산량이 200 퍼센트, 300 퍼센트, 500 퍼센트씩 늘어났다고 발표하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란' 이전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이 든 동물들은 때때로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존즈를 마악 쫓아내고 났을 때의 그 반란 초기의 농장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더 못했던 것인지 기억해 보려 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들로선 지금의 삶을 견주어 비교해 볼 건덕지가 없었다. 스퀼러가 읊어대는 통계 숫자 말고는 어디 의존할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그 통계 숫자를 보면 언제나 모든 게 더 나아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

- [동물농장] 중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잊지 않기를 빕니다.


이전 06화기억, 그리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