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지 말고 분석하지 말고 그냥 좋아하기
좋은 기억이 세상에 퍼뜨리는 좋은 영향
몇 해 전, 추석 연휴 지나고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고즈넉한 사진 두 장이 올라왔다.
벽돌색 나지막한 시골 교회의 종탑과 코스모스가 환하게 피어있는 풍경이다.
작은 십자가가 올라앉은 지붕 아래 종이 매달려 있다. 아무 장식 없이 단순한 모양이어서, 만든 이의 소박하면서도 정직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잎이 거의 없는 가지들이 하늘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그 옆에 서있어서인가, 우듬지에 동그마니 새 집이 올라앉아서인가, 세속과 무관한 듯 평화롭기 그지없다.
사진에 곁들여 올라온 사연은 할아버지에 대한 회상이었다.
종탑 중간 지점엔가 질박한 글씨체로 “1965. 3. 17. 준공”이라 새긴 현판이 붙어 있는데, 친구의 할아버지가 장로 장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했다. 친구에게 할아버지는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었으므로 할아버지 성묘 가는 길은 아무리 정체가 심해도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길 따라 소풍 가듯 즐겁다는 얘기였다.
좋은 사람, 좋은 기억이란 게 참 따뜻하구나, 나도 모르게 흐뭇해져 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퍼뜩 스치는 생각이 내가 토 달지 않고 그냥 좋다고 느끼는구나, 하는 자각이었다.
젊은 시절 유신독재와 광주민주화항쟁을 겪은 세대라 그런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몸에 배었다고 할까, 자동적으로 시시비비를 따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좋다는 감정조차도 이게 순수한 감정일까? 어떤 점에 끌린 걸까? 왜 좋다고 느끼지? 분석하기 일쑤이다.
우리 세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리라 싶은데, 나에게 성장이란 어린 시절 옳다고 배웠던 것들이 모두 옳은 게 아님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 과정이었다.
처음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고 1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광고가 사라진 신문을 받아 들고 황당했던.
텅 비어있던 신문 하단은 곧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광고들로 메워져 크고 작은 조각들로 이어 붙인 조각보 같아졌다. 언론자유와 민주화를 수호하자는 취지의 다양한 표현들로 이루어진 광고들을 읽노라면, 어른의 단계로 훌쩍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한편으로 금지된 세계에 발을 내딛는 듯한 짜릿함이 뒤섞인 느낌이었다.
대학생활은 잦은 시위로 기대했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멋 부리고 미팅에 나가는 일상 한편에, 학교 안에 상주하는 형사가 있고 어떤 교수님 수업에는 감시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누군가가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리는 암담함이 공존하는 나날이었다.
나는 미팅에 열심히 나가는 부류였지만, 누군가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대속에 섞여 있음을 알고 있기에 철없이 시시덕거리지는 못했다. 저들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사회정의를 위해 개인의 안위를 버리는 그들에 대한 존중이 퍼져 있었고, 혼자만 안온하게 지내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이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락영화든 게임이든 아무리 재미있어도 재미있다고 깔깔대기는 어려웠다. 뒤에서 누군가 내 뒷덜미를 슬그머니 잡아끄는 듯해 한 발 뒤로 물러나곤 했던 것이다.
정점은 1980년 봄.
언론은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니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 것을 경고했지만, 언론을 믿지 않은 지 오래인 우리는 그 내용이 다 사실이라며 낮은 소리로 소곤대곤 했다. 휴교령이 내려져 대학 정문은 굳게 닫혔고 군인들이 그 앞을 삼엄하게 지켰다. 놀러나 가자고 친구들과 강촌에 갔다가 햇살에 반짝거리며 무심하게 흘러가는 강을 먹먹하게 바라보던 것도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보통사람들은 분노와 저항을 잘 다스려 보이지 않게 치워놓고는, 때 되면 밥 먹고 일하고 연애하며 잘 살아갔다. 속물성에 대한 자책은 가끔 솟아올랐지만,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욕구에 눌려 번번이 사그라졌다.
그러면서도 젊은 날의 습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인생을 즐겨라” 같은 말에 덥석 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뭔가가 계속 남아있었다. 재미있다고 좋은 건 아니지 않나,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소시민적이 아닌가 하는 자기 검열도 여전히 작동하면서.
어느 날 거울 속 내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살피다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말이든 글이든 행동이든 예외 없이 분석하고 비판해 온 게 참 오래되었다는 깨달음이 오면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자기 검열은 비겁한 자의 자기 보호였으니 그만 내려놓고, 숨은 의도를 찾기보다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은 것은 그대로 인정하자는. 나이 들어감에 비례해 너그러움과 평안이 점점 커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러자 마음이 평화로워졌는데, 마침 친구가 따뜻한 사연을 올린 것이다.
“좋은 기억의 힘, 참 좋네. 사소해 보일지라도 따뜻한 기억을 갖고 있으면 세상이 좀 더 살만 해지겠지.”하는 답글을 다는데 미소가 절로 지펴지고 있었다.
좋은 기억이 세상에 퍼뜨리는 좋은 영향.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