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지만

뒤늦게 깨닫는 것

by 한혜경



“그땐 참 좋았는데...... 요새 생각하면, 그때는 천국에서 산 거 같아요.

문제가 생겨도 선배들이 감싸주고 이해해 줬는데......”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후배 K가 근황을 전하면서 예전 모교에서 조교 하던 시절이 그립다며 한 말이다.

성실하고 유능하기로 잘 알려진 후배인데,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았다.

나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는 일이라 힘들겠다고 위로를 건넸다.


교수직이 다른 직종에 비해 조직 갈등이나 위계로 인한 압박 같은 일이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비합리적인 일들, 터무니없는 사건이 꽤 일어난다.


나에게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나도 K처럼 모교에서의 시간을 떠올리곤 했다.

선배는 다정했고 후배는 똘똘하고 깍듯해서, 늘 우아하고 단정한 방에 있는 느낌이었던.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고 난 지금은 안다.

그땐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갈등이 적었음을.

우리 선후배들이 특별히 합리적이고 배려심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를 포함해 ‘우리’가 천국이라고 하던 같은 시간에 누군가는 차별로 억울해했으리라는 사실을.


모교가 아닌 대학에 있는 친구가 그 대학출신들에게 알게 모르게 소외당하는 불쾌함을 토로하면,

무슨 그런 사람들이 있냐고 흥분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들’이 아니어서 심각하게 체감하지 않았다 뿐이지, 당연하다는 듯이 차별이 행해졌던 것이다.

똑같이 박사학위를 받았어도 모교출신에게는 강의를 주는 반면에 그들에게는 주지 않았으니까.



후배 말을 듣고 떠오르는 생각을 곱씹다가 D선배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평소 다른 사람 사정을 잘 헤아리고 올바른 삶을 살고자 늘 노력하는 선배라, 이번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었던 터이다.


고교입시세대인 선배는 중고교시절 교회 다니는 일이 매우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이른바 명문고교생들이 많아 서로 잘 통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대학생이 된 후, 교회 후배로부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집이 장로 아버지에 자녀들이 모두 명문고에 다니는, 이른바 로열패밀리였으므로,

선배네 가족이 교회의 중심이었다는.


본인은 그런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특권층으로 비쳤다는 점이 억울했지만,

그 뒤로 이른바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화두로 삼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대학입학 이후로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온 터라,

우리가 동시대 여성들에 비해 상당한 특혜를 누린다는 사실에 둔감했다.

주변을 보면,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에 비해 우리 집은 평범하고 나도 뛰어나지 않았기에 열등감이 있는 쪽이었지,

내가 누리는 게 특별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시절도 아니니, 다른 사람의 삶은 어쩌다 신문 사회면에서나 읽게 되는 먼 세계에 속한 것이었다.

시위가 잦을 때라 아무개가 끌려갔다, 다쳤다 같은 소식은 공유했지만,

누가 가난해서 살기 힘들다더라 같은 이야기는 그다지 나눈 기억이 없다.


IMG_7048.JPG



그때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민주화도 이뤘고 부지런히 경제를 일구어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간혹 강남에 갔다가 즐비한 초고층 건물과 식당, 카페들이 호화로운 데 깜짝 놀라곤 한다.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인천공항만큼 넓고 쾌적한 공항이 없고, 스마트폰에, 한류에,

우리나라의 위상은 정말 많이 높아졌다.


그런데 한편에서,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자꾸 들린다.


이만하면 성공한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몇 년 전인가, 한 작가는 “도대체 왜 이다지도 나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가,는 의문 속에서 지난 몇 년간을 살았다”라고 고백했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고 첨단 기술을 누리는 이 시대에 ‘이다지도 나쁜 세계’라니......



물질적 풍요와 상관없이, 아니 풍요롭기에 더욱 어두운 그늘이 작가에게는 보였기 때문이리라.


여유로운 삶 이면에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로 묻혀있던 방치된 삶이,

어느 때부터인가 무엇이 잘못인 건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된 상황이,

그리고 내가 딛고 선 땅이 단단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 작가처럼 예민하지 못할지라도 이전에 몰랐던 것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 같긴 하다.


내가 별생각 없이 누려온 것들을 갖지 못한 이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썩 많이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진 자에 속한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 이전과는 달리 좀 더 많은 것이 보이지 않을까?



선배 말대로 조금이라도 더 가진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운 여름을 견디기가 좀 낫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날 소망 하나 품어본다.




이전 09화다른 사람, 다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