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을 이해하기
“당신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구요.”
몇 년 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조작]의 주인공의 대사이다.
나는 모르겠는데 누군가는 매일 직면하고 있는 세상.
그가 말하는 ‘그런 세상’은 ‘변칙을 써서라도 부딪쳐야 되고 욕하고 돌이라도 던져야 겨우 우리 얘길 들어주는 세상’이다. 왜 그렇게 과한 행동을 하는가 의문을 품는 검사에게 하는 말이었다.
‘검찰과 언론이 올바른 정의를 만들어주는 세상’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경험한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고 주인공은 나직하게 말한다. 날 선 비난의 어조가 아니라 수없이 당한 자의 비애와 체념이 묻어나는 어조로, 울분은 이제 녹아버려 슬픔만 남아 있는 듯한 눈빛으로.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걸 이해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나를 포함해 보통 사람들은 재벌이나 권력을 가진 이의 호화로운 세상, 높은 지위를 누리는 자의 세상은 알지 못한다. 반대로 가진 것이 너무 적은 이, 억울함을 풀 길 없는 이, 폭력과 차별이 일상적인 이의 세상도 모른다. 장애를 타고난 이나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한 이가 맞닥뜨렸을 세상 역시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저 언론 보도나 영화, 드라마, 책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뿐이다.
정의에 입각해 행동해야 할 검찰과 언론이 직무 유기를 해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면, 아무도 자신의 억울한 사정에 귀 기울이는 자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 주인공처럼 욕하고 돌이라도 던져서 주목을 끌어야 했다면?
사정이야 어떻든 폭력은 나쁜 일이니까 돌 던지는 행위만큼은 참아야 할까?
비리를 저질렀는데도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벌을 비껴가는 이들을 볼 때, 늘 약자의 처지에서 손해만 보는 쪽은 어떤 생각이 들까?
고통이 증오심으로 변하고 “상처가 영혼을 좀먹고 증오심은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차근차근 부패해”(조해진의 소설 『작은 사람들의 노래』 중)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의 도리라는 게 있다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렇게 흘러가게 두어선 안 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적다.
나만 해도 소설 속 인물이 겪는 불행과 고통에는 가슴 아파해도, 비슷한 상황의 사람을 실제 현실에서 마주친다면 피할 것이 틀림없는 이중적 인간이다. 허름한 차림의 사람,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자를 보게 된다면 십중팔구 피하고 싶어 할 것이며, 그들 처지를 이해하려 하기 전에 불량한 자라는 선입견이 발 빠르게 작동하리라.
그들 하소연에 귀 기울일 의사가 없는 까닭은 추레한 것을 피하고자 하는 본성 때문이기도 하고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다른 세상이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가정은 전혀 하지 않으니까.
장애인 학교가 우리 집 근처에 생기면 장애인 보기도 싫고 무엇보다 집값이 떨어질 테니 반대한다. 장애인의 처지나 그들 가족의 아픔 따위는 알고 싶지 않다.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끊이지 않는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사고 대책도 엉망인 상황에서 유가족들이 얼마나 참담할까 헤아리기 전에, 교통 정체를 일으키는 시위대 행렬이 짜증스럽다.
내가 있는 세상은 영원히 안전하리라, 고통스럽고 누추한 저 세상은 다른 세상이겠거니 하며 살아가지만, 어느 날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 ‘다른 세상’에 내가 들어갔음을.
중국 작가 위화의 이야기 중 예방주사에 대한 일화가 있다.
마오쩌둥 시대 치과의사로 일했던 그는 예방주사를 놓는 일도 담당했다고 한다.
일회용 주사기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라 사용한 주사기를 만두 찌듯 두 시간 찌는 게 소독의 전부이던 시절이었다고. 그런데 주사기를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니 끝이 구부러져 맞는 이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심지어 주사기 끝에 살점이 묻어 나올 정도였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 날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의 울부짖음을 듣고서야 그들의 고통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뒤늦게 그는 반성한다.
왜 그들의 고통을 짐작하지 못했을까? 그들에게 주사를 놓기 전에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자신의 팔에 직접 찔러봤으면 그들이 느낄 고통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이 경험은 그의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그의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고 고백한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노력해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참 좋겠다.
폭염이 계속 되는 날,
다른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날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