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향기

그리운 사람들

by 한혜경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희미한 향이 스친다.

현관 옆 방문에 매달아 둔 장미꽃다발에서 나는 향이다.

꽃잎 끝이 거무스름하게 말라가는 중인데도 알싸한 향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졸업 후에도 모여서 소설 공부를 하는 제자들이 건넨 장미꽃다발이다.

잘해 보려고 하지만 그만큼 재능이 따라 주지 않는 데서 오는 회의,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

그들의 고민은 곧 젊은 날의 내 모습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방문에 걸어놓았던 장미 꽃다발.

싱싱한 원래 자태는 사라졌지만, 향기가 남아 나를 부른다.


박완서의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도 장미꽃 향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장미꽃은 저기 있는데 향기는 온 방에 퍼져 있는 걸 보면서,

주인공은 하나의 물건이 가시적인 형태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향기로도 존재함을 깨닫는다.


가스불 끄는 것을 깜박해 새까맣게 탄 소꼬리를 두고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숯처럼 타버린 소꼬리를 버린 지 오래인데도 고약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으므로,

그녀는 소꼬리가 다른 무엇인가가 되어 집 안에 남아있는 거라고 여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리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재하는 건 아니다.

향기가 장미꽃의 또 다른 존재이듯, 곁에 없어도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MG_3747.JPG


우리도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다.

함께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눈빛이나 체취를 느끼고,

목소리나 글에서 그를 기억했던 적이 있다면...

한 존재를 깊이 생각하게 되면 길을 걷거나 집 앞에서 잠깐 벨을 누르는 사이,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얘기하는 일상 사이사이에,

어디선가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하니까.


주변을 돌아보면 당연히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망감이 아니라 뭔가 충만한 느낌이 차오르는 건

옆에 없어도 함께 있다는 확신,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빠지면서, 생활의 때가 끼면서, 그런 느낌들과 멀어진 지 오래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해결하기도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눈빛이나 향기로 누군가를 기억하는 건 사치처럼 보이니까.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는 것처럼 여겨지니까.


지금 곁에 없는 존재들의 은밀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에 요란한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 보니 그런 시간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한 치의 여유 없이 몰아치는 일과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혼자 조용히 응시할 때의 고즈넉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느낌의 소중함을 알 것이다.















이전 11화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