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
몇 년 전 모 기관에서 주최한 수필 공모대회에서 심사를 맡았을 때 일이다.
심사장소에 들어서는데,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웃고 있는 여자.
누구더라, 얼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데, "나 00이야." 하며 다가온다.
이름을 들어도 생각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자 고등학교 이야기를 꺼낸다.
아, 맞다, 고등학교 동창!
여고 시절이 40여 년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펼쳐진다.
제비 뽑기로 들어가 학교에 대한 애정이 없던 여고 시절, 그래도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어 즐거웠다.
그녀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긴 하굣길,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다니던 교회 '문학의 밤'에도 와줬던 친구였는데 얼른 기억해내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너 그땐 말랐었잖아. 살이 좀 붙어서 얼른 못 알아봤다, 야."
진한 눈썹과 쌍꺼풀진 눈매가 고왔던 친구.
그땐 깡말라서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교복 스커트가 헐렁헐렁 돌아가곤 했는데,
이젠 적당히 살이 붙어 완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붉은 투피스로 차려입은 모습이 화려하게 만개한 모란 같았다.
친구는 아동문학가로, 또 수필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졸업한 뒤에도 내 생각을 많이 했었다며, 내가 문학을 하리라는 생각에
문인협회 주소록에서 내 이름을 찾아보곤 했다고.
이번에도 미리 나눠준 심사위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 혹시나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들어오자마자 한눈에 알아본 것이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친구는 나에 대한 수필을 썼다며 글이 실린 잡지를 건넸다.
등 하굣길이며 회색 교복, 초록색 체육복에 얽힌 이야기 등 함께 한 학창 시절이 맛깔스러운 문체로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 기억과 다른 부분들이었다.
이 친구와의 추억 중 내가 제일 먼저 기억하는 것이 우리 교회에서의 '문학의 밤'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밤, 시를 낭송하고 노래도 부르고 연극도 보여주는 그 행사에서 나는 사회를 맡았는데,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그녀는 달콤한 말을 들려줬다.
"너 조명받으니까 그럴듯하더라. 예뻐 보였어."
겉으론 "에이, 그럴 리가......" 했지만, 친구의 그 말은 나의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행복하게 충족시켰고,
다른 건 다 잊어도 그 말만큼은 오래도록 내 기억창고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가 쓴 수필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문학의 밤 이야기를 꺼냈을 때 "뜨끔했다"라고 하면서
문학의 밤에 간 기억이 없다고 했다.
자연히 나에게 한 말 역시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우리 교회에서 '인기 짱'이었던 남학생 이름을 기억한다고 했는데,
나로서는 그 남학생이 인기 있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향수]에 기억과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체코 공산주의가 해체되자 다른 나라에 망명해 살던 자들이 고향을 방문하는데,
고향에서 그들은 행복한 일치감보다 어긋남을 경험한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기억하고,
물어봐 줬으면 하는 것들은 묻지 않고 엉뚱한 것만 질문하는 것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체험한 것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한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잊게 마련이다.
또 사람마다 시각과 입장이 다르므로 어떤 사건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때, 문학의 밤에 와서 친구가 한 칭찬에 들떴던 내 모습이 쑥스럽고,
서로 기억하는 게 다를지라도,
오래전 친구를 다시 만나고
서로의 마음속에 좋은 친구로 기억되고 있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