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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Apr 27. 2024

숨은 꽃

- 죽은 게 아니었어!!!


 토요일 오후라 각오하긴 했지만 정말 차가 많았다. 

 기사분이 내비를 보며 방향을 바꿔 본다. 들어선 길은 오랜만에 지나가는 길이다. 

공덕 쪽으로 통하는 새 도로가 뚫린 것 말고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차선은 여전히 2개이고 인도도 좁다.

 

그 안으로 줄지어 있는 가게들은 개발바람에서 비껴 난 게 억울한 듯 나지막하게 엎드려 있다. 

중간쯤 있는 빵집 하나가 통유리로 깔끔하게 단장했을 뿐, 오래된 철물점, 00 통상, 건재상사, 보일러, 심지어 신앙촌상회, 새마을이발관 등, 낙후된 지방 어딘가 온 거 같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정겨운 게 아니라 잊힌 자에게서 풍기는 궁상맞고 구중중한 내가 느껴진다.   


그런데 길가 나무들에 화사한 벚꽃이 길이 비좁다는 듯 한가득이다. 

꽃피는 철에 지나간 적이 없었나 보다. 

가로수가 벚나무인 줄 처음 알았으니... 연수가 오래되었는지 굵직한 나무통에 가지마다 화알짝 피어난 벚꽃들이 뭉게뭉게 꽃구름을 이루고 있다. 





택시는 거의 서 있는 상태다. 창을 내려 좀 더 가까이 꽃송이들을 바라본다. 

그날이 가장 만개한 시점이었는지 온몸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활짝 벌려져 암술 수술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게 살짝 외설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내 마음이 심란해서인가, 꽃나무가 있는 거리 풍경이 아름답다기보다 어딘가 부조화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허름한 가게 앞에 세워둔 인조 꽃나무 같다고 할까. 남루함을 가려주는 게 아니라 남루함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어쩌자고 저 꽃들은 저리 활짝 피고 저리 홀로 선연할까.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독주하듯 저 혼자 만개해 있는 게 곧 스러질 꿈 한마당 같아, 안타까움인지 허망함인지 뭔가가 목구멍을 간질였다. 


 “아이구, 잘들 폈다.” 오랜 정체에 지루해하던 기사분도 꽃들을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어, 그런데 저 나무는 이상하네.” 한다.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정말 맨 가지만 달린 나무가 서있다. 

양옆엔 풍성하게 피어난 꽃들을 매단 나무들이 있는데 홀로 맨 가지인 채로 서있다. 옆 나무에 비해 키도 작고 가지 수도 적어 왜소하다. 


 “저 가지 보세요. 싹이 안 났잖아요. 죽었네, 죽었어.” 

 나무에 대한 상식이 없으니 기사 말이 맞겠거니 하며 “그러게, 왜 죽었을까요?” 했다. 

조금 더 가니 맨 가지인 나무들이 두어 그루 더 보인다. 


저 나무들은 정말 죽은 걸까? 

옆 나무는 저렇게 꽃이 잘 피는데 왜 죽었을까? 

옆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서인가? 


궁금증을 안은 채 그 길을 빠져나갔는데, 우연히도 정확히 1주일 후 같은 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번엔 아침이라 그때처럼 정체가 심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난주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무에 진분홍빛 꽃들이 피어나 있지 않은가. 

죽은 게 아니었어!!!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땐 꽃이 피기 전이었던 거야! 




 1주일 전 그토록 흐드러졌던 벚꽃은 꿈이었나 싶게 자취 없이 사라지고 죽은 줄 알았던 나무 서너 그루는 이제 분홍꽃들을 터뜨리고 서있었다. 선명한 분홍으로.  


벚꽃이 무리 지어 풍염했다면, 이 꽃은 가지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인지 다소곳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수줍은 듯하면서도 할 말은 소신껏 밝히는 처녀처럼 진한 분홍빛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꽃이었구나, 죽은 게 아니라 이제 꽃이 피는 거였어. 


자꾸 고개를 끄덕거리며 꽃들을 바라보았다. 대견하고 고마웠다.  


계절에 맞춰, 피어날 시간에 맞춰 필뿐인데, 잘 모르는 인간이 미리 와서는 죽었네, 꽃이 안 피네, 지레짐작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 

마침 1주 후에 지나갔으니 알았지 모르고 넘어가는 건 또 얼마나 많을까. 

짐작일 뿐인데 사실이라고 우기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


우연히 만난 풍경이 생각거리 하나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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