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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Jul 27. 2023

시티투어버스와 어학연수

5월 초반 여행의 기록(9)

진주에서 냉면을 먹고 짧은 밤을 보낸 후, 아침 일찍 나는 진주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의 기착지는 여수였다. 진주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순천에서 환승해 여수로 가는 일정이었다. 내일로 여행자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순천은 왜 가지 않고, 바로 여수로 갔는가 하면 순천은 예전에 한 번인가 가본 적이 있었는데 크게 볼 거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과감하게 패스했다. 여수에 대한 기억은 2011년도 엑스포가 마지막 기억이라 모처럼 가보고 싶었다.      


 전날 밤에 방에서 여수 관광을 찾아보다가, 대부분은 크게 특색이 없어 보였고(물론 이건 내가 아는게 없고, 단정 짓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더 그렇다) 그나마 가보고 싶었던 곳은 ‘향일암’ 이라는 여수 내에서도 남단에 있는 절이었다. 뚜벅이 여행자에게 도심 외에 있는 곳들은 대부분 큰 장벽이다. 대중교통이 수도권처럼 많이 다니지도 않고, 대부분 극악의 배차간격을 자랑하며(일 2-3회 정도?) 택시를 타자니 너무 비싸고 걸어갈 수도 없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향일암은 꼭 가보고 싶어 여러 정보를 수집하던 중 여수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버스’의 정체를 알게되었다. 도심의 관광지 두어 곳을 보고 향일암에 갔다가 저녁에 복귀하는 코스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가이드의 인솔도 있었다. 여수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아는거 없는 나에게는 지식의 배경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비용이 만원 정도기는 했으나, 향일암에 왕복 버스비+시간을 생각하면 훨씬 더 쾌적하고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바로 예약을 하고자 하였으나 출발시간이 너무 임박해 현장신청밖에 되지 않았고, 공석이 없으면 탑승이 불가했다. 약간은 겁먹은 마음을 가지고 여수로 향했다.  

   

 겁을 먹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여수엑스포역 도착 시간과 시티투어버스의 출발 시간이 5-10분 정도의 공백밖에 없다는 것. 이는 선/후행 열차가 지연이라도 되면 가차없이 탑승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2) 시티투어버스에 잔여석이 5석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기에, 출발시간에 임박해서 도착하는 내 자리가 없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심 겁을 먹었지만, 뭐 놓치면 향일암은 내 운명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으로 기차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수엑스포역에 내려서 시티투어버스를 찾고, 비용을 결제한 뒤 짐을 싣고 버스에 올랐다. 이때 나는 하나의 난관에 더 부딪히게 된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을 타지, 이런 투어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단을 올라 운전석 옆에서 본 객석은 전부 가족들, 혹은 같이 온 일행들이었다. 어디에 껴서 앉아야할지 머리를 굴리다가, 운이 좋게 빈 자리가 하나 보였다. 그 자리 안 쪽에는 외국인이 앉아있었다. 뒤로 더 들어가봐야 자리는 없을 것 같아서, 외국인에게 ‘Can I seat here?’ 하고 물은 뒤 자리에 앉았다. 외국인과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고, 그냥 앞만 보고 있다가 버스는 출발했다. 가이드분의 목소리를 땅바닥에 내리며 오동도를 갔고 그 곳에서 나는 가이드분을 따라, 외국인은 혼자 돌아다니다가 다시 버스 그 자리에서 만났다.      

여수시 시티투어버스 티켓.

 다음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성격이야기를 하자면, 극단적인 내향형 인간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 말 잘 못걸고, 말을 걸어와도 막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걸 좋아한다. 하지만 또 단 둘이고, 둘 다 어색한 상황에서는 그 분위기를 타파시키기 위해 광대처럼 먼저 질문을 하고, 그 분위기를 주도한다.    

  

 다시 버스로 돌아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오동도는 어땠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등. 이런 대화들이 영어로 이루어졌으니, 12년간의 공적 영어교육이 정말 고마웠다. 정리하면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올랜도였고, 아시아에서 오래 있었으며, 지금은 일본에 있다가 한국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런 스몰토크를 하며, 다음 정류장인 진남관에서는 중식 포함 일정이길래 관련해서 가이드분의 말씀을 전달해주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의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멋진 문화교류 과정이었다.     


 중식 후 향일암으로 향했다.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야 도달할 수 있는 향일암에서는 올랜도와 함께 다니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올라가다보니, 그룹이 형성되고, 나와 올랜도는 선두주자였다.   

정말 멋졌던 향일암.

 향일암 초입은 한국의 모든 등산로 초입이 그렇듯이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가득했다. 북한산에서는 등산용품과 간식들을 팔지만, 역시 여수라 80%정도가 갓김치 상점이었다. 모든 갓김치 가게에서는 시식을 두고, 판매를 유도하고있었다. 나는 올랜도에게 뭔가 한국의 맛을 보여주고싶어 시식을 권유했고, 그는 제법 야무지게 김치를 씹었다. 우리가 흔히 외국인들의 김치 반응에서 보는 ‘오 너무 매워요 ㅜㅜ’하는 반응이 아니었고, 맛들이 다 괜찮다는 의연한 반응을 보였다. 그 점이 조금 놀라웠다.     


 김치 상점들을 지나며 아는 선에서 김치에 대해 아는 이야기들을 해줬다. 지역별로 유명한 김치가 다르다는 것. 각 집집별로도 맛이 다 다르다는 것. 그래서 서울의 김치는 배추김치가 대부분이지만, 여수는 갓김치가 유명하다는 것, 전라도 김치는 젓갈을 많이 사용하고 경상도는 김치가 좀 다르다는 것 등. 그 이야기를 듣더니 올랜도는 나에게 놀랄만한 질문을 하나 했다. ‘너는 어떤 김치가 제일 맛있었어?’ 이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역시 집에서 만든 김치가 제일인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 그러자 올랜도는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답한다면서 웃었다.   

  

 향일암에 오르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아는 선에서(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들었기에 아마 맞을)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향을 피우고 절을 몇 번 하는지, 목례를 하는 법과 소원을 비는 법 등. 그가 어떻게 내용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손짓발짓과 진심을 들여 설명했기에 이해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종교이야기를 한창 하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귀여운 길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꼬리를 연신 흔드는 걸로 보아 사람을 반기기는 하는 것 같은데, 막상 다가오지는 못하고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던 강아지를 올랜도가 길들였다. 바닥에 시리얼을 놔주고, 천천히 손을 내밀어 향을 맡게 하고, 천천히 하나씩 쓰다듬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지나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강아지도 우리를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맡겼다. 우리는 그 강아지에게 ‘갓김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인사를 한 뒤 향일암을 떠났다.     

귀여운 갓김치. 오곡 시리얼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시티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수산시장 구경이었는데, 여기서도 올랜도와 함께 동행했다. 아는 선에서 해물들을 설명해주고, 수산시장의 매커니즘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생선 회야 일본에서 접한게 있어 익숙해 보였는데 해삼, 멍게 같은 해물들은 아무래도 낯선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횟집에서 스끼다시로 나오는 그런 해물들을 좋아하기에, 그에게도 한번 맛보여주고 싶었다. 가까운 가게에 가서 해삼과 멍게를 주문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받아 하나씩 맛을 봤는데, 내 기억속의 맛 보다 심각하게 바다향이 났다. 바다향이라고 미화했지만, 그냥 짰다. 굉 장 히. 그래서 둘이 몇 개 먹고 나머지는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렇게 수산시장을 마지막으로, 그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물론 그는 저녁에 야경투어버스를 탑승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걸어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아마 여수에서 마주치는 마지막일 것 같았다. 그와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고,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한국 문화를 알려줬고, 그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줬다. 타 언어권의 사람과 이렇게 오래 대화한 적은 처음이었다. 언어를 약간 하면, 대화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과, 그 재미는 두 배가 된다는 것을 배웠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그는 일본에 있거나 외국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텐데 내 첫 외국인 여행메이트인 올랜도가 안전하게 여행을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5월 12일의 좋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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