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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Jul 25. 2023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다.'

5월 초반 여행의 기록(7)

 간간히 서울을 돌아다니다보면, 경복궁같은 관광지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한복을 입고, 궁궐이 신기한 듯 여러 장의 사진을 촬영한다. 그리고 거리 주변에 있는 여러 ‘한국스러운’간식과 음식을 사먹는다. 이때 간식과 음식들은 단순히 한국스럽지 않고 한국의 관광지스럽다. 내국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먹는 가격보다 더 비싸고 그 종류도 신기한 것이 많다. 특히나 명동이 그렇다. 거리에 들어서면 호떡, 떡볶이 같은 한국적인 길거리 간식들의 가격은 몇 배로 부풀려져있고, 한국적이지 않은 탕후루, 오레오츄러스 같은 간식들도 잔뜩이다. 그 거리를 지나며 필자는 매번 “내가 외국에 가면 저들과 같은 모습이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관광지도 들르지만, 로컬 맛집 또는 현지인 맛집이라고 불리는 장소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네이버에 검색을 하기도 하지만, 상점에 들른다면 상인 분께 근처에 어떤 밥집이 맛있는지 질문하고, 택시를 타면 기사님께 질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간 식당들은 대부분 맛이 좋은 곳이고,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이며 크게 북적거리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말’을 거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렇게 말을 걸면, 나도 자연스럽게 내지인들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고 기초적인 정체성은 외지인이지만, 내지인인 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척’은 나를 잠시나마 그 지역의 내부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지역의 내부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스며들게 되고, 위에서 서술했던 ‘현지인들이 보기에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 현지의 것만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타인에게 말을 걸고, 잠깐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행위는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필자가 극 내향형의 인간인 것도 있고 생뚱맞게 일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맥락이 형성되면 간간히 말을 걸어보겠지만,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지는 못한다.   

  

 앞선 글에서, 한산도를 걸었고 마치 포켓몬 트레이너처럼 모험을 하다가 산 아래의 한 마을을 발견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때 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려야하는데, 버스 정류장 안에는 거미줄이 가득해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정류장 뒤편에는 벽돌로 된 2층 건물이 있었는데, 앞에서 보니 마을회관이었다. 마을회관. 마을 주민들의 핫 스팟이자, 진정으로 현지인들의 장소. 뭔가 그 안에 들어가면 버스 시간표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어르신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한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으면 물이나 과일을 좀 얻어먹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줬다면 “이러이러해서 밖에 있고, 그렇습니다 하하하” 하며 대화를 약간 이어갈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마을회관에 들어갈 자신감은 없어서 그냥 햇볕에서 가져온 물을 마시고 마을 포구에 배가 드나드는 것을 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좀 빠르게 와서 다행이었지만, 그 날의 마을회관은 아직도 아쉬운 마음으로 남아있다. 아마 다른 지역으로 다음 여행을 떠나게 되면 그때는 조금 더 용감하게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다. 더 완벽하게 현지인들의 삶에 스며들고 싶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제일 골치 아픈 부분 중에 하나가 사진찍기다. 풍경이야 내 손과 카메라만 있으면 찍을 수 있지만, 여행을 다니는 내 모습은 찍기 쉽지 않다. 셀프-카메라로 찍을 수는 있지만 사진의 80%정도를 내 머리가 차지하고, 주변 풍경은 20%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삼각대를 세워서 찍자니 구도를 잡는게 영 어렵다. 사람이 찍어주면 보다 단순하게 발 끝과 화면을 맞추고 비율을 잡지만, 삼각대는 내 어림짐작으로 위치에 서서 찍기 때문에 그런 디테일한 요소를 맞추기가 힘들다.      

어딘가 어정쩡한 구도, 기울어진 카메라

 그래서 여행지에서, 필요한 능력이 ‘타인에게 사진 요청하기’다. 같은 카메라로 찍더라도, 사람의 손을 타면 그것은 작품이 된다. 내 전체를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말을 걸기가 어렵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사진촬영에, 자신들의 사진 품평에 정신이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그 사이를 붙잡고 들어가 말을 걸고, 사진을 부탁하고 감사함을 표해야 한다. 이 끼어들기의 미학에 익숙해진다면, 한결 더 나은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남긴 후 잠시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도 큰 재미가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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