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가장 뜨거웠던 밤

나는 그 세계에서 가장 나답게 살고 있었다

by 샤인포레스트

그날 이후,

매주 화요일 저녁.

그곳은 나의 무대가 되었다.



라인댄스 동호회는 지금의 라인댄스가 가지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그야말로 에너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아는 음악이 나오면 하나둘 무대로 모여들었다. 오프닝 음악을 각자의 흥에 맞춰서 즐기다 본 음악이 시작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같은 동작을 췄다.


90도, 다시 90도, 또 한 번 방향을 바꿔 정면을 마주한다.

동작이 익숙한 사람들은 그 춤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친한 이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춤을 춘다. 또 어떤 이들은 음악 사이사이에 신나는 추임새를 넣어 흥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무슨 이런 세상이 다 있지?


나도 모르는 사이 그곳의 에너지와 젊음에 반해버렸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곳에서는 더 이상 내가 누군가를 챙기는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점이었다. K-장녀로서 늘 부모님과 동생을 챙기고, 어딜 가나 먼저 상대를 챙기는 게 익숙했던 내가 그곳에서는 가장 막내였다.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이 예뻐해 주었고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조금만 춤을 춰도 “잘한다, 잘한다”

"뭐 필요한 거 없어?"

"같이 바다 놀러 갈까?"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챙김과 관심이 처음엔 과분하고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그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스물넷, 나는 그렇게 사람과 춤에 취해갔다.

정모가 있는 날이면 자정이 훌쩍 넘도록 쉬지 않고 춤을 췄다. 라인댄스를 두세 곡 연달아 추고 나면 마치 한 시간을 뛴 사람처럼 숨이 차고 땀이 났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라인댄스 사이사이 살사도 계속해서 함께 췄다. 살사 음악은 또 왜 그렇게 좋은 건지.


고작 첫 두 달 배운 기본 스텝이 전부였지만, 정모에서 나는 진짜 살사를 배웠다. 고수들과 함께 추다 보면 모르던 동작들이 어느새 내 몸에 스며들어 있었다. 사람도 좋았고, 춤도 좋았고, 음악도 좋았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춤을 추고 있는 내가 참 좋았다.



나는 어쩌면 그 세계 속에서 가장 나답게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저 춤이 좋고 함께 있는 사람이 좋으면 충분했다. 엠티에 가면 밤늦도록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모르던 세상을 만났다. 새벽 두 시, 세 시 되었을 무렵 실컷 놀고 춤추고 나서 군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둘러앉아 있던 그 순간, 내 입에서 낯선 단어가 흘러나왔다.


아, 행복하다....


그때의 나는 무엇이 그리도 좋았던 걸까.


어느덧 나는 동호회의 중심에 서 있었다. 화요일엔 라인댄스, 금요일엔 다른 살사 동호회의 정모, 주말이면 다른 도시의 파티까지. 자연스럽게 춤은 늘 수밖에 없었다. 공연팀에도 들어가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섰다. 다른 동호회 행사에 초대되기도 했고, 시에서 주최하는 큰 해변 공연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 3년은 거의 춤에 미쳐 있던 시간이었다. 새벽 한 시까지 춤을 추고 밖에 나가 국밥을 한 그릇하고 다시 들어가 또 춤을 추다 새벽 네 시에 집에 들어간 날도 있었다. 그리곤 한 시간 자고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장면이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그렇게 내 젊음을 불사른 것에 한치의 후회도 없다.


그 시절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해변 살사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계절, 저녁시간이면 동호회 사람들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모였다. 음악을 틀어놓고 바다 앞에서 춤을 췄다. 어떻게 사람들 지나가는 데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지만 사실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살사 음악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나와 파트너. 오롯이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동호회 생활의 꽃은 단연 공연이었다. 사실 춤에 미친 듯이 보낸 3년 뒤로 나는 동호회 생활이 뜸해졌고 대학원을 멀리 가게 되면서 춤도 뜸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살사와 사랑에 빠졌던 나는 주말에 한 번씩 가던 고향에서 살사 동호회를 찾았다. 그리고 강습도 듣게 되면서 살사 공연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옆을 지키는 전우(남편)이자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 예의상 참석여부를 물어보았다.


“혹시 공연 보러 올 생각 있어?”
(속마음: 제발 제발 오지 마.)


그래도 공연하는 걸 알고는 있기에 물어는 봐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였는데 눈치 없이 그는 친구까지 데리고 공연을 와버렸다. 문제는 사실 공연 의상은 평소 춤출 때 입는 옷과 완전 다르다. 좀 더 과감하고 화려하다고나 할까. 하필 그 당시 선생님이 고른 옷은 거의 수영복에 가까운 드레스와 망사 스타킹이었다.


따당 따 당 땅--


오프닝 음악이 시작되고 나는 등을 보인 채 몸을 흔들었다.


그는 가장 앞줄에 앉아 있었다.

왜 하필 거기 앉아가지구....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래. 아마 놀랐겠지...


그는 십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음악을 입으로 흉내 낸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대신 나는 그의 축구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했었기에 당시의 그도 내 춤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가끔씩 고향의 작은 살사바에서 춤을 췄다.


하지만 2015년 겨울 이후,

나는 한동안 완전히 춤을 멈췄다.


그때는 전혀 몰랐다. 이후의 삶이 전혀 다른 삶으로 연결될 줄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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