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얹힌 까르띠에 산토스의 묵직함 이면에는, 백 년이라는 서늘한 역사가 스위스 장인들의 세공을 거쳐 오롯이 담겨 있다. 그것은 이미 완성된 권위이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아득한 문학적 성취와도 같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려, 화려한 하이엔드 시계들의 그늘 아래서 묵묵히 1초에 여덟 번, 시간당 28,800번의 진동을 만들어내는 투박한 심장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미요타 9015. 일본에서 대량생산된 이 저렴하고 실용적인 범용 무브먼트는 어쩌면 글을 쓰는 자의 가장 비루하고도 치열한 민낯을 닮아 있다.
시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단연코 무브먼트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엄격한 잣대로라면 미요타 9015를 품은 시계는 결코 하이엔드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자사 무브먼트의 정교한 마감이나 화려한 제네바 스트라이프 패턴은 이 공산품 심장에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다.
그러나 쿠로노 도쿄나 발틱 같은 브랜드들은 보란 듯이 이 흔해 빠진 엔진을 가져다 예술에 가까운 다이얼과 케이스를 주조해 낸다. 보이지 않는 곳의 허세를 덜어낸 대신, 눈에 보이는 모든 여백과 곡선에 집요한 완벽주의를 쏟아붓는 것이다.
나는 이 기묘한 역설에서 창작의 본질을 마주한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현학적인 문장들로 겹겹이 치장한 글만이 과연 위대한 소설일까. 때로는 누구나 일상에서 쓰는 가장 흔하고 저렴한 단어들을 주워 모아, 뼈를 깎는 배치와 조립을 통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서사를 직조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심장의 태생이 무엇이든, 겉으로 드러난 세계를 압도적으로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다. 백스페이스를 누르며 버려진 수많은 문장의 무덤 위에서, 우리는 매일 밤 고독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노벨상이라는 거대한 꿈을 꾼다.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은 스위스제 뚜르비옹처럼 거창하고 우아한 영감이 아니다. 마감의 압박, 턱없이 부족한 수면 시간, 그리고 활자를 향한 지독한 갈증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투박한 톱니바퀴들의 맞물림이다.
어쩌면 나의 글쓰기도 미요타 9015의 태엽을 감는 일과 같을지 모른다. 비록 태생은 평범한 단어들의 조합일지언정, 흔들림 없이 초당 8진동의 맹렬한 박동을 유지하며 기어코 완벽한 서사의 시침을 밀어 올리는 일.
손목에는 굵은 붓글씨로 내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은 산토스가 서늘하게 빛나고 있지만, 그 아래서 요동치는 나의 맥박은 오늘 밤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미요타의 속도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