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문장들, 아까운 문장들

by 현영강

백스페이스 키를 길게 누르면 숱한 밤을 지새우며 빚어낸 문장들이 속절없이 화면 너머로 사라진다.



어제는 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진리 같았던 글자들이,

오늘은 한낱 치기 어린 활자 덩어리로 전락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소설가의 하드디스크에는 빛을 보지 못한 텍스트들이 켜켜이 쌓인 거대한 무덤이 존재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미세한 틈을 메우지 못해 버려진 묘사들, 서사의 뼈대를 빗겨나가 잘려 나간 인물들의 파편화된 감정. 그것들은 실패의 잔해인가, 아니면 도약을 위한 필연적인 탈각의 흔적인가.



나는 가끔 이 버려진 문장들을 가만히 응시한다. 비록 완성된 세계의 부름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 안에는 궁극의 지향점을 향해 치열하게 몸부림쳤던 나의 활착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하나의 정교한 조각상을 완성하기 위해 바닥으로 수없이 떨어져 나간 대리석 가루들처럼 말이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만큼이나,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끊임없이 결단하는 피사(避邪)의 과정이다. 미련 없이 잘라내는 이성의 서늘함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문학의 골조가 세워진다. 오늘도 나는 잘려 나간 활자의 무덤 위에 묵묵히 새로운 세계를 쌓아 올린다. 언젠가 그 수많은 버려짐을 완벽하게 정당화할, 단 하나의 압도적인 문장에 닿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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